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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진달래꽃’ 이후 한국시 100년, 최고의 ‘꽃시’는?

푸레택 2022. 6. 17. 08:32

[김민철의 꽃이야기] '진달래꽃' 이후 한국시 100년, 최고의 '꽃시'는?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진달래꽃' 이후 한국시 100년, 최고의 '꽃시'는?

한국 근현대시 중에서 꽃을 소재로 한 시 14편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대, 내게 꽃이 되어’ 전시회로, 김소월의 ‘진달래꽃(1922)’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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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시 중에서 꽃을 소재로 한 시 14편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대, 내게 꽃이 되어’ 전시회로, 김소월의 ‘진달래꽃(1922)’ 발표 100년, ‘꽃의 시인’ 김춘수 탄생 100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라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 전시실에 가보니 시를 내걸고 도서관이 소장한 해당 시집을 함께 전시하는 형태였다. 14개 시에 대해 시인의 캐리커처, 발표년도와 함께 전문을 소개하고 그 아래에 간단하게 시의 의미와 시인의 약력을 적었다. 해당 시를 낭송하는 음성을 들으며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었다.

가장 궁금한 것은 한국시 100년에서 과연 어떤 꽃시를 골랐을까였다. 전시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김소월 ‘진달래꽃’

-김소월 ‘산유화’

-한용운 ‘꽃이 먼저 알아’

-한용운 ‘해당화’

-이상 ‘꽃나무’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동명 ‘파초’

-정지용 ‘노인과 꽃’

-이육사 ‘꽃’

-조지훈 ‘낙화’

-김춘수 ‘꽃’

-박목월 ‘산도화’

-이형기 ‘낙화’

-나태주 ‘풀꽃’

‘진달래꽃’이야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겠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참 좋았다. ‘산유화’도 마찬가지였다. 한용운의 ‘꽃이 먼저 알아’에서는 ‘꽃송이에는 아침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 하였더니/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라는 구절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한용운 ‘해당화’를 읽으니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느낄 수 있다. 마침 요즘이 해당화가 피는 계절이다. 해당화는 원래 바닷가 모래땅이나 산기슭을 좋아하지만 꽃이 예뻐서 도심 화단에도 많이 심어 놓았다. 이인성(1912~1950)의 그림 ‘해당화’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두 소녀와 엄마인 듯한 여인이 붉은 해당화를 둘러싸고 있는데, 한용운의 시 ‘해당화’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한다.

해당화. 태안국립공원.

이상의 ‘꽃나무’는 학교 다닐 때 배우지 않은 시라 이번에 처음 보았다. 이상의 첫 한글시로, 난해하고 실험적인 시인의 작품 중에서 예외적으로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라는 소개가 있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운율감이 참 좋다. 요즘은 모란에 이어 작약도 져가고 있다. 작약과 모란은 꽃만 보고는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구분하는 방법은 작약은 풀이고 모란은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무 부분이 있으면 모란, 없으면 작약이다.

경복궁 모란. 모란은 나무다.

김동명의 ‘파초’에 나오는 파초는 바나나 비슷하게 생긴 도입 식물이다. 바나나와 속(屬)까지 같은 식물로, 온대성이지만 영하 10~12도 정도까지 견뎌서 옛부터 남부지방 사찰이나 정원에서도 심어 가꾸었다. 파초는 바나나에 비해 열매를 잘 맺지 못하고 열매가 열려도 5∼10cm로 작은 점, 바나나 잎 뒷면에서는 분 같은 흰가루가 묻어나지만 파초 잎은 그렇지 않은 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파초. 해남 대흥사.

정지용의 ‘노인과 꽃’도 이번에 처음 보았다. 노년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노년과 꽃이 서로 비추고 밝은 그 어느날’을 생각하니 ‘다시 설레나이다’는 표현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다.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실상 청춘은 꽃을 그다지 사랑할 바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청춘은 스스로가 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육사의 ‘꽃’과 김춘수의 ‘꽃’은 제목이 같지만 내용은 많이 다르다. 이육사 ‘꽃’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꽃은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담은 시다. 김춘수 ‘꽃’은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만큼 잘 아는 시겠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는 언제 읽어도 좋다.

조지훈의 ‘낙화’와 이형기의 ‘낙화’도 제목이 같다. 조지훈 ‘낙화’에서는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 이형기 ‘낙화’에서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목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박목월의 ‘산도화’에서 구체적인 꽃이름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산도화는 산복사꽃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에다 나태주의 ‘풀꽃’(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까지 14편의 시를 전시하고 있었다. 이 전시를 보면서 한국 근현대시 최고의 꽃시를 꼽아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복사나무꽃(산복사꽃).

전시 작품은 한국시인협회 자문을 통해 선정했다고 했다. 선정 작품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한국시 100년을 얘기하면서 서정주, 윤동주, 백석, 김수영 등 같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들 시가 없는 것은 좀 의아했다. 이들의 시에도 꽃이 많아 나오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해당 작품이 실린 도서의 도서관 소장 여부 등도 감안했다”고 했지만 그런 작품이 실린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없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근현대 꽃 대표시’라기보다는 ‘우리 전시에 적합한 근현대 꽃시 14편’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관계자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전시회는 7월 3일까지 열리고 관람료는 없다.


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6.14

/ 2022.06.1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