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은 알고 있을까, '범죄 없는 마을'의 비밀을 [김석봉의 산촌일기] (daum.net)
[김석봉의 산촌일기] 군청은 알고 있을까, '범죄 없는 마을'의 비밀을 / 김석봉 기자
◆ 농촌마을 주민자치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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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노인 일자리 문제로 마을이 술렁인다. 지난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가해 월 30만 원 받았던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연금소득이 꽤 되는 주민이 탈락했고, 부부가 모두 참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탈락했다.
그런데 이 탈락 기준이 공정한 것도 아니었다. 탈락한 주민보다 더 많은 연금소득을 가진 주민이 그대로 일자리를 꿰차기도 했고, 부부가 다 참가하는 가구라고 모두 탈락하지도 않았다. 안타까운 탈락자도 있었고, 탈락했어도 누구나 수긍할 만한 사람은 탈락하지 않았다.
"그 집은 떨어지면 안 되는 집인데 왜 떨어진 거야?"
"젠장. 우리 집보다 논도 많고 밭도 많은 집은 계속하는데 우리는 왜 떨어져?"
노인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정하지 않은 애매한 기준을 가지고 마을 일을 처리해도 행정은 간섭하지 않는다. '마을에서 하는 일'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마을 기득권자의 권력 행사는 그대로 용인된다.
개인 사업장이 된 산촌생태마을
마을에 '산촌생태마을'이 있다. 산림청에서 산촌 개발을 목적으로 12억 원을 지원한 사업이다. 펜션형 숙박시설이 전부다. 이 시설은 완공되면서부터 임대료를 받는 개인 사업장으로 운영되었다.
잠시 일부 주민들이 영농조합을 만들고 마을기업을 설립해 공동사업장으로 운영하였다. 임대수익보다 성과가 좋았지만 이장은 이 시설을 다시 개인에게 임대를 줬다. 일부 주민들이 마을에서 운영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장은 매년 1천만 원의 임대료를 받기로 하고 3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행정은 이런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오히려 임차인을 관리자로 채용해 월급을 준다. 임차인은 군청으로부터 월급을 받으면서 개인사업장으로 이 시설을 운영한다. 마을은 월별 수지 내역은커녕 연간 수지 내역도 알지 못한다. 이익금은 모두 군청에서 월급 받는 관리자 몫이다.
이 모두가 불법이고 편법이고 규정 위반이다. 불법을 조사하고, 규정대로 바로 잡아야할 군청은 '마을에서 하는 일'이라고 간섭도 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수도 요금
수도 요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우리 집과 아들집, 보름이 카페까지 뭉뚱그려 16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웃은 노인네들만 살다보니 수도 요금이 대개 3~4만 원이고 소를 몇 마리 키우거나 민박이라도 조금 하는 집은 5~6만 원쯤 된다. 마을주민들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번씩 이렇게 수도 요금을 낸다.
마을 수도 요금은 마을에서 자치적으로 결정해서 징수한다. 수도 요금을 거둬들이는 목적은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모터 가동용 전기료와 마을에서 임의로 지정한 수도시설 관리책임자의 연간 인건비 1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마을 상수도는 군청에서 수도관리업체를 선정하여 위탁 관리를 하고 있다. 수도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위탁관리업체가 득달같이 달려와 수리한다. 전기료도 70~80%를 행정에서 지원한다. 이장이 결산 보고를 하지 않으면 수도 요금이 얼마나 걷히는지, 어디에 쓰는지 아무도 모른다. 책정하는 요금이 적절한지도 알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마을 수도요금 수지 내역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마을에서 어떤 명목으로 주민에게 잡부금을 걷어도 행정은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다 '마을에서 하는 일'이라고 외면한다.
반장이 무슨 일을 하길래
우리 마을은 규모가 커 행정구역이 1반과 2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반에는 반장이 있다. 마을 관리를 이장과 두 명의 반장이 나누어 맡는 셈이다. 이장은 행정에서 일정 금액 수당을 받지만 반장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주민이 한 세대 당 연간 2만 원의 반장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소위 '반장사케'라고 불리는 이 인건비는 반장이 직접 받으러 다닌다.
1년 내내 반장이 하는 일은 농협 퇴비 신청을 받는 일과 감자, 옥수수, 콩 종자 신청을 받는 일이 거의 전부다. 노인 혼자 살면서 농사를 포기한 농가는 사실상 반장이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그래도 '반장사케'를 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반장이 하는 일은 이장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이 반장 제도를 손보지 않는다. '마을에서 하는 일'이라 행정에서도 담 너머 불구경이다.
귀농·귀촌인은 주민이 아니다?
농촌인구 늘리기는 행정의 숙원이다. 이런저런 혜택과 편의를 제공하면서까지 인구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자치규약은 거꾸로 가고 있다. '들어온 사람'이 빈 집 터에 집을 지을 때는 100만 원의 수도 연결 비용을 마을에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도를 연결할 수 없다. 수돗물이 부족하다면 군청에 수도시설 증설을 요구하면 될 일을 귀농·귀촌인들에 부담을 씌운다. 우리도 몇 년 전 아들 집을 새로 지으면서 100만 원을 수도 연결 비용으로 내야 했다.
이웃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마을 뒤 언덕바지에 집터를 닦는 귀촌인은 심지어 축대 쌓을 석재를 들여오면서 100만 원을 마을에 내야 했다. 덤프트럭이 마을 안 길을 이용해야 하는데 소위 길 사용료라는 명목이다. 마을에서 노골적으로 요구하더라는 거였다.
원주민은 들어온 지 20~30년 되지 않은 귀농·귀촌인은 마을 주민으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수도 연결 요금을 5백만 원으로 올리자고도 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마을에서 하는 일'이라 행정은 나 몰라라 한다.
