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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아름다운 시절이 술을 권하다.. 고흐의 황금빛은 압생트 중독의 결과물 (2022.03.16)

푸레택 2022. 3. 16. 22:06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아름다운 시절이 술을 권하다..고흐의 황금빛은 압생트(55도 이상 독주) 중독의 결과물 (daum.net)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아름다운 시절이 술을 권하다..고흐의 황금빛은 압생트(55도 이상 독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할 일이다. -보들레르 - 술이 그저 한순간의 긴장을 날려버리는 역할 뿐 아니라 창의적인 삶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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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테이블에 앉은 창녀들,’ 60.3×80㎝, 캔버스에 오일, 1893~1894년, 툴루즈 로트레크.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아름다운 시절이 술을 권하다.. 고흐의 황금빛은 압생트(55도 이상 독주) 중독의 결과물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할 일이다. -보들레르

술이 그저 한순간의 긴장을 날려버리는 역할 뿐 아니라 창의적인 삶에 영감을 주는 매개가 된다면? 그렇다면 술 마시는 일은 더 이상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도 아니고, 억지로 앉아 자리를 지키는 고문의 시간도 아닐 것이다.

술이 창조적 영감의 원천으로 주목받던 시대가 있었다. 1858년 보들레르는 ‘인공낙원’의 초판을 출간한다. 보들레르는 술과 마약 등의 복용으로 인한 환각이 사람의 생각을 기름지게 만들어 풍성한 사고를 탄생시키는 등 인간 개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두고 인공낙원이라고 불렀다. 노동자 사이에서 널리 번지고 있는 술로 인한 폐해 현상을 일컫기 위해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이 사전에 실리게 된 때도 같은 해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른 세기말, 술로 인한 미학적 차원의 영감과 사회적 폐단이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대가 바로 ‘벨 에포크(La belle epoque)’다.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운 시대. 당시에는 술이 가장 강력한 예술 창조의 모티브가 됐다. 이런 양극단의 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살았던 예술가들은 감히 자신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살았다고 자부할 것만 같다.


벨 에포크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대도시에서 예술과 음악, 문학이 찬란하게 피어났던 시기다. 이때 도시민의 삶이 갖가지 진기한 오락과 다양한 유희로 소진됐다. 이처럼 극도의 사치와 향락을 누렸던 아름다운 시대는 역설적으로 퇴폐와 쇠락의 불길한 전조가 만연했던, 서구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는 시대기도 했다.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는 흘러넘치는 물질 속에서 오히려 불안과 절망, 피로감을 느꼈다. 정신분석학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파리의 유명 정신과 의사였던 장 마르탱 샤르코에게 전 유럽의 유명인과 환자들이 찾아왔다. 이 시대 많은 예술가들은 시대적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 정신이상, 우울증에 시달렸다. 일부는 자살을 택했고, 일부는 고통을 안고 살아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지속됐다. 이런 벨 에포크는 1914년 전쟁과 함께 막을 내린다.

로트레크, 반 고흐, 고갱, 뭉크,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은 벨 에포크를 살았던 화가들이다. 당대 화가들은 가난했지만 가난한 시대를 몸으로 밀고 나갔다. 가난이 주는 고난과 은총을 동시에 만끽했다.

가난한 그들에게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공낙원이 바로 압생트(absin the)라는 독주였다. 압생트는 당대 화가들의 술이었다. 압생트는 absent에서 유래한 말로, ‘부재의’ ‘없는’ ‘멍한’ ‘방심한’이란 뜻이다. 술 이름으로는 이만한 게 없을 정도로 문학적이지 않은가.

반 고흐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친구인 로트레크가 그린 반 고흐의 초상은 압생트에 취해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반 고흐는 주기적 폭음자였다. 그는 알코올 중독 증세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반 고흐는 자신의 증세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 이 그림을 본 반 고흐가 스스로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섬망증(치매랑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데, 일단 외부에 대한 의식이 엷어지고 망상이나 착각을 많이 하는 증세)을 앓고 있는 사람 같다고 표현했던 것만 봐도 말이다.

