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어서 마스크를 벗고 봄나들이 가고파라. 택배가 와서 나가보니 간밤에 내린 눈이 마당에 살짝 뿌려져 있다. 귀한 눈이라 강아지랑 둘이 행복하게 밟아댔어.
얼마 전엔 북해도에 잠깐 일이 있어 다녀왔다. 눈이라면 원 없이 보고 왔지. 영화 <러브레터>의 오타루엔 오금이 저릴 만큼 차가운 독일식 맥주 ‘오타루 비루’가 있다. 농부들과 어부들이 목을 축이는 곳.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어보았다. 눈이 무릎까지 차는 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그곳 북해도에서 농업대 선생을 지낸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의 배금 성장주의에 일격을 가한 ‘무교회주의’의 스승이다.
나는 선생이 머문 교정 공원에 이르렀다. 자연을 노래한 선생의 글 일부다. “자연은 그해를 선하든 악하든 모든 사람에게 고루 비추고, 빗물도 그러하다. 지진 벼락으로 극장과 교회를 무너뜨리고, 바다에 유빙을 놓아두어 목사와 도박사를 동시에 수장시킨다. 같은 병균은 신자나 불신자나 가리지 않고 감염시킨다. 착한 사람이 운 나쁘게 되는 수가 있고 악한 사람이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자연 앞에서 선악정사의 구별이 없다. 더구나 죽음은 만인에 대한 최후선고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치자면 일본이 세계 으뜸이나 사람의 마음이 부패한 것을 치자면 일본은 최악이다. 산이 푸르고 물이 맑은 곳마다 훼손하여 모두 도박과 열락을 탐하는 곳이 되었다. 아아,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자연은 북해도나 이곳 남녘이나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데 사람 사는 것은 매일반인 것 같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겪는 이 재앙 앞에 조속히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머리를 모아야 하겠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해마다 미나리 싹이 푸르게 솟고 푸짐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미나리 싹을 낳고 기르던 땅별이 우리 인간들 때문에 많이 아프다.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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