우리 마을에서 서쪽 산등성을 넘으면 전라북도 남원 산내다. 그곳은 주민 40%가 귀농·귀촌인이다. 그 지역은 귀농학교도 있었고, 대안학교도 있어서 도시민 정착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조금씩 귀농·귀촌인이 늘어나면서 귀농·귀촌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터도 생기고, 가게도 생기니 귀농·귀촌인이 덩달아 늘어났다. 그렇게 불어난 정착민들은 서로 취미를 공유하면서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문화생활을 향유한다. 마침내 이 지역은 농촌공동체의 본보기가 되었고,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거처가 되었다. 이 정도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 한 마을에서 난리가 났다. 대동회를 열어 이장을 선출했는데 원주민들만 모여 쑥덕공론으로 선출하였고, 주민 누군가가 선출 과정의 부당함을 알리는 민원을 냈다고 한다. 면사무소에서 이장 선출 무효와 재선출을 마을에 통보했고, 마을은 다시 대동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원주민들은 귀농·귀촌인들이 민원을 넣었다며 행패를 부렸고, 대동회에 참석한 귀농·귀촌인들은 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농촌공동체의 본보기가 되어 있는 지역 마을주민자치 모습이 이런데 다른 마을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주민자치라는 완장
주민자치라는 미명 아래 횡행하는 지역 기득권자들의 횡포는 상상을 넘는다. 주민자치라는 완장은 그들의 권위와 권력을 지켜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처럼 폐쇄적인 산골마을은 더하다. 집집마다 일가친척에 사돈팔촌으로 얽히고설켜 있으니 옳고 그름마저 분별하지 못한다.
회의는 있으나마나한 구조로 전락하였고, 마을을 쥐락펴락하는 몇몇이 결정해서 집행하면 그게 곧 법이요 규약이 되어버린다. 보이지 않는 억압과 강제가 마을을 지배한다. 역량 없는 주민자치에 마을은 곪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동체는 언감생심, 주민들은 개개인의 삶을 눈치껏 살아갈 뿐이다.
그 결과 주민들은 인정머리 없는 농촌 주민이 되어버렸고, 시기심이 많은 농촌 주민이 되어버렸고, 자기 것만 챙기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농촌 주민이 되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이장'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치법규에 이장 선출 방법과 운영에 관련한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행정에 예속되어 관리되는 준 공직자인 셈이다. 군수가 임명권자다. 이장에겐 일정 정도 수당이 지급되고, 복무지침도 마련되어 있다.
이런 지위의 이장을 주민들이 마을 주민 가운데 선출한다. 공동체를 이끌어갈 역량이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 집성촌 같은 경우엔 이 집 저 집 돌아가면서 이장을 맡기도 하고, 간혹 치열하게 선거를 치러 이장을 선출하는 마을도 있다. 이장을 맡으면 어떤 이권이 생기는지 알 수 없으나 도시 근교 경제규모가 큰 마을은 이장선거가 예사로운 선거가 아니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이장을 선거로 뽑는 마을은 몹쓸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집안과 집안의 싸움이고, 세력과 세력 간의 대결이 이 좁은 공간 속에서 일어나니 그 여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노인일자리를 잃거나 꿰차는 것도 선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이장을 그렇게 뽑아야 할까. 꼭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어야 자격이 있는 걸까. 그 마을에서 태어난, 그 마을에 집안을 둔 주민이어야 할까. 그렇게 해야 주민자치가 이뤄지는 걸까. 회의록 한 장 남기지 못해도, 결산영수증 한 장 내보이지 않아도 주민자치라는 허황된 용어에 파묻혀 꼭 이런 기준을 적용해야 할까.
집안끼리 똘똘 뭉쳐 결의를 다지고, 세력끼리 뜻을 모아 이웃을 겁박하면서 치르는 이장 선거다. 선거인명부도 없고, 투표용지도 없고, 기표소 가림막도 없고, 선거관리자도 갖추지 못한 이장 선거다. 이걸 민주주의 직접선거라 할 수 있을까. 이런 형식의 직접선거가 농촌 마을주민자치의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올해도 군청은 수많은 기간제 근로자를 모집하고 있다. 부서를 방문하면 쪼르르 달려와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라며 방문자를 맞이하는 공무원 보조근로자를 채용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폐지 정리, 신문 정리로 시간을 보내는 행정보조 기간제 근로자가 한둘이 아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를 마을관리자로
이장 제도를 '마을관리자' 공개채용제도로 바꾸면 안 될까. 전문성을 가진 젊은이를 찾아보면 안 될까. 인성 적성 능력을 검증하고, 마을관리계획을 검토해 마을에 배치하는 새로운 이장 제도를 도입하면 안 될까. 월급도 두둑이 주고, 책임도 함께 얹어주면서 마을공동체의 변화를 모색해보면 안 될까.
공무원 사무보조원을 규모 있게 채용하는 상황이니 예산도 있을 거고,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고자 하는 전문성 갖춘 젊은이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니 크게 걸림돌은 없지 않을까. 아니, 지역 젊은이들을 발굴해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면 더 좋겠지.
마을 입구에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하나 있다. 이 비석은 주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온갖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일이 벌어져도 이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이기에 신고나 민원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 비석은 오랜 세월 마을 기득권자들을 지켜왔다. 어떤 이권에 개입되었어도, 마을기금을 어떤 용도로 써도 이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이어야 하기에 입 다물고 살아야 했다. 주민들은 이 비석 아래서 마을 권력에 밉보여서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체득해 왔다.
농촌마을 주민자치의 현주소가 이와 같다. 이런 마을 권력을 혁파하지 않고, 이런 비석을 깨트려버리지 않고, 어찌 농업 농촌 농민 개혁을 이루랴.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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