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글쓰기(1) 혼자여행일수록 신선한 글감이 '팡팡' (daum.net)
[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글쓰기(1) 혼자여행일수록 신선한 글감이 ‘팡팡’
나만의 여행스타일 찾는 게 중요
오랜 경험 여행에 투영한 글쓰기해 볼만
남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여행 글을 쓰고 싶으시다구요? 누구나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호기심 넘치는 여행 글을 쓰고 싶으시다구요? 그렇다면, 먼저 재미있는 여행을 하세요! 재미없는 여행을 하고 재미있는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편집자>
여행에도 나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솔직히 우리나라 노·장년층은 본격적인 자신만의 여행에 서툰 편이다. 현재 은퇴세대 대부분은 청년 시절엔 오롯이 나만의 여행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지 못했고, 가정을 가진 후엔 흔히 아이들이나 가족 중심의 여행을 주로 해 온 탓이다. 어느 정도 사회적·경제적 여력을 갖춘 후엔 해외여행은 주로 패키지 상품에 몸을 실었고 국내여행도 친목회 등의 단체 여행 위주다.
━ 여행을 욜로처럼
여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여행이든 친목 여행이든 패키지여행이든 단체 여행 중에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 어렵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라이프를 누리는 덕에 자신의 취향과 성향을 누구보다 구체적이고 예민하게 알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와 달리 은퇴세대는 평생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누려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나는 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나는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선호하는지, 내 성향과 취향은 구체적으로 어떤지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혼자만의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게 적합한 ‘혼자 여행’의 패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꽃이 내려갈 때 보인다’던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같이’ 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혼자’ 갈 때 보는 맛이 있다.
두렵지만, 어색하지만, 때론 외로울 수도 있지만, 젊은이들의 욜로 정신을 본받아 일단 혼자 떠나보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낯선 시간 속에서 낯선 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회적 관계속의 내 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내 옷을 걸쳐보는 시간, 남이 짜놓은 스케줄이 아닌 내 마음과 발이 이끄는 데로 그저 따라가 보는 시간. 시야는 보다 넓어지고 관념은 새로워진다.
‘혼자 여행’이 평생 처음이라면,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 첫사랑의 설렘을 평생 못 잊듯 혼자만의 첫 여행은 어떤 면에서건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낯선 경험에서라면 생각지 못했던 글 재료가 그야말로 ‘팡팡’ 터질지도 모른다. “Any experience better than no experience(어떤 경험도 경험이 없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용기가 될까.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와 팁은 이 지면에서 차차 다루겠다.
노·장년층이 청년층보다 월등히 우세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경험치다. 몇 십 년의 경험치와 삶의 노하우는 세월이 무르익어야 터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세월과 함께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여행길에도 적절히 써먹어 보자. 20~30년간 근무했던 일의 경험을 여행 속에 투영시켜 보는 것이다. 그림이나 사진, 음악이나 건축처럼 예술분야와 전혀 상관없어도 좋다. 취미로라도 그런 것들과는 영 먼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상관없다.
인사팀에 오랫동안 근무했다면 사람 보는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진지하거나 유머러스하게 할 수도 있을 테다. 예를 들면 허영만의 만화 ‘꼴’을 차용한 이야기라거나 박준의 여행에세이 ‘온더로드’처럼 여행길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소소한 인터뷰도 좋다. 사람 보는 매서운 ‘눈’이 역량을 발휘할 때다. 여행길의 8할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그런 글은 돈을 주고라도 보고 싶은 글이다.
혹은 평생을 회계팀이나 경리팀에서 근무했다고 치자. 여행길에서 만나는 식당의 메뉴 가격을 두고 맛 집 이야기를 곁들여 재미있는 글로 풀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획팀이나 마케팅팀도 좋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다양한 장소와 시설물들에 독특한 경험치를 입힐 수 있다. 매일의 일상을 잠깐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신선함이 일듯, 그렇게 여행을 일상의 눈에서 보면 또 다른 새로움이 묻어난다.
━ ‘목적없는 여행’의 매력
이도저도 귀찮고 싫다면, 때로는 다만 ‘목적 없는 여행’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 하루라도 목적 없이 살아오지 못한 은퇴세대에게는 이 또한 신선한 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치밀하고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 하는 ‘목적 없는 여행’은 그 무엇보다 새로운, 여행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버스나 기차표를 예약하지 않고, 숙박을 미리 잡지 않고, 아무하고도 만날 약속이 없는 미지의 땅으로 그냥 떠나보는 것이다. 결국 여행은 어떻든 누구에게든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길일 테니까.
이송이 일요신문 여행레저 기자/여행작가ㅣ중앙일보
/ 2022.04.27 옮겨 적음
'[해외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 글쓰기(3) 현지식대로 먹고 놀고 자고.. 여행의 발견 (0) | 2022.04.27 |
---|---|
[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 글쓰기(2) 여행의 종류, 나의 스타일은? (0) | 2022.04.27 |
[147일간의 세계여행] 80. 걷고 또 걷고 579km 남은 산티아고.. 끝이 올까? (2022.04.20) (0) | 2022.04.20 |
[147일간의 세계여행] 79. 침묵의 발걸음.. 산티아고, 나를 만나는 여정 (2022.04.20) (0) | 2022.04.20 |
[147일간의 세계여행] 78. 걷고 또 걷고.. 순례길 오아시스는 '맥주' (2022.04.20) (0) | 2022.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