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미니픽션] 창작자의 길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과 정용이 입주해 있는 원룸 건물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살고 있고, 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거주하고 있고, 초등학생 남매를 둔 일가족도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들은 환갑을 훌쩍 넘긴 독거노인들이었다.
매일 빈 유모차를 밀고 나오는 할머니가 있었고, 복도에 퉤퉤, 아무렇지 않게 가래침을 뱉는 할아버지도 많았다. 여름밤, 늦게 퇴근해서 돌아오다 보면 비슷비슷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원룸 중앙 현관 앞 계단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말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새벽 네 시 삼십 분 무렵 불이 켜지는 방은 여지없이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방이었다.
진만은 원룸 건물에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지냈다. 올해 일흔네 살이 된 황화수 할아버지였는데, 늘 알록달록한 추리닝을 입고 다녔다. 숱이 많은 흰 눈썹과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반들반들한 이마와 정수리, 거기에 항상 끼고 있는 흰 목장갑까지. 진만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부모 속 꽤나 썩였겠구나, 생각한 적은 있었다. 진만은 황화수 할아버지와 원룸 문고리를 고치다가 알게 되었다.
진만과 정용이 사는 원룸은 그 흔한 도어록 잠금장치 없이 열쇠로 문을 잠그고 여는 구조였는데, 어느 날 문고리 안에 들어간 열쇠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그리 힘을 준 것도 아니고, 맞지 않는 열쇠를 억지로 밀어 넣은 것도 아닌데, 마치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듯 툭 그렇게 되어 버렸다. 진만은 난감한 심정이 되어 멀거니 문고리를 내려다보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정용에게 갔다 올까, 하지만 그것도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았다. 부러진 열쇠가 문고리 안에 있으니…. 진만은 원룸 건물 밖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워와 툭툭 그것으로 문고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예 문고리를 다 떼어내고 교체하는 게 빠를 거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문고리를 내리치고 있을 때, 문제의 황화수 할아버지가 복도에 나타났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가만히 진만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곤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전동드릴을 들고 다시 진만 앞에 나타났다.
“교체할 거지?”
황화수 할아버지는 전동드릴의 스크루를 갈아 끼우면서 물었다. 진만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만 원이야. 문고리값은 별도고.”
그날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황화수 할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생활비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었다. 원룸 건물뿐만 아니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문짝을 고쳐주거나 부러진 식탁 다리를 다시 이어주거나 망가진 센서 등을 손봐주는 일을 했다. 언제나 일의 착수가 먼저였고, 돈은 그 후에 받았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일흔넷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팔뚝 위엔 힘줄이 선명했다.
하지만 황화수 할아버지의 진짜 정체는 다른 데 있었다. 진만은 그것을 불과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원룸 건물로 들어서는 진만을 황화수 할아버지가 불러 세웠다.
“자네, 지금 바쁜가?”
황화수 할아버지는 전동드릴을 들고 나타났을 때와는 다르게 어쩐지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바쁘지 않으면 이번엔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했다. 진만은 잠시 망설였다. 바쁘진 않았지만 몸이 피곤했다. 하지만 또 같은 원룸 건물에 살면서 계속 얼굴을 맞부딪혀야 하는 사이인데…. 진만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진만은 황화수 할아버지를 따라 302호로 갔다. 그곳이 황화수 할아버지가 혼자 사는 방이었다.
“이건 자네만 알고 있게.”
황화수 할아버지는 현관에 길게 드리워진 암막 커튼을 걷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막 커튼을 걷자 드러난 황화수 할아버지의 방 한가운데엔 원목 탁자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작은 마이크와 조명 장치까지.
“사실 나 유튜버야. 크리에이터지.”
황화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옷장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이내 스님들이나 입는 장삼으로 갈아입었다.
‘화수 거사의 정국진단’
그것이 황화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이라고 했다. 장삼으로 갈아입은 황화수 할아버지는 원목 탁자 뒤 의자에 앉았다. 탁자 옆에는 낡은 소형 오디오가 한 대 있었는데, 전원을 넣자 ‘반야심경’이 낮게 흘러나왔다.
그날, 진만은 황화수 할아버지가 방송을 하는 내내 전선으로만 이어진 백열등을 들고 스마트폰 바로 뒤에 서 있어야만 했다. 오늘 내로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조명 장치가 갑자기 말썽을 부려 급하게 부탁을 한 것이라고 했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진만에게 자신의 흰 목장갑을 벗어주었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아니 화수 거사는 방송 내내 이런 식의 말을 했다.
“오월은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달이지요.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고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은 법인데, 그런데도 오월은 항상 같은 고통을 우리 중생에게 안겨주는 달이기도 합니다. 바로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는 달이지요. 이곳저곳에서 우리 중생들이 세금 폭탄을 맞고 신음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입니까! 이게 다!”
화수 거사는 계속 원목 탁자를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면서 말했다. 그 때문에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은 ‘반야심경’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화수 거사는 한 시간 가까이 계속 그렇게 화를 내다가 마지막 멘트를 했다.
“우주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도 관계를 떠나선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중생들이여, 좋아요와 구독은 필수라는 거, 그거 잊지 마시길 바라옵나이다. 나무관세음보살.”
화수 거사는 스마트폰을 보며 합장을 했다. 진만은 백열등을 든 채 슬쩍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화수 거사의 정국진단’의 이전 방송 조회수는 ‘22’였다. 진만은 화수 거사가, 아니 황화수 할아버지가 어서 정신을 차리길, 마음속으로 슬쩍 바라보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19.05.30
/ 2022.05.05(목)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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