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오만의 노예가 되어 신들의 영역에 오른 자 (daum.net)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오만의 노예가 되어 신들의 영역에 오른 자
(21) 레드 카펫
귀향
고대 그리스의 오래된 도시 아르고스의 원로원들은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을 기다린다. 그들은 왕의 귀환이 그리 반갑지 않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왕비 클리템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의 사촌 동생이자, 원수인 아이기스토스와 사귀면서 끔찍한 일을 기획한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된 아트레우스 가문의 저주를 아가멤논 살해로 끝내고 싶었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아가멤논’ 처음에 등장하는 원로들의 노래는 미래 일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할 지혜가 없다. 그들은 제우스의 선함을 찬양한다. 제우스 신에게는 용서와 화해뿐만 아니라 형벌과 불행을 일으키는 악함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제우스는 분노의 여신들과 합세하여 불의한 자를 가차 없이 처단할 것이다. 이 비극 작품의 처음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내용처럼, 아가멤논의 용맹성을 찬양할 것이다. 이 찬양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처럼, 아가멤논의 목을 겨눌 복수의 칼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클리템네스트라에 대한 암울한 전조일 뿐이다.
정의와 복수의 갈등은 아가멤논의 클리템네스트라의 정면대결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아가멤논은 여느 인간처럼 모순덩어리다. 정의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도, 자신에게 소중한, 자신의 분신인 딸 이피게니아를 희생 제물로 신에게 바친다. 전쟁에서는 수 천명을 거느리는 대장이지만, 집안에서는 아내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다. 전쟁터에서 적들의 수를 읽는 전략가이지만, 10년 만에 아내를 만나러 가면서 전쟁 포로를 첩으로 데려가는 바보다. 오리엔트의 가장 부유한 도시인 트로이를 함락하여 수많은 재화를 획득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그 부를 누릴 수 있는 마음 수련을 하지 못해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다.
아르고스 원로들은 트로이를 함락하고 아르고스를 구원한 아가멤논을 칭찬한다. 그들은 아가멤논을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로서 존경한다. 그러나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통해 아가멤논을 알고 있는 아테네 시민들은 그가 용맹스럽지만, 동시에 무모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도 아가멤논을 최고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매정하고 비인간적인 인물로 부각시킨다.
클리템네스트라
아가멤논과 대결하는 자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이나 헥토르가 아니다. 10년 만에 돌아가는 집에서 자신을 환영할 것이라고 믿은 사랑하는 아내 클리템네스트라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영국 시인 밀턴의 서사시 ‘실락원’에 등장하는 사탄과 같다. 천재적이며, 치밀하고 실수가 없으며, 거만하다. ‘실락원’의 사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약해지는 반면, 아이스킬로스의 클리템네스트라는 점점 강해져 아가멤논마저 압도하는 영웅이다. 그녀는 자신의 딸인 이피게니아를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친, 자신의 남편에게 복수할 권리를 당당히 가진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지난 2400년 동안 서양 드리마 역사에서 가장 악마적이면서도, 이중성과 아이러니로 묘하게 매력적인, 가장 영웅적인 여인이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문장에서 말하는 ‘그’는 현재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인지 아니면 과거의 사랑이었던 아가멤논인지 알 수가 없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지난 10년 동안 아르고스 궁궐 안에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우선순위를 매기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딸을 살해한 남편 아가멤논을 사랑하고 정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녀는 현재의 사랑 아이기스토스를 선택했고, 아가멤논에 대한 복수를 결정했다. 그녀는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하자면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렸어요. 더는 나올 게 있어야죠.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우다 보니 눈도 상했어요. 당신의 봉화를 기다리며 나는 울었지요.”(887-890행) 그 봉화는 클리템네스트라의 마음으로 들어가 사랑이 아닌 분노와 복수로 불타고 있었다.
