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 성탄 즈음에 감옥에서 나온 금자씨. 13년 반 감옥에서 살다나온 금자씨 앞에 목사가 두부를 건넨다.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 다시는 죄짓지 말란 뜻으로 먹는 겁니다.” 그러자 금자씨는 두부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한마디 한다. “너나 잘하세요.” 영화가 끝났지만 배우 이영애가 주먹만 한 눈알을 궁굴리며 심드렁하게 내뱉는 말 ‘너나 잘하세요’는 유행어가 되었다. 게다가 “저 개종했어요”로 목사에게 최종 빅엿을 먹이기도.
제자 법정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후학을 둔 효봉 큰스님은 가르침이 명쾌하기로 유명했다. 전국에서 효봉 스님에게 한 말씀 듣고자 몰려들었다. 찾아온 사람들마다 남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데, 스님은 끝까지 듣고 딱 한마디 던지곤 하였다. “너나 잘해라.”
옛날 옛적에 찢어지게 가난한 부부가 살았는데, 정말 찢어지고 말았다는 싱거운 얘기. 가난이 극심하면 행복도 꿈도 토담처럼 무너진다. 너나 잘하라는 말은 나부터 잘하자는 말이겠다. 너무 속악하고 부박한 세상이라 시인들이 게으름을 찬미하지만, 인력시장의 새벽을 보고나면 인생의 무게, 밥그릇의 무게가 참말 무겁고도 큼을 느낀다. 근면 성실한 이들이 가을의 굵은 열매를 하나 가득 따 담는 풍경, 새삼 그립고 아리는 풍경이렷다.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며 토를 다는 말풍선이 범람하는 세상. 말쟁이들이 마을에 한두 명은 꼭 있기 마련이다. 아침에 불행과 불운을 퍼트리는 사람은 저녁엔 본인이 그 주인공이 된다는 인도 속담도 있다. 가을 하늘 푸르동동. 이른 국화꽃 향기가 날린다. 누구 아프라고 댓글이나 달면서 보내기엔 찬란한 가을 하늘이 아득만 해라. 할 수 있다면 갈바람 갈꽃 얘기로 이러쿵저러쿵하는 인연들을 갖고 싶다. 귀 따가운 시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만남이렷다.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0.09.17
/ 2022.06.2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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