혹 반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로 간 것도 술을 마음대로 마시려는 심산은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아를은 압생트의 산지다. 압생트는 향쑥, 살구 등의 원료로 만들어진 독주로 통상 55도 이상이니, 고량주보다 더 센 술이다. 반 고흐가 아를에 내려온 이후 그의 작품엔 노란색이 훨씬 강렬해진다. 가장 큰 이유로 압생트 중독이 꼽힌다. 압생트를 과음하면 산토닌 중독에 걸리고,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이 나타난다.

‘해바라기’, 1888년, 반 고흐.

 

예컨대 반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고 해바라기를 보면, 노란 해바라기가 황금빛으로 이글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압생트를 마시지 않고 해바라기를 바라볼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래서 그는 술 취한 상태에서 본 색채를 술이 깬 다음에 복원해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렇게 반 고흐는 환시 상태에서 본, 불타는 듯한 찬란한 노랑을 캔버스에 재현하기 위해 압생트를 자주 마셨다. 찬란한 노란빛에 매혹된 그는 압생트에 무서운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과음을 거듭하다 결국 몸을 망쳤다. 그렇게 탄생한 반 고흐의 명화들이 ‘해바라기’ ‘노란 집’ ‘아를의 밤 카페’ ‘밤의 카페테라스’ 등이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칵테일, 아니 폭탄주 제조의 명수였다. 명망 있는 귀족 출신답게 좋은 술을 찾아 마셨던 그의 주머니 속에는 늘 포도주를 마실 때 함께 먹을 수 있는 땅콩 안주가 들어 있었다. 로트레크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홀짝거리기 시작해 아무 때고 폭음을 즐겼다. 럼, 적포도주, 백포도주, 베르무트, 아르마냐크, 샴페인 등을 즐겨 마셨다. 특히 그는 자기의 상상대로 여러 가지 술을 섞은 칵테일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술을 조합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했던 것. 사람들은 로트레크가 만들어내는 괴상한 혼합물을 반드시 마셔야만 했다.

변장 취미가 있었던 로트레크는 바텐더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는 술잔과 술병, 얼음 조각, 레몬, 샌드위치를 담은 접시, 소금 친 아몬드 등을 나르며 동분서주했다. 셰이커를 흔들고 넘치는 상상력으로 온갖 괴상한 칵테일을 만들어냈다. 명사들이 조금이라도 빠른 시간 내에 취할 수 있도록 독한 칵테일을 대접했다. 그것은 그가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들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해프닝이었다. 그는 체면치레에 어색해하던 유명인들이 어떻게 동물적인 본능에 빠져드는지를 염탐했다. 그렇게 로트레크는 그들의 존경심을 끌어내리고 위엄을 파괴해 가면을 벗겨내고자 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며, 하룻저녁에 2000잔이나 넘는 폭탄주를 제조하고 주의 깊게 용량을 재며, 자신의 발명품이 발휘하는 효과를 감독했다. 그는 이런 일을 너무도 성공적으로 잘해냈다.

술과 연관된 로트레크의 에피소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늘 몽마르트르의 물랭루주, 물랭 드 갈레트 같은 카바레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로트레크는 무희들과 매춘부의 세계를 남다른 시선으로 포착해 수없이 많은 생생한 작품들을 그려낸다. 매춘부와의 은밀한 유대관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림들 말이다.

로트레크는 종종 매춘부의 공동 식사에 끼어들어 질 좋은 포도주와 특별 음식을 주문해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당시 창녀들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돈을 벌러 파리로 상경한 여자가 대부분이었고, 무엇보다 매춘은 그녀들의 처절한 생존법이었다. 그는 그녀들의 속 얘기를 들어주며 가족 같은 관계가 돼갔다. 그녀들의 사소한 비밀에 끼어드는 것이 그로서는 즐거웠나 보다. 기이한 것은 그녀들이 등장하는 그림에 손님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아마도 그녀들에게 동질감을 가진 로트레크식의 인간 사랑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아득한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이해해보려는 야심에서 디오니소스 축제 개념을 고안해냈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영역에서 술은 개개인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술이 개별화의 원칙을 깨고 영혼을 열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술이 가진 최대한의 예술성을 생각이나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일까? 오늘 점심에 술 한잔으로 서먹한 사이가 조금이라도 친밀해진다면 이미 술은 그냥 술이 아니라 예술이 아니겠는가!

글=유경희 미술평론가ㅣ매경이코노미 2015.11.23

/ 2022.03.1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