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지진 / 오세영
지구는 습진으로 피부가 짓물렀다.
농경이다 개발이다 파헤치는 산과 들
가려움 참을 수 없어 지친 몸을 뒤튼다.
따끔따끔 쏘는 빈대, 사정없이 무는 벼룩,
혈관에서 뽑는 석유, 살 속에서 캐는 석탄,
괴로움 참을 수 없어 팔다리를 비튼다.
ㅡ 『너와 나 한 생이 또한 이와 같지 않더냐』(태학사, 2006)
<해설>
오세영 시인의 시조집을 보면 분명히 정통파 투수의 투구인데 새롭게 개발한 투구 폼인지라 정형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무진장 쾌속이고 휘어져 들어온다. 이 시조도 양장시조의 자수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런데 내용은 통렬한 문명비판이다.
지구 곳곳이 지진과 쓰나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의 몸살에 우리 인간은 집을 잃고 목숨을 잃는다. 이제 지진은 먼 나라의 불상사가 아니다. 포항과 경주 일대에 꽤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인류가 수천 년 농사를 짓는 동안 들판이 논이 되고 산야가 밭이 되었다. 바다를 매립해 농토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석탄을 동이 날 정도로 캐어 연료로 썼다. 석유조차도 금세기 말에는 동이 날 것이다. 시인은 지진을 천재지변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이 산과 들을 마구 파헤쳐 지구의 피부는 짓물렀다. 지구의 피를 뽑고 살을 도려냈다. 지구는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팔다리를 비틀었고, 그것이 지진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석유와 석탄을 뽑은 행위를 지구가 겪는 빈대와 벼룩의 고통으로 표현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사실 빈대와 벼룩이 주는 고통을 모르고 자랐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는 종종 그놈들이 준 고통에 대해 말씀하셨다.) 문명이 인간에게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결국은 인간을 해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시조작품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5.25
/ 2022.04.0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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