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가는 길에 경악, 자기 돈이어도 이럴까 [김석봉의 산촌일기] (daum.net)
■ 지리산 가는 길에 경악, 자기 돈이어도 이럴까 / 김석봉 기자
[김석봉의 산촌일기] 벌거숭이 산을 바라보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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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표고버섯 심을 참나무 준비하는 걸 놓치고 말았다. 차일피일 미루고, 할까 말까 망설이다 세월만 보내 버렸다.
산언저리를 몇 번이나 맴돌면서 몇몇 참나무를 찜해 두었지만 정작 나서지 못했다. 우리 산이 아닌 데다 마을 사람들 눈치가 보였고, 아내의 만류도 심해 나무를 자를 수 없었다. 표고버섯 심을 나무는 12월에 잘라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입춘(立春)이 지나 버렸다.
소한 대한 지나면 나무가 활동을 시작하고, 수피에 물이 오른다. 그때는 잘라봐야 쓸모가 없다. 그렇게 늦게 자른 나무는 표고버섯 종균을 넣어두어도 한두 해 지나면 껍질이 벗겨져 버섯이 잘 피지 않는다.
"그냥 사서 해. 산림조합에서 판다면서."
"아니, 산골에 살면서 뭐 그런 거까지 사서 해? 몇 개만 베면 되는데."
12월 어느 날, 아내는 기계톱을 챙겨들고 나서는 나를 말렸다.
"저기 가까운 데 몇 개만 벨 거야. 하나에 일고여덟 덩어리가 나오니까 세 개만 베지 뭐."
"아 글쎄. 그만두라니까. 환경운동 했다는 사람이 왜 잘 살고 있는 생나무를 베려는 거야."
아내의 완고한 만류에 나는 들고 있던 톱을 놓아 버렸고, 그래도 다 버리지 못한 아쉬움에 산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며 참나무에 눈길을 주곤 했다.
참나무 몰래 베고 싶었지만
이 산골마을 남자농부가 있는 집은 표고버섯 나무는 기본이었다. 우리 집도 서른 덩이의 표고버섯 나무를 집 뒤에 즐비하게 세워두었다.
서너 해 전 아랫담 영남아지매가 고사리 밭에 그늘이 낀다며 밭두렁 곁에 있는 참나무를 잘라 달래서 잘라주고 얻어온 거였다. 지난 가을부터 실한 표고버섯이 피기 시작했다. 귀농귀촌인이 가장 먼저 장만하는 것은 단연 표고버섯 나무고,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표고버섯은 그야말로 귀농귀촌의 상징이었다.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뒷산 중턱으로 임도공사가 있었다. 그때 그 공사장에서 얻어온 표고버섯 나무는 집을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봄가을로 어마어마한 양의 표고버섯을 따 여기저기 인심도 쓰며 살았다.
그런 기억이 있어 가을걷이가 끝나면 곧 표고버섯 나무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산언저리를 돌고 임도를 따라다니며 참나무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소나무숲 속에 훤칠하게 자란 참나무를 보며 몇 덩어리 나오려나 어림짐작으로 셈을 하면서 때가 되면 저걸 베리라 마음먹곤 했다.
그러나 생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저렇듯 크게 자란 나무 앞에서는 마음이 얼른 내키지 않았다. 남의 산이라는 소유권 문제도 걸렸지만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이웃들 눈치였고, 내 양심이었다.
이 산골에 들어오고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작 생나무를 벤 기억은 거의 없었다. 한 시절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던 시기엔 나무를 사서 썼고, 가끔 벌목이 진행된 산판에서 버려진 나무덩이를 구해 쓰곤 했었다. 요즘 들어 하루 한 짐 해 나르는 화목은 벌목한 자리에 널브러진 쭉정이 나무를 챙겨오는 것이 전부였다.
"뭔 나무를 그렇게 돈들이며 사서 쓰나. 대충 몇 개만 베면 될 것을."
"저기 국유림에 가봐. 숲이 빽빽해서 솎아 베도 표도 안 날 걸."
마을 뒷산 벌목이 있던 해엔 2백만 원어치 화목을 샀는데 다 부려둘 곳이 없어 여기저기 마을공터에 쌓아두었고, 그걸 본 이웃들은 부러워하며 제각각 한 마디씩 던졌다. 그 나무는 아직도 뒷마당에 한가득 쌓여 있다.
주변 산은 온통 벌거숭이
이렇듯 나무 하나 자르기조차 어려워하며 살건만 마을 주변 산은 온통 벌거숭이가 되어가고 있다. 지지난 해는 건너편 산등성이 숲이 절단 나더니 지난해는 마을 뒤 김씨들 종중산이 벌거벗어 버렸다.
