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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우리는 왜 영웅 이야기에 환호할까 (2022.04.08)

푸레택 2022. 4. 8. 13:53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우리는 왜 영웅 이야기에 환호할까 (daum.net)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우리는 왜 영웅 이야기에 환호할까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게임 이야기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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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우리는 왜 영웅 이야기에 환호할까 / 이용범 소설가

ㅣ이야기에 담긴 행복

인간은 논리보다 이야기를 선호
지식·기억, 스토리 방식으로 구성
정보 요약할수록 불안정성 감소
성공한 스토리에는 일정한 패턴
요약·단순화하기 좋아하는 본성
진실보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호감
대게 이야기 속에는 행복한 결말
불행 가득한 현실세계 속의 희망
신화 속 주인공, 슈퍼 히어로 대체
공정성의 믿음 인과응보라는 쾌감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게임 이야기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가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데는 한국 드라마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선(heart line)’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 드라마는 시청자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독특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유사한 패턴을 가진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의 패턴이 비슷한 이유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에서 ‘인간의 마음은 논리 계산기가 아니라 이야기 계산기’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논리보다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이야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과 기억이 스토리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야기 형태로 기억하고 사고한다.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 뇌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입력된다. 이 정보들이 적절히 배열되고 통합되지 않으면, 우리는 제대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뇌는 넘쳐나는 입력 정보들을 걸러내어 안정적이고 일관된 믿음체계 속으로 통합한다. 설령 앞뒤가 맞지 않는 정보라도 뇌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에 맞추어 정보를 통합하는 것이다.

정보를 요약할수록 세계는 질서정연해지고 무작위성과 불안정성은 감소한다. 그래서 우리는 규칙적이고 일관성 있는 패턴을 선호한다. 이는 우리 뇌가 낯설고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하도록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만 년 동안 인간이 기억해야 할 지식과 정보는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뇌는 여전히 구석기시대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뇌가 복잡한 정보를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정보의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정보의 전후맥락을 파악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신화, 전설, 민담 같은 스토리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는 35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콩쥐팥쥐’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인간은 요약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화하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간결한 방식으로 파악하게 해준다. 가령 어린 시절에 들었던 콩쥐팥쥐 이야기는 "계모가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빠의 바람기를 감시하라"는 어머니의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조상들이 생존의 방법을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많은 이야기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주제들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어떤 스토리가 성공할까

성공적인 스토리는 새로운 무엇을 가르치거나 놀라운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성공한 스토리에 담겨 있는 주제는 다수가 믿고 싶고, 믿고 있으며,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야기가 사실일 필요는 없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럴 듯하고 믿을 만한 이야기면 족하다. 이야기가 한 번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나면 거짓으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계속 살을 붙여가며 전파되고 확산된다.

우리를 설득시키는 것은 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보다 아인슈타인의 개인 스토리에 더 열광한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일수록 더욱 호소력이 있다. 가령 흡연의 폐해를 보여주는 임상 데이터는 ‘아버지는 하루에 담배 100개비를 피웠지만 100세까지 사셨다’는 이야기를 이길 수 없다. 이 때문에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스토리들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고자 하는 욕구는 잠재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인간은 생리적으로 이야기에 적응되어 있다. 허구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뇌는 허구를 즐기게 하는 보상체계를 갖고 있으며, 이 보상체계는 ‘도파민시스템’이 관장하고 있다. 뇌에 도파민 수치가 증가하면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 증가할 뿐 아니라 어떤 대상을 향한 의심도 누그러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파민은 중독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도박 중독은 무작위적인 패에서 일정한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한 번 미신에 빠지면 쉽게 헤어날 수 없다.

왜 인간은 허구를 창조하고, 그것을 즐기게 되었을까. 자연현상의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고대인들은 불가해한 세계를 정리해줄 요약본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도덕, 천국과 지옥, 신, 심판 같은 관념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선과 악, 죽음, 신 같은 주제는 매우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관념은 전달하기 어려우며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 관념들을 전파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밈들은 대부분 이야기 형태로 구성된다. 이야기는 다차원적이며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맥락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은 실제 일어난 사실보다 현실을 더 ‘사실적’으로 만든다. 이야기는 다수를 설득하는 힘을 갖는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주어진 현실을 안정감 있게 받아들인다. 또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을 일정한 패턴으로 통합함으로써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해소한다.

인과응보의 쾌감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회에서 허용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알려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도덕적 진리는 악한 자가 실패하고, 선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2017년 독일과 영국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인간은 여섯 살이 될 무렵부터 악인이 응징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악한 자는 불행하게 삶을 마감해야 하며, 선한 자는 언젠가 행복한 삶으로 보상받아야 한다. 이야기는 인과응보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착한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부자가 되며, 마음씨 고운 신데렐라는 악한 자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왕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금은보화가 열리는 박은 존재하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씨를 물어다주는 제비도 없다. 또 신데렐라를 도와주는 요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 나라의 왕자가 예쁜 드레스로 위장한 재투성이 아가씨에게 반하는 일도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중 한 장면

그런데도 사람들은 주인공이 착하기 때문에 보상받았다고 믿는다. 이런 헛된 믿음은 추상적인 진실보다 인과관계로 압축된 이야기를 편애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간략한 답이 바로 이야기다.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약속한다. 우리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유사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과거 조상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던 신화의 주인공들은 이제 슈퍼 히어로로 대체되었다. 오늘날의 슈퍼 히어로는 지상의 악당뿐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려는 악당과도 싸운다. 이들은 악과 불행으로 가득 찬 현실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약속한다.

이야기의 역사는 매우 길지만 그 패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는 선이 승리한다는 보편적 진리, 선한 사람은 죽은 뒤에라도 보상받는다는 도덕적 결과, 선한 사람의 고통은 일시적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공정성에 대한 믿음, 삶을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 역경을 극복하고 생존하리라는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동기다.

이용범 소설가ㅣ아시아경제 2021.11.04


/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