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놓을 것은 놓고, 보낼 것은 보내고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놓을 것은 놓고, 보낼 것은 보내고
ㅣ그 아득한 기억에서 벗어나 이제 행복을 느껴야지.
“아저씨. 우리 스무고개 해요.” “스무고개? 좋지. 그런데 해보나마나 내가 이길걸?” “이번에는 자신 있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하연이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앉는다. 하연이는 벌써 몇 년째 어머니를 따라 우리 집에 민박을 왔다. 코흘리개였던 아이가 벌써 초등5학년이 되었다. 젖먹이였던 동생은 내년이면 입학을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 가족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새 5년쯤 되었다.
하연이는 ‘잠자리’를 문제로 냈고, 나는 ‘화투’를 문제로 냈으니 승부는 보나마나였다. 일고여덟 번 물어보고 답에 접근할 무렵 하연이가 낸 문제는 하연 엄마가 맞혀버렸고, 내가 낸 문제는 아내가 맞혀버렸다. 물어보고 답하면서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밖은 쨍쨍 햇살이 퍼붓는데 하연이와 마주한 시간은 얼마나 신선했던가.
“아이구, 잘 계시지요?” 소식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이 불쑥 문을 열었다. “애들이 학교프로그램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는데 지원팀으로 슬쩍 끼어 왔습니다. 백무동에 숙소를 잡아뒀는데 그 집보다는 여기가 좋아서 거길 비워두고 와버렸어요. 빈방 있지요?”
그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가방을 풀어헤쳤다. 몇 개의 술병이 굴러 나오고 소중하게 싼 손녀 서하의 옷 한 벌도 거기 있었다. 아내는 부랴부랴 안주를 장만하고 우리는 마주앉자마자 술병을 땄다. 그이도 가족들과 함께 우리 민박을 자주 이용하는 단골이었다. 누추한 우리 집이 뭐가 좋다고 좋은 잠자리 다 놔두고 여기까지 건너왔을까.
감자전과 삶은 닭을 앞에 놓고 술잔을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즘 들어 부쩍 말썽을 부리는 이빨이야기와 농사이야기가 흘렀다. 치과의사인 그이는 이빨이야기보다 농사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을린 내 얼굴을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고왔다.
“아침밥은 몇 시에 하세요?” 가운데 방을 쓰는 승민 엄마의 상냥스런 목소리다. “왜요?” “사모님 반찬 만드는 거 배우려고요. 그래도 되죠?” 지난해부터 우리 민박집을 찾기 시작한 승민네는 만나자마자 편안한 식구가 되었다. 아내는 실력도 보잘 것 없는데 뭘 배운다느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다음날 새벽부터 승민 엄마는 우리 주방에 나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진주 중앙시장 새벽장까지 봐와서 아귀찜을 만들고, 장터 난전에서 사온 돼지머리고기를 썰어 안주로 삼으며 더위와 가뭄을 걱정했다. 보잘 것 없는 산골 농부를 걱정해주는 손님들 앞에서 나는 기분 좋게 술잔을 비웠다.
저녁나절엔 이방 저방 손님들이 모두 모여 고기를 구웠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평상이 왁자했다. 마당엔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이들이 던져주는 고기조각을 날름날름 받아먹고 있었다. 모깃불 매캐한 연기 사이로 화성이 붉은 빛을 내며 떠오르는 아늑한 밤이었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켜 멀찍이 앉아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운 고기를 상추쌈에 싸서 정성껏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어버이의 모습이 보였다. 장작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가족들이 먹을 고기를 굽는 이의 즐거운 표정이 보였다.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한낮의 더위는 제풀에 꺾이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감고 지나갔다.
이 산골에 들어와 민박을 시작하고부터 만난 이런 풍경은 그러나 한동안은 생소하고 낯설어서 가까이하기에 어색하기까지 했었다. 함께 먹자는 손님들의 권유에 다른 일을 핑계로 피하기도 했고, 엉거주춤 끌려갔다가도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기 일쑤였다.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의 고질적인 병’이라며 못마땅해 했다. 손님들과 살갑게 지내며 이야기도 들어주고 술잔도 건네는 것이 주인 된 도리련만 나는 그처럼 융통적인 습관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랬다. 내 청춘의 일기는 언제나 그랬다. ‘정의’를 알고부터 나는 소위 ‘투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저항’은 일상으로 고착되었다. 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길로 걸어가는 ‘동지’이거나 그 길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남’이거나 우리에게 저항하는 ‘적’이었다.
