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예술] 역사 예술 문화 경영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푸레택 2022. 5. 10. 17:30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daum.net)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서울신문]시인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물들을 만난다. 모든 인물들은 (시인에게는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원칙적으로 몸이 없기에 볼 수 없는 존재

news.v.daum.net

2010년 12월, 대전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두 그림자 /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시인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물들을 만난다. 모든 인물들은 (시인에게는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원칙적으로 몸이 없기에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신체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실은 영혼이며 그림자다.

‘연옥편’ 2곡(74~77)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나 반가운 나머지 단테를 껴안으려 하고, 단테 역시 그를 끌어안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팔은 허공을 휘저으며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아, 겉모습 말고는 공허한 영혼들이여/ 그를 세 번이나 껴안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손은 내 가슴으로 되돌아왔다”

연옥편 3곡(16~30)에도 그림자 얘기가 나온다. 스승이자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태양을 등지고 나란히 걷고 있다. 당연히 두 사람의 그림자는 그들 앞에 드리우게 된다. 단테는 자기 그림자는 보이는데 베르길리우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리 뒤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내 몸이 그 빛줄기를 막았기 때문에/ 내 앞의 바닥에서 부서졌다/ 나는 오직 내 앞에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고/ 혹시 혼자 남은 것이 아닌지 두려워/ 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단테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베르길리우스는 설명한다. 자신의 물리적 신체는 다른 곳(지상)에 묻혀 있으며, 투명한 영혼은 태양빛을 통과시키므로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고. “나의 위안이신 그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아직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널 인도하지 않느냐?/ 지금 내 앞에 아무런 그림자가 없더라도/놀랄 필요는 없다”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는 단테보다 1300년 앞서 살았던 로마의 시인이다. 그의 영혼이 단테를 이끌어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그림자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의 징표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림자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살아 있는 인간의 특질인 것이다.

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둘 다 살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자. 물론 사람답게 살아야 할 의무도 뒤따른다. 인간은 제분기(製糞機)가 아니기에.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ㅣ서울신문 201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