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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아의 우주적 시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푸레택 2022. 6. 24. 19:10

[황정아의 우주적 시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daum.net)

 

[황정아의 우주적 시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지금까지 우주에서 인류의 제2의 보금자리의 강력한 후보는 화성이었다. 화성을 지구화하는 테라포밍 계획의 큰 장애물은 화성의 이산화탄소 부족이었다. 화성은 자기장이 약해서 대기가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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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가 숨쉬는 지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공위성 만드는 물리학자 황정아 박사가 전하는 '미지의 세계' 우주에 대한 칼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태양계 모습. 왼쪽부터 태양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지금까지 우주에서 인류의 제2의 보금자리의 강력한 후보는 화성이었다. 화성을 지구화하는 테라포밍 계획의 큰 장애물은 화성의 이산화탄소 부족이었다. 화성은 자기장이 약해서 대기가 태양풍에 그대로 노출되고 이로 인해 대기층은 점점 얇아진다. 대기층이 얇으면 행성 전체가 차갑게 식는다. 화성은 그 이름과는 달리 평균 표면 온도가 영하 60℃밖에 되지 않는 차가운 행성이다. 그런데도 인류의 화성에의 구애는 계속됐다.

최근 천문학자들이 금성에서 생명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영국과 미국의 공동 연구팀이 전파망원경으로 금성 대기에 인화수소(PH3)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화수소의 존재는 금성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는 생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지구 밖에서 발견되는 물질 중 비생물학적인 원인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물질을 ‘바이오마커’라고 한다. 대표적인 바이오마커는 산소, 메탄가스나 물이 있다. 인화수소는 조건부 바이오마커로 검토되던 물질이다. 그동안 금성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번 발견은 놀라웠다.

화성과 다르게 금성은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로 인해 온실 효과가 극대화되어, 표면 온도가 평균 400도가 넘는다. 기압도 높아서 표면에서 지구의 91배에 달하는 압력을 받는다. 두꺼운 이산화탄소의 대기층 위에는 주로 황산으로 이루어진 구름층이 있다. 황산은 대기에서 이산화황과 수증기가 자외선을 받아서 생성된다. 황산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구름층에서는 강한 산성비를 만들어 낸다. 이 구름이 태양 빛의 60%를 반사하기 때문에 금성의 표면은 어두컴컴해진다. 만일 사람이 금성의 표면에 서 있다면, 햇빛 한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기에 황산 비를 맞으며, 지독한 생선 썩는 냄새를 맡고 있어야 한다.

금성의 표면은 이렇게 지독한 지옥도를 그리고 있지만, 구름 위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지표로부터 60㎞ 높이에 있는 구름 위는 기온이 약 30도, 기압도 1기압 정도로 지구의 대기와 유사한 정도로 쾌적하다. 이런 대기층이나 구름 속이라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에 인화수소가 발견된 곳이 바로 이 대기층이다.

놀랍게도 금성에서 생명의 가능성을 50여년 전에 이미 예견했던 사람이 있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미션에 황금디스크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외계 생명체를 찾는 영화 ‘콘택트(1997)’의 원작 소설의 저자였던 칼 세이건이다. 그는 196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소량의 미네랄이 표면에서 구름으로 휘저어 올라간다면 금성의 구름 속에서 생명체를 상상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라고 썼다. 세이건이 이런 예측을 한 지 11년 만에 탐사선이 금성의 대기에서 메탄을 발견하기도 했다. 메탄가스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바이오마커 중 하나이다.

태양계에서 생명체 존재의 유력한 후보지는 지금까지 화성과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였다. 화성에서는 메탄가스와 소금물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유로파에서는 얼음 바다와 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이번 금성에서의 인화수소의 관측이 정말로 생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태양계 탐사의 우선순위를 신중하게 다시 정해야 할 순간에 당면한 것이다. 물론 이 관측이 생명체 존재의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이 발견이 생명의 직접적인 증거인지 궁금해하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은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다. 이 발견이 탐사선을 보내서 추가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인 것은 분명하다. 현재 러시아, 유럽, 미국이 금성 탐사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 이러한 탐사계획의 날짜를 앞당길 수도 있다. 지구 바깥 행성에서 생명의 가능성이 보고될 때마다 사람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체가 우연히 지구에만 단 한 번 기적적으로 생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 때문이다. 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테니까 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사실, 매우 과학적인 이야기였다.

황정아 인공위성을 만드는 물리학자ㅣ한국일보 2020.09.21

/ 2022.06.2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