우리 마을 주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읍내로 나가는 길목 곳곳의 숲은 버짐 핀 선머슴아 머리통처럼 군데군데 움푹움푹 파이다시피 했다. 성한 경치는 보기 어려웠다.
산림청에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산주가 벌목신청을 하면 산림청에서 나무 값을 챙겨주고 나무를 깡그리 베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손가락만한 묘목을 심었다. 이른바 수종갱신사업이다.
산림청의 이 사업은 기후위기에 대처하겠다는 산림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종에 따라 탄소흡수율이 들쑥날쑥해 탄소흡수율이 높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거였다. 거기에 더해 탄소흡수율이 낮은 늙은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어 탄소흡수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라고 한다.
일견 과학적 산림정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주먹구구정책도 없을 것 같다. 그저 산주가 신청하면 신청지 수종에 대한 조사나 연구도 없이, 신청지의 지형지물은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사업대상지에 포함시켜 깡그리 베어버리는 것 같다.
사유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국유지는 더 볼썽사납다.
읍내에서 우리 마을로 넘어오는 길목은 높은 고갯길이다. 구불구불 지안재를 넘고 다시 굽이굽이 오도재를 넘어야 비로소 지리산 품으로 든다.
보름이가 우리 집으로 시집오고 사돈댁이 첩첩산중 우리 집을 처음 찾던 날 ‘세상에 이런 곳도 사람이 사냐’며 눈물 흘리고 한숨짓던 고갯길이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이 고갯길이 벌거벗기 시작했다. 울창한 자연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풍나무 묘목을 심었다. 이른바 단풍나무 고갯길을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는 군청에 산림청이 가세하여 시작된 공사다. 국민휴양림조성사업이라고도 하고 경관림가꾸기사업이라고도 한다.
고갯마루 주변 골짜기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자연계곡을 파헤쳐 석축을 쌓고 물길을 만들었다. 실개천에도 지나지 않을 골짜기가 물도 흐르지 않는 널찍한 개울로 변했다. 벽과 바닥도 돌을 깔았다. 어린 야생동물은 다니기에도 버겁게 보였다.
"참 미친 짓거리도 다하네. 자기 돈으로 하라면 저리 할까 몰라."
"여기 오도재 터널 뚫자고 하면서 또 여긴 왜 이렇게 돈을 쳐 바르는 거야?"
고개를 넘나들 때마다 이웃들은 한마디씩 했다.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우리 마을 사람들 눈에도 이 사업은 해괴한 짓거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친 짓
비록 상식이 물 건너간 세상일지라도 국가정책이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한때 남부지역은 소나무재선충이 극성을 부린다며 감염된 소나무를 잘라 훈증처리 한다고 숲 곳곳이 온통 비닐더미였다. 강원도 고성에 큰 산불이 났을 때는 침엽수가 인화성이 강해 산불을 키웠다며 침엽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국가정책이 이렇게 어긋나면 국민만 불행해진다.
이 세상 모든 탄소가 쏟아지는 도시. 근교 숲을 망가뜨리며 아파트를 짓고 산업단지를 건설하면서 탄소흡수를 위해 이 산골 자연림을 깡그리 베어 넘기는 정책을 국가정책이라고 할 수 있나.
울긋불긋 천연 단풍숲을 단풍나무를 심어 벌건 숲으로 만드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가재가 살고 도롱뇽이 살던 산정 부근 골짜기를 파헤쳐 석축을 쌓고 돌로 바닥을 까는 공사는 국가가 해서는 안 될 공사다.
아름다운 자연림을 걷어낸 자리에 단풍나무숲을 만들고 산책로와 전망대를 갖추는 것이 국민들 삶에 윤기를 더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국가가 해서는 안 된다. 상식을 지키지 않고, 거짓으로 국민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 '비상식의 이면엔 반드시 부정과 부패가 존재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며칠 춥더니 날씨가 많이 풀렸다. 절기는 우수(雨水)로 바쁘게 달려가고 있다. 어느새 여기저기서 경운기소리도 들린다.
산언저리를 거닐었다. 저만치 굴참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표고버섯 나무로 쓰면 좋겠다 싶어 잘라와야지 마음먹었던 나무다. 가슴높이 직경이 30cm는 족히 되겠다. 가만히 나무를 껴안고 볼을 맞대었다. 울퉁불퉁 수피 속으로 졸졸졸 물 차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이 나무는 살았다.
김석봉 농부ㅣ오마이뉴스 2022.02.15
/ 2022.04.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