나는 늘 ‘동지’와 함께 있었고, ‘적’과 대척점에 있었고, ‘남’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그 흔한 동창회 한번 나가지 않았다. 향우회가 빈번히 열렸어도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다. 숱한 일가친척들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외곽에서 조그만 공장을 운영한다는 얼굴도 아슴아슴한 초등학교 동창 녀석이 환경감시단에 걸렸다며 상담전화를 해왔을 때도 나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그것이 운동가의 원칙적인 자세라고 믿었다. 그래야 좋은 세상이 온다고 믿고 있었다.
대개 그랬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고, 그 이웃의 살림살이는 관심 밖이었다. 어쩌다 아내가 이웃 여인네들과 노닥거리는 것을 볼 때면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을 방임하는 무리로 낙인찍어 멀리하였고, ‘한겨레신문’이 문간에 놓여있는 집 앞을 지날 때는 반가운 마음에 주위가 다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나를 가장으로 둔 아내와 아들도 꼼짝없이 나를 따라야했을 것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을 믿었고, 학교에서 두발자유화운동을 하는 아들을 대견스러워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챙겨주지 못했어도 아내는 내 곁에 있어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러한 가족들의 삶이 ‘의무’가 아니라 ‘희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제나 내 주장이 옳았고, 내 행동이 정당했고, 내 꿈이 밝았다. 좋은 세상은 금세 다가올 것 같았다. 그런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맞이한 어느 가을날 골프장 반대투쟁을 함께해 온 마을이 사업자편으로 돌아서버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황망하고 쓸쓸했다. 거리에 낙엽은 무리지어 뒹구는데 안타깝게도 술 한 잔, 말 한마디 함께 나눌만한 사람은 내 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 그동안 나의 세상은 무정했어. 세상도 내게는 무심했어. 이제는 나도 좀 달라져야 해. 어느새 심심산골 여기까지 흘러오지 않았나. 좀 달라진다고 누가 뭐라겠는가. 내가 달라진다고 뭐가 얼마나 바뀌겠는가. 모든 직원을 정규직화 했다고 꼭 ‘오뚜기라면’만 먹어야 할 필요는 없어. ‘불나비’나 ‘광주출정가’보다야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훨씬 서정적이지.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을 위해 고급 샴푸도 써가면서 살아야겠어.
아내와 함께 티브이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보며 김태리와 이병헌의 애증에 가슴도 아파해야지. 고기를 굽는 저 평상도 기웃거리고, 벤츠를 타고 온 서재방 노부부를 불러내 담근 술도 한 잔 건네야지. 그러면서 사업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도 웃으면서 들어줘야지. 고향친구들 모임도 끊어버린 아내의 밀린 회비도 챙겨주고, 며칠 뒤에 있을 동창회도 나가봐야지.
이리 밀치고 저리 부대끼면서 살아온 그간의 세월 속에 무엇인가 껴있었을 이질적인 감정은 이제 모두 긁어내야 해. 내 삶에 기생하면서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닌 그 감정은 이제 활활 타오르는 저 장작불에 태워버려야 해. 그리고 나는 그 아득한 기억으로부터 탈출해야 해. 그 광장, 그 거리, 그 함성으로부터 돌아와야 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부드러운 시를 써야 해. 그래도 돼. 내겐 그럴 권리와 자격이 있어.
밥과 고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치지 않는 저 웃음소리. 내 눈앞에 평화가 있고, 내 눈앞에 행복이 있고, 내 눈앞에 정이 있고, 내 눈앞에 새 세상이 있었다. 그래, 저렇게 사는 게 세상이고 사람이지. 어쩌다 문득 그리움에 발돋움도 하겠지만 놓을 것은 놓고, 보낼 것은 보내고, 잊을 것은 잊어버려야지.
꽃밭을 넘어온 바람에 모깃불 연기가 한 움큼 실려 왔다. 눈이 쓰렸다. 급히 고개를 돌리는데 또르르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굴렀다.
글=김석봉ㅣ단디뉴스 2018.08.13
/ 2022.03.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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