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수탉머리의 여자'/다발킴 (daum.net)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 심보선
가장 먼저 등 돌리데
가장 그리운 것들
기억을 향해 총을 겨눴지
꼼짝 마라, 잡것들아
살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
역겨워, 지겨워, 왜
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 모양이야
십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
남은 한 마리가 뭔지 생각 안 나
옛 애인이던가, 전처던가
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이던가
가장 먼저 사라지데
가장 사랑했던 것들
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나쁜 냄새가 난다
발자국을 짓밟으며 나는 미래로 간다
강변 살자, 부르튼 발들아
못 만나면 죽을 것만 같던 연인도 헤어지면 어느덧 시들해지고 역겨워진다. 내 성정이 야멸찬 데가 있기 때문일까. 그리운 것들이 먼저 등 돌리고, 사랑했던 것들이 먼저 누추해진다. 순수한 것일수록 가장 먼저 때를 타고, 고결한 것일수록 가장 먼저 타락한다. 인생이 비루하고 누추해진 것은 그 때문이었어. 삶의 동일성을 지속시키는 기억과 추억의 안쪽을 뒤집어 보면 벌써 시커멓게 썩어 있다. 옛 애인, 전처, 다 역겨워, 지겨워! 아, 나는 개새끼다! 나는 갈수록 추해지고 나쁜 냄새가 난다.
장석주 시인ㅣ서울신문
/ 2022.06.1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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