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양자역학과 인공지능의 공통점은 불확실성 (daum.net)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 원자나 분자 영역에서 일어나는 미시 세계 물리적인 현상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거시 세계 물리 현상과는 다르다.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관찰하는 거시 세계와 달리 나노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없다. 극도로 미세한 원자나 분자 세계에서 입자나 파동이 갖는 에너지 값은 불연속인 고윳값을 갖는다. 뚝뚝 끊어져 있다. 입자의 존재나 위치도 본질적으로 확정되지 않고 ‘불확실(uncertainty)’하다. 그 존재는 확률로만 표현된다. 어디 있긴 한데 있는지 없는지, 어디에 있는지 확률로만 존재한다. 이런 나노 세계 물리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학문이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은 양자역학과 비슷한 데가 있다. AI가 사용하는 데이터와 논리는 모두 디지털 2진수, 불연속적인 '0' 아니면 '1'로 표현되지만 AI 계산 결과물은 0과 1 사이에 있다. 확률이란 얘기다. 예를 들어 AI가 사진을 보고 그 대상물을 판독할 때 그걸 '고양이'나 '호랑이'로 확정하지 않는다. 다만 "고양이(또는 호랑이)에 가깝다"는 식으로 결론을 낸다. 여기서 양자역학과 AI가 관통(貫通)한다.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한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가 AI 계산용 컴퓨터로 새로 등장하고 있다.
AI와 양자 컴퓨터 장점 결합
AI 컴퓨터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단점을 지닌다. 첫째는 '폰 노이만(Von Neumann) 구조'로 불리는 현재 컴퓨터 아키텍처에서 파생한다. 폰 노이만 구조는 주기억장치, 중앙처리장치, 입출력장치 3단계 구조로 이루어진 현대 컴퓨터 기본 구조. 나열된 명령을 순차적으로 수행하고, 그 명령은 일정한 기억 장소 값을 변경하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계산을 담당하는 프로세서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AI가 계산하는 동안 프로세서와 메모리가 데이터를 교환하는데 그사이 계산 시간과 전력 소모가 막대하다. 그래서 미래 AI 컴퓨터는 프로세서와 메모리 사이 신호 연결선 수를 극단적으로 늘린 '병렬 컴퓨터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한꺼번에 대규모 데이터를 주고받아 AI 계산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둘째는 AI 계산 절차에 있다. 현재 컴퓨터는 2진수 계산을 할 때 반도체 논리회로를 이용해서 시계(clock)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수행한다. 논리회로 여러 단계를 거쳐야 계산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 또 시간이 지연되고 전력이 소모된다. 그래서 미래 AI 컴퓨터는 단 한 번 논리 단계로 AI 계산을 수행하는 컴퓨터 구조가 필요해진다. 이를 위해 '양자 컴퓨터'가 개발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0이나 1인 비트(bit)와 달리 큐비트(quantum bit)를 사용한다. 데이터가 '0'이면서 동시에 '1'이 될 수 있는 중첩(superposition)된 상태다. 기본적으로 한 번에 한 단계씩 계산이 이루어지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양자 컴퓨터는 모든 가능한 상태가 중첩된 얽힌 상태를 이용해 단 한 번 조작으로 모든 계산이 가능하다. 포켓볼로 치면 기존 컴퓨터가 한 번에 공 하나만 구멍에 넣는 평범한 선수라면, 양자 컴퓨터는 한 번에 공 6개를 다 구멍에 집어넣는 초특급 프로다.
계층적 컴퓨터 구조가 효율적 AI 실현
AI 컴퓨터가 실시간(real time)에 가깝게 작동하려면 최대한 가까이 설치해야 한다. 거리가 단 몇 m라도 멀수록 그 차이는 크다. 1조분의 1초라도 누적될수록 나중에 그 격차는 한없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AI 컴퓨터를 뇌 속에 설치할 수 있다면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다. 미래에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다.
지금 AI 컴퓨터는 여러 종류 컴퓨터를 물리적 거리 순서에 따라 계층적으로 배치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서로 다른 각종 컴퓨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다. 먼저 인간 가까이에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컴퓨터'를 설치하고 그 이후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에지(edge) 컴퓨터', 그리고 가장 멀리 데이터 센터에 '클라우드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가 순서대로 설치된다. 이들이 계산 시간과 계산 용량에 따라 역할을 나누어 합동해서 효율적이고 총체적인 AI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애플, 알리바바, 텐센트 등 세계 각국 굴지 기업들이 각각 수준에서 컴퓨터 플랫폼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이유다.
주변 사물이 모두 컴퓨터
이렇게 계층적 컴퓨터 서열 구조에서 간단한 AI 판단 작업(inference)은 모바일 컴퓨터나 에지 컴퓨터가 담당한다. 예를 들어 간단한 AI 사진 판독은 여기서 실시간으로 한다. 반면에 사진 수천만 장을 이용해 수백만 번 시행하는 AI 학습(training) 과정은 빅데이터를 보유한 클라우드 컴퓨터나 양자 컴퓨터가 담당한다. 이렇게 공기처럼 인간을 에워싼 계층적 컴퓨터들이 협동해서 AI 세계를 완성한다.
우리가 매 순간 사용하는 스마트폰, TV, 냉장고, 에어컨도 모두 컴퓨터다. 자율주행 자동차도 사실 바퀴 달린 컴퓨터일 뿐이다. 프로세서, 메모리, 유무선 통신, 반도체가 다 들어간다. 겉모습만 서로 다르다. 이러한 각종 컴퓨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AI다.
불확실성(不確實性)을 본질로 하는 양자 컴퓨터와 AI에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는 인간 사회를 구하는 역할을 기대해 본다. 바이러스 전파 모델,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도 필요하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ㅣ조선일보 20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