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세계적으로 950종류나 되는 목련이야기 (daum.net)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세계적으로 950종류나 되는 목련이야기
그토록 찬란했던 봄꽃들이 시들어 떨어졌다. 예년에 비해 일주일 쯤 늦게 만개한 벚꽃은 고작 열흘 정도 머무르다 떠났고, 노란 꽃잎으로 새 봄을 불러오던 개나리 가늣한 가지 위에는 초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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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세계적으로 950종류나 되는 목련이야기
1억4000만년 전에 꽃피운 화석식물, 목련
높이 10m 국내서 가장 큰 진도 석교리 목련
7월 중순 우아한 꽃 피우는 태산목
그토록 찬란했던 봄꽃들이 시들어 떨어졌다. 예년에 비해 일주일 쯤 늦게 만개한 벚꽃은 고작 열흘 정도 머무르다 떠났고, 노란 꽃잎으로 새 봄을 불러오던 개나리 가늣한 가지 위에는 초록의 잎들이 무성하다. 시나브로 화려한 봄꽃의 상징인 목련 꽃잎도 떨어졌다. 오래 기다렸건만 짧게 지나가는 봄이어서 아쉬움이 크다.
백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는 금세 시들어 떨어진 목련 종류는 백목련이다. 눈을 넓히면 이제 한창 피어나는 목련 꽃도 있고, 아직 꽃봉오리조차 여물지 않은 종류도 있다. 이를테면 백목련만큼 흔하지는 않아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자목련은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지금이 한창이다. 거기가 끝이 아니다. 자목련 종류에 이어 노란 색의 특별한 꽃잎으로 피어나는 황목련 종류는 이달 말부터 오월 초까지 연달아 피어날 것이다.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칠월 중순께에야 꽃 피우는 목련도 있다. 태산목이라는 이름의 목련 종류다. 심지어 여름에 피어나서 가을 지나 겨울까지 꽃 피우는 목련 종류도 있다.
목련이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때는 일억사천만 년 전이다. 그 시절의 화석에서도 목련이 발견되기에 ‘화석식물’이라고도 부른다. 긴 세월 거치며 목련은 자연 상태에서 다양한 종류로 진화했을 뿐 아니라, 현대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 새로운 품종이 선발되어 나왔다. 마침내 목련 종류는 이제 세계적으로 무려 950종류나 번성하고 있다.
흔히 봄꽃의 상징으로 백목련을 꼽긴 하지만, 한여름에 꽃 피우는 목련 종류도 있다. 태풍이 한반도를 지날 무렵에 탐스럽게 꽃을 피우는 태산목이 여름에 피어나는 목련 종류다. 태산목은 북아메리카 지역이 고향인데, 우리가 좋아하는 목련 종류와 달리 상록성 잎을 가졌다. 짙은 초록의 투툼하고 큼지막한 잎 사이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하얀 꽃은 여간 우아한 게 아니다. 태산목 꽃은 생김새나 크기가 모두 연꽃을 빼어 닮았다. ‘나무 위의 연꽃’이라는 뜻의 이름인 목련(木蓮)의 근원을 알 수 있게 한다.
거개의 목련 종류가 그렇듯이 태산목도 강한 향기를 가졌는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향기를 매우 불길하게 여기면서, 태산목 꽃 핀 그늘에서 잠을 자면 귀신에게 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아메리카에 이주한 유럽인들은 거꾸로 태산목을 무척 좋아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에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가 같은 태산목을 주화州花로 지정했을 정도다. 같은 향기를 놓고, 문화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다른 경우다.
우리나라에는 특별한 태산목 한 그루가 있다. 2014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선물로 가져온 태산목이다. ‘잭슨 목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백악관 화단을 초록빛으로 돋보이게 하던 나무다. 백악관 풍경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던 나무인데,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고사해서 2017년 12월에 뿌리째 뽑아냈다.