그녀가 지난 10년 동안 독수공방하면서 들은 소식은 끊임없는 비보였다. 그 비보는 트로이전쟁에서 희생된 이름 모를 수많은 군인들이다. 언젠가부터 그 군인들의 희생이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의 희생과 연결되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은 더욱더 깊어져 갔다. 그녀는 하나 밖에 없는 그들의 아들 오레스테이아를 언급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서약의 담보인 당신과 나의 아이는 지금 우리 곁에 없어요. 우리 아이가 여기 있어야만 하는데도. 오레스테이아.” (877-879행)
레드 카펫
클리템네스트라는 아직 마치에서 내리지 않는 아가멤논을 위해 레드 카펫을 깔아놓았다. 레드 카펫은 클리템네스트라가 아가멤논에게 선언하는 유죄선고다. 레드 카펫은 신들을 위해 구별된 거룩한 물건이다. 그 위에 올라가 레드 카펫을 밟는 행위는 오리엔트의 오만한 왕이나 하는 건방진 행동이다. 자기 스스로 신이라고 착각하여 한 치의 앞을 보지 못하는 정신적인 맹인 상태에 들어갈 때 하는 짓이다. 아가멤논과 같은 인간에겐 놓칠 수 없는 유혹이며 시험이다. 레드 카펫은 은으로 수놓아져 있고, 선홍 자줏빛으로 염색한 실을 엮어 만들었다. 그것 자체가 파라다이스이며 신들만이 좌정할 수 있는 터부의 공간이다. 자줏빛 염료는 지중해 앞바다에서 채집한 ‘무렉스(murex)’라는 진귀한 조개에서 축출한다. 고대사회에서 이 염료는 금보다 귀했다. 그런 염료로 만든 카펫은 신적이다. 레드 카펫은 오리엔트의 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복수의 피의 상징이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레드 카펫에 올릴 셈이다. 그녀는 하녀들에게 명령한다. “하녀들아, 너희는 무엇을 주저하느냐? 길에다 융단을 깔라고 이르지 않았더냐? 어서 자줏빛 길을 만들어라. 정의의 여신께서 돌아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이 분을 집으로 인도해라. 그러면 잠도 정복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신들의 도움으로 적절히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908-914행)
이 말에 아가멤논은 거절한다. 그는 이런 의식은 신에게나 어울리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인간이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두려워서도 감히 그런 짓을 못하겠소. 나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존경을 받고 싶소.” 클리템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가멤논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사람들이 욕할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클리템네스트라가 이렇게 몰아붙이자, 아가멤논은 말한다. “이렇게 시비를 거는 것이 여자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그만두세요.” 그러자 클리템네스트라는 “행운을 누리는 자는 때때로 져주는 것도 어울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청이자 명령한다. “양보하세요.”(944행) 그녀는 그리스 단어 ‘피쑤(pithou)’를 사용한다. 아가멤논과 클리템네스트라가 주고받는 단문에서, 아이스킬로스는 ‘피쏘스’라는 그리스 단어에서 파생된 ‘피쑤’를 사용한다. ‘피쏘스’의 기본적인 의미는 ‘고통’이다. 이제는 아가멤논이 그녀가 당한 고통을 당할 차례다.
오만한 아가멤논
아가멤논은 그 순간에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자신이 10년 전 아울리스에서 딸을 희생제물로 바쳐 명성을 쟁취하려던 마음이 서서히 일어났다. 그는 10년 후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와, 자신의 오만을 자극하는 클리템네스트라의 감언이설에 속아 다시 한번 오만의 노예가 된다. 그는 말한다. “당신 뜻이 정 그렇다면 좋소. 내 발을 위해 노예처럼 봉사해온 이 신발의 끈을 누가 지체 없이 풀도록 하라. 그래야만 신들에게 어울릴 이 자줏빛 천을 밟는 나에게 멀리서 누가 시기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테니까.” (944-947행) 아가멤논이 레드 카펫을 밟고 침실로 들어가자, 클리템네스트라가 바로 뒤따라 들어간다. 궁궐 안에서 죽음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레드 카펫은 인간에게 명성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명을 선사한다. 자신의 위치를 매 순간 섬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주위의 칭찬에 도취되어 선택한 행위가 죽음으로 이어진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ㅣ한국일보
/ 2022.04.28 옮겨 적음
'[생각의 숲] 삶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23) 분노와 복수, 그 대안은?.. 정의의 이름으로 어머니와 그 情夫를 죽이다 (0) | 2022.04.28 |
---|---|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22) 오만과 복수.. 엉겨 붙어 풀어질 줄 모르는 복수의 피 (0) | 2022.04.28 |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읽기] (20) 명성에 눈 먼 아가멤논, 딸을 희생양으로.. (0) | 2022.04.25 |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19) 존재하는 모든 건, 정의롭고도 불의하다 (0) | 2022.04.25 |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18) 어머니 살해한 오레스테스 통해 '복수 너머의 정의' 말하다 (0) | 2022.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