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마지막회)밤하늘은 왜 어두울까 (daum.net)
[사이언스N사피엔스](마지막회)밤하늘은 왜 어두울까
“밤하늘은 왜 어두울까?” 30년 전 대학 신입생일 때 수강했던 천문학개론의 기말고사 문제 중 하나였다. 그때 수업을 열심히 듣지도 않았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된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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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마지막회) 밤하늘은 왜 어두울까
“밤하늘은 왜 어두울까?” 30년 전 대학 신입생일 때 수강했던 천문학개론의 기말고사 문제 중 하나였다. 그때 수업을 열심히 듣지도 않았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된 답을 적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밤에는 태양이 없으니까 당연히 어둡지, 이런 답을 원하고 낸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밤하늘, 즉 우주가 어둡다는 것은 일단 우리 우주의 겉보기 모습, 즉 외모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다.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당연히 빛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결과는 우리 우주의 중요한 물리적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우주란 영원불멸이고 끝도 없이 무한히 뻗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런 우주에서 별들이 큰 규모에서 봤을 때 대체로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면 밤하늘의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대낮처럼 밝아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지구에서 거리 R만큼 떨어진 거리에 N개의 별이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고 하자. 이 N개의 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반지름이 R인 구면 S1 위에 균일하게 존재할 것이다. 이보다 두 배가 먼 거리, 즉 2R만큼 떨어진 곳에는 몇 개의 별이 있을까? 2R만큼 떨어진 곳의 별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반지름이 2R인 구면 S2 위에 존재할 것이다. 구면의 넓이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S1과 비교했을 때 S2의 넓이는 2의 제곱인 4배가 된다. 별들은 각 구면에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고 가정했으므로 별의 개수 또한 제곱으로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구면 S2 위에는 4N개의 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별은 지구에서 봤을 때 더 어두워 보인다. 얼마나 더 어두워 보일까? 광원에서 매초 N개의 광자가 방사형으로 방출된다고 생각해 보자. 광원에서 R만큼 떨어진 구면 S1과 2R만큼 떨어진 구면 S2를 상상해 보면 S2의 반지름이 S1의 반지름의 2배이므로 구면의 넓이는 2의 제곱인 4배가 된다. 따라서 광원에서 나온 똑같은 개수의 광자가 S1에 비해 S2에서는 4배 넓은 면적을 채우게 된다. 그 결과 S2에서는 S1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어두워진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구에서 임의의 거리만큼 떨어진 구면 S0을 상정했을 때 그보다 2배 멀리 있는 구면에는 별의 개수가 4배 많지만 각 별의 밝기는 4배 줄어든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S0에 있는 별들과 같은 밝기로 보일 것이다. 이 관계는 지구에서 임의의 거리에 있는 가상의 구면에 대해 모두 성립할 것이므로 지구를 중심으로 한 임의의 모든 구면에 있는 별들은 똑같은 밝기로 지구를 밝힐 것이다. 그 결과 밤하늘은 무한히 밝아야 한다. 이것이 올베르스의 역설로 19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베르스에서 따 온 말이다.
올베르스의 역설을 들여다보면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리 우주의 물리적 특성과 큰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우주가 정적이고 무한히 크며 별도 균일하게 무한히 많을 수는 없다. 결국 밤하늘이 어두우려면 지구에 도달하는 별빛의 양이 무한하지 않고 유한해야만 한다.
우선 우주공간 자체가 유한하다면 역설을 피할 수 있다. 만약 우주가 공간적으로 무한하더라도 시간적으로 유한하다면, 즉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면 올베르스의 역설을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가 탄생할 때 생긴 별이 있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에 우주의 나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기 (광속이 무한히 크지 않고 유한한 값을 가지니까)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에드가 앨런 포는 이런 논리로 올베르스의 역설을 설명하기도 했다.
