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이갑수의 꽃산 꽃글] 남산제비꽃

푸레택 2022. 5. 12. 22:32

[이갑수의 꽃산 꽃글]남산제비꽃 (daum.net)

 

[이갑수의 꽃산 꽃글]남산제비꽃

날렵한 제비하고 묵묵한 제비꽃은 이름은 서로 공유하지만 노는 동네가 너무 다르다. 봄이 무르익어도 우리 사는 곳의 공중에서는 아예 제비를 볼 수가 없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과 처마

news.v.daum.net

[이갑수의 꽃산 꽃글] 남산제비꽃

날렵한 제비하고 묵묵한 제비꽃은 이름은 서로 공유하지만 노는 동네가 너무 다르다. 봄이 무르익어도 우리 사는 곳의 공중에서는 아예 제비를 볼 수가 없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과 처마가 사라진 것도 제비가 우리를 철저히 외면하는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제비가 물어다주는 한 톨의 봄소식도 이젠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 빈 구멍을 메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산과 들에는 제비꽃이 호젓하게 피어난다. 무엇을 정성스럽게 싼 보자기 매듭 같은 저 작은 꽃들 앞에 엎드리면 알 수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이 그나마 이만한 모양과 맵시를 가지는 건 이 작은 것들의 덕분임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아주 많다. 더구나 변이가 심해서 연륜이 제법 쌓인 식물애호가들도 제비꽃 앞에서는 쩔쩔매기 일쑤다. 그간 내 육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간 제비꽃은 다음과 같다. 금강제비꽃, 단풍제비꽃, 태백제비꽃, 왜제비꽃, 흰젖제비꽃, 화엄제비꽃, 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왕제비꽃, 알록제비꽃, 고깔제비꽃, 뫼제비꽃, 졸방제비꽃, 낚시제비꽃, 서울제비꽃, 남산제비꽃. 이외에도 국가표준식물목록을 검색해 보니 지금 호명하는 것에서 빠져 시무룩해하는 제비꽃이 무려 서른다섯 종. 그제 점심시간에 인왕산에 올랐다. 운동기구가 서 있는 약수터 벤치 뒤의 잔돌 틈에 흰 꽃이 피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제비꽃이었다. 그중에서도 잎이 코스모스의 그것처럼 잘고 깊게 갈라지는 남산제비꽃이 아닌가. 혹 인왕산 건너편의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일까. 하지만 그것마저 서울이 독식할 순 없다. 동서남북은 어디에나 있고 따라서 남산은 전국적으로 너무나 흔한 산이름이니까. 척박한 인왕산을 산책하다가 멀고 높은 산에서 본 꽃을 다시 만난 반가움에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던 남산제비꽃.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ㅣ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