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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을 위한 가이드라인

푸레택 2022. 6. 21. 21:48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을 위한 가이드라인 (daum.net)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을 위한 가이드라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행정기관이 세운 ‘가이드라인’으로 규율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지문으로 잠금 해제하는 데는 ‘바이오정보 보호 가이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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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데이터 3법의 애매한 조문
AI 신사업 추진에 어려움 예상
불확실성 줄일 가이드라인 필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행정기관이 세운 ‘가이드라인’으로 규율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지문으로 잠금 해제하는 데는 ‘바이오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가격 비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최저가 상품을 찾아보면 ‘가격비교사이트 가이드라인’에 따라 검색 결과가 표시된다. 온라인 쇼핑몰로 들어가면 ‘상품정보제공 가이드라인’에 따라 제품 설명이 적혀 있다. 상품 결제를 위한 개인정보 수집은 ‘온라인 개인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루어진다. 수집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안에 관한 여러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가이드라인이 굳이 다 필요할까? 개인정보보호법, 공정거래법, 표시광고법, 소비자보호법 등 사업자에 적용되는 법은 무수히 많다. 가이드라인은 각각의 법을 준수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설명해 놓은 해설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나치게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사건건 규제를 하다 보면 혁신에 족쇄를 채워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차라리 사업자들이 알아서 법을 잘 준수하도록 맡겨 놓고, 법을 어기면 엄정하게 처벌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을 통한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사업자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오히려 사업자들이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달라고 하는 일도 있다. 법에 나와 있는 추상적인 원칙과 기준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모호한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저 사업자의 자율에 맡기면 건건이 변호사 자문을 얻어야 한다. 변호사 답변이 애매한 경우에는 결국 법원 판결에 맡겨야 한다.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커지는 셈이다. 게다가 변호사 자문과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과 수단을 적용할지 안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많다.

최근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되어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데이터를 활용할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많다. 개정 내용의 당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개정된 법조문만 보아서는 구체적으로 사업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 예컨대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상 가명정보의 의미, 안전성 확보 조치의 범위, 결합의 방법 등은 명확하지 않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사업자가 개정 법조문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선뜻 인공지능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 행여라도 나중에 규제에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면 애써 개발한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어떤 가이드라인이 필요할까?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실무자로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AI 윤리 기준, AI 감독·감사 체계, AI 보안 기준, AI 계약 절차, AI 사고 시 책임 기준, AI 위험평가 기준 등 애매한 영역이 한둘이 아니다. 전통적 규제에 익숙한 행위자들은 불확실성이 있으면 보수적으로 판단하여 위축되기 마련이다. 구체적인 실무 가이드라인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니 개정된 데이터 3법에 관한 가이드라인이나 해설서가 잘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좋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상세하게 규정하면 미래의 기술 발전에 대비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추상적으로 규정하면 실무자에게 도움이 되는 지침을 주지 못한다. 법 규정이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와 사업자의 요구 사항 간 조화도 이루어져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작성되어야지, 사업자의 요구만 들어 법규제를 완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따르기도 어렵다. 참고할 선례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술 수준, 법체계, 문화도 다르기 때문이다.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여러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좋은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현재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어떠한 규제가 정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계속해서 유연하게 고쳐 나갈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개정 데이터 3법에 있어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ㅣ중앙일보 2020.04.20

/ 2022.06.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