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푸레택 2022. 5. 30. 13:47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행복한 날/박성식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행복한 날/박성식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서울신문]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

news.v.daum.net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나는 한때 나무를 보며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나무는 아주 열심히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얼음!’ 하고 외쳐서 그만 제자리에 서 버린 것은 아닐까? 침묵이 흐르고 먼지가 쌓이고 발이 땅속 깊이 뿌리처럼 묻히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잎사귀처럼 맡겨 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것을 제 습성으로 가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 시를 읽고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나무가 늘 달리고 있었다거나 매순간이 치열한 싸움의 시작과 끝이라거나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있다는 식의 새삼스런 각성이 아니다. 어려서 아름답고 몰라서 빛나는 순간을 빼앗아 버리는 현실의 잔혹함 같은 것이다. 매일매일 역사의 마지막 장이자 첫 장으로 펼쳐지는 뉴스에 대한 서글픔 같은 것이다. 그러나 ‘땡땡땡’ 햇살이 종소리를 울리는 봄이 오면, 나무는 정말 그 깊은 발을 빼서는 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신용목 시인ㅣ서울신문 2017.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