잭슨 목련은 1828년에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된 앤드류 잭슨이 처음 심었다. 잭슨은 선거 운동 기간에 아내 레이첼이 죽자, 그의 평안한 안식과 부활을 기원하는 의미로 정원에 심었다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백악관 화단에 옮겨 심으며 아내를 그리워했다. 사연을 알게 된 미국인들은 이 나무를 ‘잭슨 목련’이라고 부르며, 영원한 안식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2014년 4월에 우리나라를 찾아온 오바마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의 영원한 안식과 부활을 기원하는 의미로 잭슨 목련의 묘목을 가져왔다. 오바마가 가져온 잭슨 목련의 묘목은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에 심어져, 지금까지 잘 키우고 있다.
미국인뿐 아니라, 목련은 전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나무다.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곁에 많이 심어 키우는 건 백목련과 자목련으로, 모두 중국이 고향인 나무다. 안타까운 건 분명히 우리의 토종 목련이 있음에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토종 목련은 거의 멸종 위기 수준이라 해도 될 만큼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우리의 토종 목련은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중부지방에서는 키우기 어려워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해질 기회를 얻기 힘든 조건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 목련의 개체 수가 줄어든 이유가 단순히 지리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라, 백목련과 자목련의 위세에 밀려난 탓이라는 데에 더 큰 아쉬움이 있다.
우리 목련도 흰 꽃을 피우지만, 중국산 백목련과는 차이가 있다. 가장 또렷한 차이는 꽃송이에 있다. 둘 다 꽃잎은 여섯 장인데, 백목련의 경우, 꽃받침 석 장이 꽃잎과 똑같은 모양으로 변화해서 아홉 장의 꽃잎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목련은 여섯 장의 꽃잎만으로 꽃을 피워서, 풍성하면서도 다소곳하게 피어나는 백목련에 비해 조형미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결국 꽃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키우려는 사람들은 우리 목련을 제쳐놓고, 중국산 백목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목련은 차츰 우리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우리 목련 가운데에 오랜 세월을 살며 무척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던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전라남도 진도의 석교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목련이다. 이 나무는 전라남도에서 2002년에 지방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해 왔다. 그런데 기념물로서 이 나무의 공식적인 이름은 ‘진도 석교리 백목련’이었다. 석교초등학교 목련은 꽃잎이 여섯 장인 우리 토종 목련이 틀림없는데도, 지역을 대표하는 기념물을 지정하는 과정에서조차 제 이름을 잃었다.
진도 석교리 목련은 석교초등학교를 개교한 1920년에 심었다고 하니, 1백 년 정도 살아온 나무다. 목련으로서는 노거수 축에 속한다. 워낙 크게 자라는 태산목 종류를 제외하면 규모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안의 모든 목련 종류를 통틀어 가장 큰 나무라 할 수 있다. 나무 높이는 10m를 넘으며,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의 폭은 11m 쯤 된다.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여럿으로 나누어진 이 나무의 뿌리 둘레는 3m 가까이 된다.
줄기가 땅에서부터 셋으로 갈라지면서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나뭇가지는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 바로 옆에 팽나무와 굴참나무 등이 연이어 심어져 있어 작은 학교 숲을 이뤘는데, 목련 꽃이 피어나고, 다른 나무들에 연초록 잎이 돋아날 때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답다. 학교의 역사와 함께 한 이 나무는 당연히 석교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섬마을 진도의 대표적 상징이다.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까지도 온 정성을 다해 극진히 보호해왔다.
우리 토종 목련의 대표적인 나무인 진도 석교리 목련은 그토록 아름다운 자태로 해마다 우리의 봄을 화려하게 밝혔는데, 몇해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 마침내 고사 판정을 받았고, 지난 2020년 9월 10일에 지방기념물에서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토종 목련의 대표 나무가 중국산 나무의 이름인 ‘백목련’으로 살다가 ‘백목련’으로 죽었다. 살아서도 제 이름 ‘목련’으로 불리지 못하던 우리 토종 나무가 죽는 순간까지도 제 이름을 되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없이 안타깝다.
고작 25만 년을 살아온 호모사피엔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1억 4000만 년 전부터 이 땅의 봄을 수굿이 불러왔던 목련은 봄의 상징으로 혹은 부활의 상징으로 빠르게 들고나는 사람살이의 한 켠을 지켜왔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떨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며 사라져가는 한 잎의 목련 꽃잎을 더 소중하게 바라보게 되는 계절이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ㅣ아시아경제 2022.04.22
/ 2022.05.0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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