별에 집중해서 보자면 지구에 별빛을 보낼 수 있는 별의 개수가 유한하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만약 우주 공간 속의 먼지나 구름 등이 별빛을 흡수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더라도 수많은 별빛을 흡수한 먼지와 구름이 계속 데워져 결국 다시 빛을 방출하게 된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별이나 은하가 지구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광원이 멀어지면 도플러 효과에 따라 파장이 길어져서 가시광선도 마이크로파까지 늘어질 수 있다. 그에 따라 빛의 에너지도 감소한다. 별이나 은하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우주의 공간 자체가 팽창하더라도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어두운 밤하늘은 우주의 본성에 간단치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에도 아주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은 우주를 영원불멸의 정적인 공간으로 여겼다. 천하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 이론을 완성한 뒤 자신의 막강한 이론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 보았다. 이것은 1917년의 일로서, 과학적인 이론으로 우주를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아인슈타인에게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영원불멸이고 정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자신의 신념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의 곡률로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 등 중력 작용을 일으키는 질량들이 분포해 있고 그에 따라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진다. 아인슈타인의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우주와 일반상대성 이론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우주가 동적으로 진화한다는 결론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으나, 아인슈타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을 끝까지 믿는 대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믿고 거기에 자신의 방정식을 끼워 맞추기로 했다. 아인슈타인은 영원불멸의 정적인 우주를 만들기 위해 일반상대성이론에 임의로 상수를 하나 추가했다. 이를 ‘우주상수’라고 부른다. 우주상수는 말하자면 공간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우주상수는 반중력의 효과를 발휘한다. 천체들이 중력 작용을 계속하면 주변의 시공간은 계속 휘어지고 결국에는 중력 수축해 우주 전체가 찌그러져버릴 것이다. 이를 막는 것이 우주상수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에 우주상수라는 항 하나를 임의로 추가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영원불멸의 정적인 우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유지된 균형은 그리 안정적이지는 못했다. 게다가 방정식에 임의의 상수를 손으로 집어넣는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도 아니었다. 아인슈타인 자신이 우주상수가 일반상대성이론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반상대성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전유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몇몇 과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해 우주 자체를 연구하면서 아인슈타인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프리드먼과 벨기에의 조르주 르메트르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정적인 우주와 달리 동적으로 변화하는 우주론을 지지했다. 프리드먼은 태초에 우주가 팽창하고 있었다면 여느 물질들에 의한 중력 수축과 균형을 맞추며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프리드먼은 우주의 진화와 관련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중력 작용을 하는 요소(별이나 은하 등)가 우주에 아주 많아서 이들의 중력작용이 팽창보다 우세한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는 어느 순간 팽창을 멈추고 중력수축에 의해 다시 찌그러질 것이다. 둘째는 이와 반대의 경우로 중력작용을 하는 요소가 너무 적어 이들의 중력 작용이 팽창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때는 우주가 한없이 팽창을 계속할 것이다. 셋째는 중력 작용을 하는 요소가 어떤 임계값을 가져서 중력 작용과 팽창이 서로 비기게 되는 상황이다.
아인슈타인은 프리드만의 결과를 좋아하지 않았다. 수학적으로는 옳다고 해도 물리적으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입장이었다.
몇 년 뒤 르메트르는 독립적으로 프리드먼과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특히 그는 일반상대성 이론으로부터 우주가 팽창하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는 1929년 미국의 에드윈 허블이 외계은하를 관측해 우주의 팽창을 확인한 것보다 2년 앞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법칙을 오랫동안 ‘허블의 법칙’으로 불러왔으나 2018년 국제천문연맹의 권고 이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부르고 있다.
르메트르는 1927년 솔베이 학회에 참석해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의 결과를 설파했으나, 아인슈타인은 “당신의 수학은 옳지만 물리는 형편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이후 1931년 르메트르는 일명 ‘원시원자’의 개념을 제시해 우주 탄생의 순간을 묘사했다.
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사실 팽창하는 우주가 옳다면 원시원자의 개념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시간에 따라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렸을 때 태초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의 ‘원자’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드먼과 르메트르의 이론은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1929년 허블이 팽창하는 우주를 관측하고 이후 빅뱅우주론의 많은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현대 우주론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흔히 'FLRW 우주론'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F와 L은 프리드먼과 르메트르의 이름에서 따온 글자다. 지금은 인류가 우주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알게 됐지만 프리드먼의 우주론이 나온 지 이제 겨우 100년이 됐을 뿐이다.(끝)
※ 참고자료
-Einstein, A. (1917). "Kosmologische Betrachtungen zu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 Sitzungsberichte der Königlich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Berlin, DE. part 1: 142–152.
-Friedman, A. (1922). "Über die Krümmung des Raumes". Zeitschrift für Physik. 10 (1): 377–386.
-Friedman, A. (1924). "Über die Möglichkeit einer Welt mit konstanter negativer Krümmung des Raumes". Zeitschrift für Physik. 21 (1): 326–332.
-G. Lemaitre, "Un Univers homogène de masse constante et de rayon croissant rendant compte de la vitesse radiale des nébuleuses extra-galactiques". Annales de la Société Scientifique de Bruxelles (in French). 47: 49. April 1927.
-"IAU members vote to recommend renaming the Hubble law as the Hubble–Lemaître law" (Press release). IAU. 29 October 2018, https://www.iau.org/news/pressreleases/detail/iau1812/?lang.
-조 던클리, 《우리 우주》 (이강환 옮김), 김영사.
-G. Lemaitre, "The Beginning of the World from the Point of View of Quantum Theory". Nature. 127 (3210): 706. 9 May 1931.
※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글=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ㅣ동아사이언스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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