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였던 누나는 5·18 때 적십자병원에서 총상을 입은 부상자를 돌봤다. 내 아래 누이는 수간호사 소리를 듣다가 이직. 또 엄마랑 닮은 막내 이모는 간호부장 출신이었는데, 이모부는 개인병원 원장.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풍기는 집안이었다. 그래선지 ‘믿숩니다’ 안수기도 같은 거 안 믿는 목사 집안.
처음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 탈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 ‘스바시바’ 욕 같은 인사말이 아는 전부인데, 병원이라니. “앗꾸다?(어디서 왔나요) 프럼 프럼.” “아~ 프럼 유즈나야 카레야(남한).” 러시아 사람들은 ‘세베르나야 카레야’ 북한이랑 더 친하지만 ‘유즈나야’라고 밝히면 고생을 시키든 잘해주든 신경을 더 쓸 거라고 누가 코치.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며칠 고생이었는데 주사 처방. 유리로 된 주사기를 팔팔 끓이고 있었다. 왕 주사기 바늘. 여분의 주사기는 없는 모양 같았다. 윽, 주사약도 엄청 아팠어. 인상을 찌푸리자 “니 비스바코이째” 걱정 붙들어 매세요~ 간호사 중년여성은 주사기를 한 방에 찌르고는 소독솜을 누르는데 힘이 장사였다. ‘아파요’ 그러려다 더 당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어.
황열병 예방접종 등 국제공인 예방접종 증명서를 지참해야 하는 오지를 주로 여행했다. 증명서는 여권에 넣어두고 잃어먹지 말아야 해. 꼬투리 잡는 국경에선 하소연해봐야 소용없어. 코로나 백신 접종도 이참 저참 일찍 마친 편인데, 마음이 평온하고 홀가분해졌다. 러시아에선 “다 스비다니야” 안녕히 가세요! 말고도 “우다취” 행운을 빌게! 인사말. 백신을 맞은 이들에게 자유와 행운이 있길. 하루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아이나 어른이나 병원을 가장 두려워하지. 병원이나 교회나 빨간 십자 로고가 붙어 있는데, 언뜻 보면 표적 같아. 불운과 불행을 겪고 있는 분들이 아파하고 이겨내는 장소.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 매대기치며 기도하는 병원, 주사기 바늘이 살을 찌를 때마다 예수님 천주님 부처님 엄마야 찾게들 된다. ‘여보야’를 찾는 달달한 사람은 있는가 모르겠어.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9.30
/ 2022.05.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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