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징표[이은화의 미술시간]〈182〉 (daum.net)
앙리 마티스가 이 그림을 파리에서 처음 공개했을 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마티스에게 우호적인 평론가들조차도 혹평을 쏟아부었다. 그중 한 평론가는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실망하면서도 이 그림을 구매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1900년대 초부터 새로운 기법 실험에 몰두했던 마티스는 1905년 완성작들을 ‘가을살롱’전에 선보였다. 현란한 색으로 범벅된 출품작들은 논쟁을 일으켰고, 그 중심에 이 초상화가 있었다. 그림 속 모델은 마티스의 부인 아멜리에다. 아내는 가장 멋진 외출복 차림으로 남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갑 낀 손에는 화려한 부채를 들었고, 머리에는 공들여 만든 고급 모자를 썼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결과물이었다. 형형색색 물감들을 마치 테스트하듯 대충 칠해놓은 것 같은 그림은 미완성으로 보였다. 윤곽선을 전혀 그리지 않아 모델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얼굴은 아프리카 가면 같았고, 모자는 과일 광주리처럼 보였다. 아멜리에는 물론 관객들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보수적인 평론가 루이 보셀은 야수의 작품 같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이 말이 오히려 마티스에게 ‘야수파’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미국에서 온 평론가 레오 스타인은 한술 더 떴다. “지금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형편없는 물감 얼룩”이라며 혹평했다. 그러면서도 기꺼이 이 그림을 사주었다. 실험 없이 좋은 예술이 탄생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1903년 파리로 이주한 스타인은 여동생 거트루드와 함께 전위적인 예술가들의 후원자를 자처했다. 이들 남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사들여 미술가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당시 마티스는 세 아이를 둔 가장으로 신작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 더 위축돼 있었다. 스타인이 논란의 작품을 매입한 건 믿음의 징표였던 것이다. 이후에도 스타인 남매는 그의 실험적인 작품을 더 매입했고, 결국 마티스는 20세기 미술의 거장이 되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ㅣ동아일보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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