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도둑 잡아놓고 공범을 불라며 다그쳤는데, 도둑 왈 “혼자했다니깐요. 요새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답니까.” 그 사이 망보던 놈이 도망을 치자 “저 봐요. 믿을 놈 하나 없잖아요” 하더라는.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러는데, 경찰도 2인 1조로 순찰을 다니더라. 혼자보다 둘이 낫다. 사람이 외롭게 혼자 살다보면 병이 생긴다. 말벗이라도 있어야 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피카(Fika)라 해서 빵 조각과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말벗이랑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동료나 친구, 가족과 피카를 한다. 술을 마시거나 진하게 만나는 게 아니기에 부담 없는 미팅. 누구나 피카를 갖자고 청할 수도 있다. 피카를 위한 빵도 있다. 집집마다 오븐이 있는데, 수제 빵이 다들 일품이다. 구운 시나몬 롤빵이나 비스킷을 놓고 맛 품평도 한다.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하려면 필수품 한 가지, 바로 보온병이다. 따뜻한 물이나 커피를 담아 다니면서 손도, 볼도 녹인다. 두툼한 털옷을 껴입고 눈밭에 앉아 피카를 나눌 수도 있다.
우리도 ‘다담, 차담’을 즐겨온 민족이다. 요샌 커피가 전통 녹차 대신 자리를 점했다. 점심 먹고 공원이나 휴게실에서 즐기는 짧은 피카는 우리네 일상이 되었다. ‘점심시간 보장’은 노동자들에게 더없이 귀한 쉼과 위안이 된다. 그러면서 나누는 소소한 잡담과 웃음은 활력이 된다. 강연과 집회, 공연, 확성기를 틀어놓고 세를 과시하는 군집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피카를 나누며 작은 인연을 귀히 여기고 살면 좋겠다. 피카에서 여론이 생겨난다. 입소문이 빠르고 무서운 법.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 눈을 보면서 전하는 말은 ‘ㄴ파장’이 크다. 자잘한 삶의 이야기와 고민거리가 피카를 채운다. 어떤 장황한 연설보다 피카에서 나누는 얘기가 가슴을 달구고 쓰다듬어 준다. 아이들은 학교 동무들이 그립고, 우리 어른들은 일상이 그리운 요즘이다. 눈인사라도 나누던 이웃들, 마스크로 반쯤 가려진 친구들 표정을 맘껏 보고 싶다. 커피와 빵을 놓고 피카를 할 날을 약속해보자.
임의진 |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0.04.15
/ 2022.07.0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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