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귀를 틀어막고 사는 자들을 보면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니면 무시를 하는 건지. 귀가 있으나 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사막의 예수는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이라 별명을 붙여줌. 장애인이거나 병으로 인해 소리를 잃은 이들은 예외겠지. 음악계의 청각장애인은 베토벤이 유명해. 미술계엔 그렇다면 고야가 있겠다. 사진이 없던 시대 초상화의 대가는 단연코 고야였다. 고야가 먼저 귀머거리 신세가 되고 10년 후에 베토벤이 따라서 청각을 잃었다. 귀를 잃고 고야는 악몽과 환상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명과 두통 현기증에 시달렸다. 시골에 집을 구해 요양을 했는데, 아예 집 이름을 ‘귀머거리의 집’이라고 써서 붙였다지.
귀를 사용하지 않는 방면의 대표는 사오정. 어쩌다가 사오정 시리즈가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한동안 아재 개그의 대부분이 사오정 시리즈였다. 사오정, 저팔계, 손오공이 카페에 갔는데 손오공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팔계는 “그럼 난 돼지니까 아이스크림” 사오정이 손들어 주문 “여기 콜라 3잔이요!” 띠용띠용.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야 오늘 주번 나와. 왜 칠판 청소를 안 했어?” 사오정이 나오더니 “제가 9번인데요” 이런 우스개 얘기들.
우리는 왜 멀쩡한 귀를 가지고, 귀를 사용하지 않는지 싶을 때가 있어. “1. 귀를 쫑긋 모으기 2. 귀담아서 경청하기 3. 들을 귀를 접지 않기 4. 말을 더디게 하고 듣기엔 빠르게 5. 귀에 박힌 못 빼기.” 뭐 이런 ‘귀 명상’ 코스가 있다. 듣는 걸 잘하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도 하는데, 남한의 인간문화재나 북조선의 인민배우도 이 귀명창 하나를 못 당해.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허튼소리를 내뱉을 순 없으리라. 똥구멍으로 얘기할 방귀 같은 소리들을 입으로 지껄이는 자들이 활개치고 다닌다. 한편으로는 안 들리는 쪽이 아예 편하겠구나 싶기도 해.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10.28
/ 2022.05.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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