[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믿어보세요.." 깊은 마당을 벗어나 높은 하늘 바라볼 수 있었다 (daum.net)
ㅣ분단작가 김원일 '마당깊은 집'과 대구
전쟁이 빚어낸 비극적인 이야기는 남은 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문학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세월이 지난 뒤 아름다운 무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성찰케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분단작가’ 김원일(74)은 6·25 한국전쟁이란 일관된 소재로 ‘분단문학’이란 독특한 지평을 획득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그는 얼마 전 6·25를 소재로 한 7개의 단편을 모은 ‘비단길’을 출간했다.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돌덩이를 삼킨 듯 아프다.
‘형과 함께 간 길’은 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형이 전우의 유골을 경북 문경에 사는 가족에게 전해주러 가는 길에 고향집을 방문한 이야기다. 그러나 얼마 후 동생은 형의 이름과 군번이 새겨진 알루미늄판과 유골을 다른 전우로부터 받는다.
“그해 10월 하순, 형의 이름과 군번이 새겨진 알루미늄판이 다른 전우의 손에 들려 고향집으로 배달되었다. 훗날 부모님은 형의 유골을 받아들었을 때의 심정을 두고 ‘큰애가 문경 사는 전우 집에 유골 상자를 전해주려 집에 잠시 들렀을 때, 그 길이 부모의 고향을 찾아볼 마지막 길이 될 것임을 예감했지 않았겠느냐’ 했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묵시적으로 암시하는 기회가 한 번쯤은 있다며, 형의 마지막 귀향을 두고 말할 때 애석한 마음을 비치곤 했다.” 전쟁 후 수많은 가족들이 겪었던 아픔이었으리라.
사막에 부드러운 비단이 깔리는 꿈
그는 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을 집요하게 파헤쳐 인간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고난을 이겨내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어둠의 혼’(1973), ‘노을’(77), ‘불의 제전’(83), ‘겨울 골짜기’(86), ‘마당깊은 집’(88)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과 거기에 휩쓸려 수난 받는 가족의 운명에 천착했다.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공통점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과 ‘아버지의 부재’. 좌익운동가였던 부친은 한국전쟁 때 가족을 남겨두고 단신 월북했다. 단편 ‘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는 분단문학을 깊이 일군 배경을 설명한다.
“내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 그분의 생사 문제에 매달릴까를 되짚어보자, 목울대로 무엇인가 울컥 치받혔다. 나는 문단에 나온 초기부터 아버지의 험난한 생애를 유추하며 당신의 곡진한 삶을 다루어보겠다고 애면글면 애써온 셈이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아버지와의 만남)을 허구의 소설 ‘비단길’에서 다사롭고 풍성한 이산가족 상봉의 모습으로 그려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소설 속 어머니는 남편과 헤어질 때 “여생을 당신과 함께 조석으로 따뜻한 밥 대접하며 보내고 싶심더. 제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이소”라고 울부짖는다. 어머니는 남편을 상봉한 지 얼마 후 치매에 걸린다. 60여년 이별의 아픔이 한두 시간의 만남으로 치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을 만나고 싶은 어머니의 간절함은 사막의 실크로드에 부드러운 비단이 깔린 꿈을 꾸는 것으로 표출된다. 언젠가 그 비단길이 펼쳐지길 바라는 이산가족의 아픔은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는다.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되도록
지난 10일 그의 대표적인 자전적 소설 ‘마당깊은 집’의 배경이 된 대구시 중구 장관동을 찾았다. 소설에서처럼 ‘장관동을 남북으로 비스듬히 뚫어 약전골목에서 종로로 빠져나가는 그 긴 골목 중간쯤’에 마당 깊은 집이 있었다. 실제로 작가가 살았던 집이고 현재 사람은 살지 않는다.
‘마당깊은 집’은 6·25가 끝난 직후인 1954년 4월 하순부터 1년 동안 대구시 장관동 시절을 13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경남 김해시 진영이 고향인 작가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구에 살았다. ‘마당깊은 집’은 이렇게 시작된다.
“고향 장터거리의 주막에서 불목하니 노릇을 하며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선례누나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누나를 따라 대구시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 가족이 세들어 있던 집은 장관동을 남북으로 비스듬히 뚫어 약전골목에서 종로로 빠져나가는 그 긴 골목 중간쯤에 있었다. 장관동은 일제 시대를 거치며 개수된 삼사십 평의 나지막한 디귿자형 기와집이 태반이었는데, 우리 가족이 세들었던 집은 장관동에서도 몇 되지 않는 칸수 많은 널따란 대갓집 중 하나였다.”
마당깊은 집, 자전적 텍스트
‘마당깊은 집’에는 기차 모양처럼 기다랗게 지어진 아래채 끝방에 주인공 길남의 가족, 그 옆방에 개성에서 피란 나온 개성댁 가족, 평양에서 피란 나온 평양댁 가족, 위채와 가까운 방에 강원도에서 피란 나온 상이군인 가족이 살았고, 문간채에는 남편이 북으로 가버려 김천에서 피란 온 김천댁 가족이 세 들어 살았다. 위채에는 직물공장 간부인 주인집이 살았다. 스무 명이 넘는 그 많은 식구들은 서로 부대끼며 사소한 문제를 두고 아웅다웅 다투며,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해가며 전쟁 후 생활을 힘들게 이겨냈다.
