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세상을 떠난 길고양이 ‘코점이’의 생애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세상을 떠난 길고양이 ‘코점이’의 생애
코점이가 죽었다. 마당 길고양인데 코에 까만 점이 있어 붙여준 이름이다. 코점이는 우리와 여덟 해를 살았다. 코점이 어미는 예삐, 보일러실 입구에 죽어있는 코점이를 거둘 때 예삐가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대략 서른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데 그 중 여섯 마리는 현관문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들이다. 코점이도 그 중 한 마리였다. 아주 추운 날이면 그 여섯 녀석은 현관문 밖에 대기하고 있다 문을 열면 들어와 식탁 아래 따뜻한 곳에 올망졸망 모여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코점이는 수컷이었다. 야생에서 수컷은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추위가 주춤해지는 입춘 무렵이면 암고양이의 발정이 시작되고 수컷들의 투쟁이 전개된다. 낯선 수컷들이 우리 집 마당으로 침입하고 우리 집에서 지내던 수컷들은 그들을 막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고양이들 비명이 수일 째 앞마당 뒷마당을 뒤흔들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데 낯선 수컷이 마당을 차지하기도 하고, 눈에 익은 수컷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지붕 위를 외롭게 떠돌던 수컷 억울이는 올해 발정기를 넘기지 못하고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뒷마당 처마 아래 죽어있었다.
코점이는 달랐다. 제법 커다란 몸집을 가졌으면서도 코점이는 전혀 용맹스럽지 못했다. 자기보다 힘센 녀석이 나타났다 싶으면 딴청을 부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벌벌 떨면서 빨리 녀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코점이의 자리는 언제나 현관문과 가까운 위치였고, 잠자리는 화목보일러 상판 위였다. 그게 코점이의 생존법이었다.
코점이와 함께 태어난 녀석도 코언저리에 점이 있었는데 점백이로 불렀고 수컷이었다. 녀석은 달랐다. 서너 해 우리 집 마당을 평정하며 지냈다. 그러던 점백이는 두어 해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점백이 자리는 낯선 노랑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노랑이 앞에서 코점이는 더욱 왜소해 보였다. 하루 종일 현관 옆 목뒤주 위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노랑이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와도 앵얼거렸다. 코점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아니나 다를까 코점이에게 다가가려던 노랑이 녀석이 놀라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코점이는 그렇게 살다 죽었다. 한 달 남짓 코에서 농이 흘렀다. 아내는 동물병원에서 이런저런 약을 구해와 먹이에 타 먹였다. 다쳐서 한쪽 눈도 못 뜨는 처지였다. 안약을 넣어주고 소염제와 항생제를 먹였다. 죽기 전날까지 노랑이가 다가오면 앵얼거렸고, 우리는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선거가 낼모레다. 이런저런 모종을 사려고 읍내 장에 나갔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무리가 시장 입구에서 커다란 확성기로 선거연설을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민주당 심판을 외친다. 토착왜구들이 종북좌파 척결을 외친다. 선거연설이 참으로 유치하다 싶었다. 저런 낯짝으로도 국회의원을 하는구나 싶었다.
한심하고 꼴사나워서 흘깃 돌아보는데 분홍색 후보 선거운동원들 옆에는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민중당 선거운동원들이 도열했다. 농민후보 손팻말을 든 운동원들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그 가운데 진주에서 농민운동을 하던 눈에 익은 활동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이도 나만큼이나 늙어있었다. 와락 반가움에 가슴이 뛰었다.
젊디 젊은 시절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내게 그런 일도 있었네. 철없던 시절이었지. 그때는 어찌 그런 결정을 했을까. 피식 입가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민중당 선거운동원들 만나면 밥이라도 한 그릇 사련만 종묘상과 어물전을 돌아다니는 사이 안타깝게도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 선술집에 들었다. 마땅히 시킬 안주감이 없어 감자멸치조림과 깍두기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술잔을 드는 내내 코점이의 생애가 떠올랐다. 어쩜 그렇게도 살 수 있구나.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이런저런 일로 군청에 민원을 내지 않고도, 산돼지에 피해 입은 고구마밭 보상금이 적다고 면사무소에 항의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거구나.
다들 그렇게 살지. 그렇게 찌그러진 채 살지. 군청에서 강을 파헤치든 말든, 산림청에서 숲을 잘라버리든 말든 그저 그렇게 살면 살아지는 거지. 과거를 떠올리고 양심과 정의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나도 버려진 듯 살고 있으니까. 존재감 없이 살고 있으니까.
한 때 지녔던 명함 따위는 잊기로 하자. 그럴싸한 일을 한답시고 그럴싸한 자세로 살던 그 시절은 던져버리기로 하자. 싸전 얼굴 얽은 아주머니의 생애나 지물포 짝눈 사장의 생애가 다 존중받아야 할 세월이지 않느냐. 세상 어느 누구의 어버이로, 지아비와 지어미로 인생을 다 바친 사람들 아니냐.
힘에 밀려 이리 치이고 저리 내몰리면서 살아온 사람들, 코점이처럼 살았다고 비굴한 삶이라 단정할 수 없지 않느냐. 열에 일고여덟은 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인 것을. 이렇게 식어가는 내 나머지 인생길도 그 열에 일고여덟과 동행한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서운할 것도 없지 않느냐. 문득 고양이의 그림자 같은 고양이 코점이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코점이를 묻은 밭 언저리 환삼덩굴 싹이 많이 자라있는 것이 시종 마음에 걸렸다. 괭이를 챙겨 나가려는데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발등을 때렸다. “비 오는데 어디 가려고.” “아침에 코점이 묻은 자리에 풀이 너무 많아서 좀 긁어주려고.” “낼 해요. 비오는데. 화목보일러 불이나 봐요.”
지붕 뒤로 굴뚝을 스치며 연기처럼 짙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김석봉 농부ㅣ단디뉴스 2020.04.06
/ 2022.04.1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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