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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 일기] 노샌댁 문짝 (2022.04.04)

푸레택 2022. 4. 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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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 일기] 노샌댁 문짝 - 단디뉴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대밭 아래 노샌댁에서 쿠릉쿠릉 포클레인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고 달려가니 새 집을 짓는다며 살던 집을 허물고 있었다. 홀로 사는 옛 집이니 볼품이야 없었지만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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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 일기] 노샌댁 문짝

ㅣ“이 문을 넘나들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문짝”

침 이른 시간부터 대밭 아래 노샌댁에서 쿠릉쿠릉 포클레인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고 달려가니 새 집을 짓는다며 살던 집을 허물고 있었다. 홀로 사는 옛 집이니 볼품이야 없었지만 늦가을 처마아래 곶감을 주렁주렁 걸어놓으면 가장 폼 나는 집이기도 했다. 포클레인 삽날이 아직 지붕까지 쓰러뜨리지는 않았고 작업하기 좋으라고 주변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내 눈길은 방문에서 멎었다. 아직은 쓸 만한 문짝이 그대로 달려있었다. “아니, 저 방문은 어쩌려고요.” “방문은 왜요? 그냥 치우려는 참인데.” 건축업자가 팔짱을 낀 채 작업하는 포클레인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말을 받았다. “저거 내가 뜯어가도 돼요?” “그러시오. 뜯어가려거든 빨리 뜯어내시오.” 건축업자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곧 무너질 그 집으로 달려들어 문짝을 떼 내기 시작했다. 문짝은 일곱 개가 나왔다. 살뜰히 보살피며 살아온 집이어서 문살은 아직 실했다.

▲ 김석봉 농부

또 한 채가 무너지는 날이었다. 마을을 통틀어 그나마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옛집이었다. 문짝을 떼어내자마자 포클레인 삽날이 지붕을 찍었다. 흙먼지가 솟구치며 서까래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침내 대들보도 내려앉았다. 포클레인은 종횡무진 오가며 무너진 집의 잔해를 치웠다. 오랜 세월 기나긴 겨울밤 방을 따뜻하게 덥혀주었을 구들장이 시커멓게 그을음을 쓴 채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문짝을 메고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게 뭐요. 웬 문짝이야?” “응. 요 아래 노샌댁 새 집 짓는다고 집 허물길래 뜯어왔지.” “문짝 좋은데? 아내는 내려놓은 문짝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이제 그 집은 이 문짝만 남겨놓고 사라져버렸다. 칠팔십 년은 되었을 법한 집이었다. 부엌 한 칸, 방 두 칸으로 전형적인 초가삼간이었다. 명절이면 승용차 두 대가 집 어귀로 들어서고, 오십대 두 아들가족이 찾아오면 마당조차 비좁은 집이었다. 집터가 좁아 아래채도 지을 수 없어 컨테이너 하나 놓고 창고로 쓰는 집이었다.

동그란 무쇠 문고리는 빤질빤질 닳아 반짝이고 있었다. 수많은 세월, 이 문을 넘나들었을 그 집 가족들의 애환이 문고리에 엉겼을 것이었다. 때론 눈물 훔친 손으로, 때론 땀에 전 손으로, 때론 외딴 집을 찾아오는 인기척에 반가움으로 여닫았을 문고리였다.

젊으나 젊은 시절 남편도 잃고 두 아들 키워낸 노샌댁이었다. 지난해 가을 기장밭에 날아드는 참새떼를 쫓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양은다라를 두들기며 밭두렁을 뛰어다닌 노샌댁이었다. 그 가난의 세월을 딛고 마침내 새 집을 가지게 된 노샌댁을 축복해야 하건만 무너진 옛집에 대한 아쉬움에 문짝 들쳐메고 돌아온 내 발걸음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요 며칠 고민이 있었다. 민박으로 쓰는 아래채 때문이었다. 겨울에 들이치는 눈보라와 여름에 퍼붓는 비바람을 막으려고 아래채 마루에 출입문을 해달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였다. 고양이들이 마루에 오르내리는 것도 민박손님들껜 폐였다. 어쨌거나 문은 달아야할 처지였다.

때마침 군청에서 시행하는 민박사업자 노후시설개선사업에 선정되어 보조금도 지원받게 되었다. 자부담도 만만치 않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잡기 어려운 거였다. 마루 출입문을 샷시문으로 제작해 달고, 작은방 문 앞 빈 터를 정리해 넓직한 나무마루도 깔아볼 요량이었다.

“아래채 샷시문 해 다는 거 별로 안 좋을 거 같은데......” 며칠전 밥상머리에서 아들놈이 떨뜨름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저 집에 샷시문은 영 안 어울릴 것 같아요.” 보름이도 거들었다. “암만 생각해도 그렇지? 썩 좋아보이지는 않겠지?”

그렇잖아도 육십 년이 훨씬 넘은 옛집에 샷시문 해 다는 일을 고민하고 있던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손님을 맞이하는 아내였고, 집 관리에 신경을 써온 아내였다.

그런 아내에겐 출입문이 소원이었다. 아내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문을 달아야 했다. 마루바닥에 찍히는 고양이들 발자국 닦는 일도 지겨웠을 거였다. “아버지. 이 문은 어때요?” 보름이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무로 짠 문이었다. 어느 시골마을 가겟집 출입문처럼 아래쪽은 나무로 막혔고 위쪽만 유리로 막힌 문이었다.

“이런 문은 곤란하지. 이 문을 마루에 달면 방 안이 너무 어두워. 그리고 문을 맞추고 문틀까지 짜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야. 기간도 엄청 걸릴 거고.” “그럼 지난번에 당신이 요 아랫집에서 뜯어온 문은? 그걸로 하면 안 돼?” 이번엔 아내가 의견을 냈다.

“그건 더 어려워. 그 문을 달면 실내가 더 어두울 거고, 창호지를 발라야하는데 비바람 치면 어떡해.” 이래저래 모두가 푹 가라앉았다. “샷시문도 달고 나면 그다지 나빠 보이지만은 않을 거야.”

문을 해달고 작은방 앞 마루 공사할 사업자가 오후 늦게 다녀갔다. 정확한 공사일정이 잡히면 알려준다고 했다. 사업자가 다녀가자 걱정은 더욱 크게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정말 이대로 샷시문을 달아야 하나.

시골집에 들어와 살면서 집 손 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울타리도 세우고 돌담도 쌓았다.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문간엔 대나무 문살로 가림문을 만들어 달았다. 여기저기 얼기설기 어런저런 것들로 강아지가 못 나가게, 닭이 못 들어오게 그물망도 쳐두었다. 따지고 보면 집안 곳곳이 문이요 벽이요 담이다.

어느새 우리는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가두면서 살아왔다. 바깥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안한 곳으로 남겨둔 채 우리끼리 모여앉아 불을 밝히고 온기를 나누었다. 샷시문을 꼭 달아야하나. 고민이 깊다.

글=김석봉 농부ㅣ단디뉴스 2019.04.22

/ 2022.04.0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