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처자/고형렬 (daum.net)
처자 / 고형렬
주방 옆 화장실에서
아내가 아들을 목욕시킨다
엄마는 젖이 작아 하는 소리가
가만히 들린다
엄마는 젖이 작아
백열등 켜진 욕실에서 아내는
발가벗었을 것이다
물소리가 쏴아 하다 그치고
아내가 이런다 얘 너 엄마 젖 만져 봐
만져도 돼? 그러엄. 그러고 조용하다
아들이 아내의 젖을 만지는 모양이다
곧장 웃음소리가 터진다
아파 이놈아!
그렇게 아프게 만지면 어떡해!
아프게 만지면 어떡해
욕실에 들어가고 싶다
셋이 놀고 싶다 우리가 떠난 먼 훗날에도
아이는 사랑을 기억하겠지
엄마가 아이를 무릎 위에 뉘어 놓고 동화책을 읽어 주는 모습. 인간사에서 가장 따뜻한 풍경이라 여겼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생각이 바뀐다. 아이가 엄마가 함께 목욕하다 엄마 젖을 가만히 만진다. 아파 이놈아! 엄마의 함박꽃 웃음소리가 욕실 밖으로 쏟아진다. 뒷산 숲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애비는 끼어들어 셋이 함께 놀고 싶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뻐꾸기가 사는 숲에는 흰색과 보라색 파란색의 꽃들이 함께 어울려 핀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19.09.20
/ 2022.05.2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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