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다음에 - 박소란

푸레택 2022. 5. 5. 10:34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다음에/박소란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다음에/박소란

[서울신문]다음에/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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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식 / 산, 141-165㎝, 천 배접에 아크릴과 먹전 동아대 예술대학 교수.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다음에 - 박소란

다음에 /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 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모국어가 이승의 삶에 마련한 비밀 무기가 하나 있다. ‘다음에’라는 말. 먼 지평선 끝 어둠 속에 피워 놓은 모닥불 하나를 연상케 한다. ‘다음에’라는 말, 코가 넓은 그물 같다. 지키지 못한 약속도, 정의롭지 못해 불편한 마음도, 망각한 연인의 생일도 허허롭게 빠져나갈 수 있다. 다음에는 모로코의 사막에 당신을 위해 눈사람 하나를 세워 놓겠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19.02.08

/ 2022.05.05(목)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