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화단에서/나해철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화단에서 - 나해철
화단에서 / 나해철
눈시울에 뜨는 그믐을
싸리 보라 꽃으로 가리우고
해마다 진 꽃들이
강 건너 외길을
하나 둘 세며 오는
강 마을 작은 등불을 보다
불빛 속에
숨진 꽃들을 일으켜 세워
자운영, 수수꽃다리
그해 시집가는 누님의
맨드람 얼굴도
빛나는 꽃잎을 펼치어 들고
자욱이 뿌려진 불꽃 아래
꽃, 송이끼리 아우러지는
다수운 慶事의 밭
눈시울에 뜨는
그믐을 꽃잎으로 가리우는
싸리, 뜨락에
고운 꽃보라, 기억의
겨울화단으로
늘 하나 둘 세며 오는
강 마을의 가물거리는 불빛이여
44년 전 스무 살이었던 청년이 있었다. 시를 사랑했던 청년은 의과대학에 갔다. 부모님의 뜻을 어길 수 없었다. 벚꽃이 환한 봄날 낡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청년과 만났다.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랑 연애할 때 입은 옷이야. 1940년대 초반의 옷. 그 옷을 입고 청년은 의과대학에 다니며 시와 연애했다. 어두운 시절 그는 내내 삶의 경사를 꿈꾸었고 마음속 강마을의 불빛을 셈하였다. 훗날 그는 세월호에서 숨진 304명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슬프고 아름다운 시집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을 냈다. 이 시는 청년이 스무 살에 ‘길목’이라는 동인지에 쓴 시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19.03.01
/ 2022.05.0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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