주인공 길남을 ‘신문팔이’에서 ‘신문배달 소년’으로 끌어주며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 한주의 존재는 소설에서 빛난다. 길남은 성장 후에도 “길남이를 믿어보세요”라는 말과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성경 구절을 전해준 친구를 기억한다고 고백한다. 이로 인해 타인에 대한 신뢰와 성실성이 일종의 좌우명이 됐다. 한주는 마당깊은 집의 식구는 아니었지만 깊은 마당에서 벗어나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받침돌 역할을 해주었다.
근대문화의 거리, 골목길 투어
마당깊은 집이 있는 대구 중구 남성로 약령시 약전골목엔 한약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조선 효종 9년(1658)부터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한약재를 유통시켰던 전통 한약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이 골목엔 작가가 다녔던 고딕건축 양식의 대구제일교회(대구시유형문화재 제30호, 새 성전을 건축해 1994년 이전)가 위용 있게 서 있다. 맞은편에 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이었던 구 대구 교남YMCA 회관이 있다.
골목길을 벗어나 작가가 사색하며 자주 거닐던 동산동 청라(靑蘿:푸른담쟁이)언덕으로 향했다. 이국적인 계산성당 앞에 서니 현재의 대구제일교회가 보였다. 청라언덕은 19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완만한 경사를 오르자 초록빛 담쟁이로 가득 덮인 붉은색 벽돌 건물과 고풍스러운 서양식 정원이 펼쳐졌다. 1899년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선교사 스윗즈, 블레어, 챔니스의 주택 3채가 지금은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근대 역사와 건축학적 특징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적하고 조용해 도심 속 사색 공간으로도 손색없다.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작가의 기독교에 대한 시선은 건강하고 따스하다. “내가 종교를 가지면서부터 고통 받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고통 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협력자를 등장시키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문학적 이행의 결과였다. ‘늘 푸른 소나무’의 석주율이 그런 인물이다. 그는 타인이 당하는 고통의 짐을 자신이 대신 지고 묵묵히 걸어간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는 선지자나 영웅이 아니었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보다 오히려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의 장점이라면 정직과 겸손, 인내심이었다. ‘마음의 감옥’도 그런 내 생각이 여물어져 나온 소설이다. 주인공(현구)은 빈민운동에 자신을 내던졌고, 그 결과 죽음을 맞지만 나는 이를 패배라 인정하지 않는다.”(산문집 ‘기억의 풍경들’ 중에서)
대구는 이야기와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골목길이 많다. 최근 대구시가 내건 슬로건 ‘근대의 골목’이란 말 그대로 옛 모습을 간직한 대구의 골목들이 추억의 명소가 되고 있다. 그 골목은 과거를 돌아보는 길목이었고, 전쟁이 막 끝난 1954년 그 무렵의 시간과 조우하는 시간이었다.
[김원일처럼 생각하기]
예수님 정신은 貧者에 대한 사랑
“예수님의 정신은 포괄적이고 심오해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빈자에 대한 사랑,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어깨를 감싸시는 그분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문학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기독교 정신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김원일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장편 ‘가족’에서 화자인 김준은 자신의 신앙도 흔들리면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누이에게 신앙을 가져보라고 권유한다. “누나처럼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말야. 독실한 신앙 없인 이런 일을 오래 지탱하지 못하던데.” 장편 ‘불의 제전’도 크리스천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남을 돕는 게 당연하다는 저자의 따뜻한 시각을 담고 있다.
‘김원일 소설에 나타난 기독교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경기도 포천 일동감리교회 정학진 목사는 김원일 작가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은 ‘양심의 본질과 초월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런 신앙관은 한 계간지에 그가 쓴 글에서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나는 교회 집사가 되었다. 물론 나는 기복신앙인은 아니다. 다만 자기를 낮추고 소외된 모든 대상을 감싸 안는 실천적인 모습을 성경을 통해 늘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든 그 종교의 심부에는 그런 양심의 본질과 초월의 힘이 있다. 그래서 자기를 낮추어 수양케 하며 남을 사랑으로 수용케 한다는 겸손에서 문학과 일맥상통하다.”(‘영원한 비판정신에서 넉넉한 자기완성까지’ 작가세계 91년 여름호)
그가 목사가 될 뻔한 일화도 있다. 그는 1967년 가난과 무명으로 힘들 때 ‘현대문학’ 제1회 장편소설에 응모하고 안 되면 신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어둠의 축제’가 당선됐다. 당선소감으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했다. 그는 “당시 종교지 기자로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인터뷰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독실했던 아내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했다. 현재 그는 서울 경동교회 원로집사이다.
대구=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ㅣ국민일보 2016.06.17
/ 2022.07.1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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