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침묵하고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침묵하고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
ㅣ공무원은 군림하고 있고 주민은 말 한 마디 하지 못한다
군수가 감옥에 들어갔다. 네 명의 군수가 내리 감옥행이다. 내가 이곳 지리산이 마주보이는 산골에 터를 잡고 들어오자마자 시작된 군수의 감옥행을 이번 군수도 비켜가지 못했다. 대개 부패 혐의다. 특히 이번 군수는 과장 진급자로부터 고액을 수수한 매관매직 뇌물수뢰 혐의다. 그동안 살아가기가 참 불편하고 험했다. 공직사회가 청렴하지 못하면 지역주민의 삶이 팍팍하기 마련이다. 귀농귀촌을 계획하려면 먼저 그 지역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따져봐야 한다. 귀농 10년, 이제껏 경험으로 감히 말하건대 내가 사는 이런 곳은 귀농할 만 한 곳이 못된다. 공무원은 군림하고 있고 주민은 말 한 마디 하지 못한다.
물론 매양 농사만 짓고 세상 나몰라라 하며 살 거라면 지역 공직사회의 부패와 청렴 따위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다. 연금을 꽤나 받거나 도시에 남겨둔 재산으로 임대수입이라도 있는 귀촌자에겐 어쩌면 이런 관행이 더 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을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꾸며보거나, 개인소득을 위해 행정과 관계를 가져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김 주사, 이따 저녁에 어두워지면 잠시 우리 집에 좀 오시게.” 며칠 전 마을 노인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을에서는 그나마 말깨나 하는 노인네였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지난 1년 사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산촌생태마을 때문일 거였다.
마주앉자마자 그 어른은 “자네가 아니면 맡을 사람이 없네. 지난 일은 잊고 산촌생태마을을 다시 맡아주게.”라며 다짜고짜 밀어붙였다. 참으로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아무리 나이를 더 먹고 늙었기로서니 어찌 이처럼 낯짝이 없나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야멸차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자리를 박차고 싶었다.
“왜요?” 나는 태연하려 애썼다. “오늘 경로당에서 말이 나왔는데 자네가 아니면 생태마을을 운영할 사람이 없다, 지난 번 일에 대해서는 마을에서 사과하고 자네에게 다시 맡겨야 한다고 결론이 났네.” 노인네는 경로당에서 오간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안 들은 걸로 할게요.” 나는 단호히 말했다. 노인네는 자꾸 통사정을 했지만 말을 들을 때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 마을에 대한 내 감정의 골은 깊게 패였다.
마을기업을 설립하고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받아 마을공동사업으로 정착되기까지 참 많은 일을 겪었었다. ‘들어온 사람’에게 붙는다는 핀잔에 시달려 함께 했던 조합원이 탈퇴하기도 했고, 산촌생태마을에서 숙박업을 하면 안 된다는 민원을 넣어 검찰에까지 가서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고향에 남아 있던 농지를 팔아 와 아들내외가 살 집을 한 채 지었는데 산촌생태마을 운영해서 돈 벌었다는 음해성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해 마을기업을 마을에 인계하고 정리했을 때였다. 누군가가 민원을 넣었는데 마을기업 예산을 잘못 써서 군청이 환수한다는 것이었다. 군청 담당계장은 마을을 드나들며 주민들에게 “아무리 의견서를 내도 끝내는 마을에서 물어내야 할 돈”이라면서 권리행사를 방해하고 다녔다. 군청에 맞서 끝내 부정한 집행이 아니라는 결론을 끌어냈지만 공무원의 모습은 대개 이랬다.
몇 달 째 나는 진정서 한 장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몇 번씩 ‘진정서’를 ‘고발장’으로 고쳐 썼다가 바꾸기도 했다. “거 봐라. 너 같은 사람도 그걸 함부로 못하는데 주민들이야 오죽 하겠냐.” 고발내용을 듣고 난 지인 변호사가 한 말이었다. 하기야 부정을 보면 참지 못하는 나조차도 ‘진정서’와 ‘고발장’이란 용어 앞에서 망설이고, 제출할까말까 망설이는 형국이니 행정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해 온 주민들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두 해 전에 마을회관을 신축하면서 엄청난 기금을 주민들과 출향인들로부터 모금을 했었다. 그런데 마을에 보고한 수지내역에는 모금액이 훨씬 적게 기록되어 있었다. 적어도 수천만 원은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가 횡령한 것이 분명했다. 마을주민 몇몇께 이 내용을 알렸지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개인 돈’이 아닌 ‘마을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모두가 외면했다. 말을 하고 따지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이웃들은 잘 알고 있었다.
부정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영농조합은 장애인을 고용해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도 않았고, 산촌생태마을 운영수익금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관급공사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주민은 침묵했다. 공동수도요금을 얼마로 책정해 얼마를 걷어가서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아무도 몰랐다.
나는 그야말로 군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내가 나서서 설립한 마을기업이 산촌생태마을을 운영할 때는 자력갱생의 원칙을 적용해 일체의 지원도 하지 않던 군청이었다. 지난 해 내가 그만두자 시설보수공사에 그늘막 설치공사까지 해 주더니 심지어는 대부계약까지 어겨가며 밀린 전기료까지 대납해 주었다. 설치한 그늘막이 불법건축물이라 하여 올해는 또 예산을 투입해 그 그늘막을 철거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만드는 행정이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산다는 것이 대개 이렇다. 차라리 마을에서 뚝 떨어진 외딴 곳에 집 짓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이 집에서 나머지 삶을 살아야 하고, 눈만 뜨면 마을 이웃을 만나야 하는 것을. 나날이 야위어가는 이웃들, 지나온 삶처럼 현재의 삶까지도 수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웃을 보면서 이 진정서를 꼭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난하게 살아 온 이웃에 대한 연민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마을을 쥐락펴락하며 못난 권력에 취해 있는 그들로부터 우리 이웃을 구해야 하는 것은 내 삶의 숙명이지 않은가. 나마저 입을 다물 수는 없지 않은가. 입은 가졌으되 말은 못하는 그들의 입이 되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또 한 번 우리 가족의 생활에는 험한 풍파가 몰아치겠지? 권력을 잃기 싫어하는 그들이 집 앞에 몰려 와 ‘마을을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할 지도 몰라. 마음 약한 아내의 가슴이 또 한 번 쿵쾅거릴지도 몰라. 세상의 험한 파도 맞아보지 못한 우리 착한 며느리 속이 타들어갈지도 몰라.
그렇다고 침묵하고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 가난한 이웃들이 피땀으로 기부한 돈을 함부로 챙겨 먹는 그들, 마을사업을 하고 수익금을 모조리 챙겨 먹는 그들, 장애인의 임금마저 갈취하는 그들을 앞에 두고서도 눈 감고 스리슬쩍 덮어주는 일은 그들보다 더한 죄악이겠지? 그렇지?
글=김석봉 농부ㅣ단디뉴스 2018.03.26
/ 2022.03.2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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