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월/유홍준 (daum.net)
유월 / 유홍준
차가운 냉정 못에 붕어 잡으러 갈까
자귀나무 그늘에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멍한 생각 하러 갈까 손톱 밑이나 파러 갈까
바늘 끝에 끼우는 지렁이 고소한 냄새나 맡으러 갈까
여러 마리는 말고
두어 마리
붕어를 잡아 매끄러운 비늘이나 만지러 갈까
그러다가 문득 서럽고 싱거워져서 차가운 냉정 못에
코펠 들고 슬슬 못가를 돌며 민물새우나 잡을까
해거름 내리는 못둑에 서서
멍하니
그저 멍하니
저 먼 곳이나 한참 바라보다가 올까
분리배출도 다 하고, 여름 물것들 대비해 창마다 방충망도 다 쳤으니, 이제 공작새처럼 한숨 돌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마시자. 은행 융자 받은 거 이자 내고, 공과금도 밀리지 않고 다 냈으니, 이제 라이언 킹처럼 조금 빈둥거리자. 오, 유월이구나! 모란 작약 꽃 다 졌으니, 이제 굶주린 음악가처럼 살지는 말자. 주말에는 안성 미리내에 가서 묵밥 한 그릇 먹은 뒤 고삼저수지 가에 앉아서 “멍 하니/그저 멍 하니” 한나절 먼 곳이나 바라보다 돌아오자.
장석주 시인ㅣ서울신문 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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