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산장의 여인 / 임의진 목사·시인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권혜경은 전성기 때 병치레가 잦았다. 작사가 반야월 선생에게 왜 하필 나에겐 이런 슬픈 노래만 주어 병들게 했냐면서 농반진반 따졌다고 한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 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 옛 노래 ‘산장의 여인’을 듣노라면 뻐꾸기 소리가 마중 나와 어르신들 추억을 소환한다.
지리산이 있는 남원 산골짝, 200년 동안 억새를 얹고 또 얹었다는 억새집 산장. 마을 초입에서 짜장면을 사먹었어. 수타 면발처럼 그침 없이 눈은 내리고, 눈길을 조심조심. 산장이라 적혀 있던 산사람들의 여관들은 죄다 펜션이란 남의 나랏말로 탈바꿈. 산장의 여인네는 이제 산장의 꼬부랑 할매가 되어 산닭을 잡던 손으로 계란 하나 들기도 힘겨워라. 산장은 많아도 산장다운 산장, 편히 쉴 만한 안식처를 찾기란 쉽지 않아. 산장의 여인들도 별을 세던 손가락으로 돈을 세고 싶어 해.
이름이 제각각인 레드향, 천리향, 황금향, 한라봉, 감귤이 요새 맛나더라. 나는 그냥 계란만 한 크기의 못생기고 작은 유기농 귤이 좋던데. 호주머니에다 귤을 몇 알 담고 산장을 지나 산길을 오른다. 식별이란 라틴어로 ‘디스크레티오’라 하는데 ‘갈라서 놓음’이란 뜻.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해. 밤하늘 떠 있는 게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안경에 긁힌 자국인지 식별 능력, 분별 능력을 가져야 해. 어디가 쉴 곳인지 모르고 범굴에서 잠들면 큰일 나. 누가 인물인지 식별을 않으면 난장판이 된 ‘정치판’에 밤새워 울게 될지도 몰라.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말이지. 산장에서 내려오는 길엔 눈이 그쳤어. 땅에 떨어진 눈이 녹는 속도를 보아하니 금방 봄이 오겠더라.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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