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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매향·서향, 하동 쌍계사에 가득한 봄꽃 향기 (2022.03.16)

푸레택 2022. 3. 16. 09:50

[김민철의 꽃이야기] 매향·서향, 하동 쌍계사에 가득한 봄꽃 향기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매향·서향, 하동 쌍계사에 가득한 봄꽃 향기

<몸을 씻고 불일폭포에 다녀올 작정으로 쌍계사로 들어가니 마당 옆에 가득 피어 있는 동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또 매화, 산수유가 팔영루 까만 기와지붕 끝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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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고 불일폭포에 다녀올 작정으로 쌍계사로 들어가니 마당 옆에 가득 피어 있는 동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또 매화, 산수유가 팔영루 까만 기와지붕 끝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희고 노랗게 치솟아 있었다.>


윤대녕의 중편 ‘3월의 전설’은 딱 이 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 주말 쌍계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팔영루 앞 매화였다. 백매가 까만 기와지붕과 대조를 이룬 것이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이 매화 말고도 금당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 등에도 매화가 만개해 절 전체에 매화 향기가 가득했다.

하동 쌍계사 팔영루 매화.


‘3월의 전설’은 꽃으로 시작해 꽃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쌍계사 매화가 필 때에 시작해 구례 산수유마을 산수유를 거쳐 화개 벚꽃이 필 때까지가 배경이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봄꽃들을 감상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쌍계사에서 화개천을 따라 내려오면 화개장터가 있고 화개장터에서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면 구례 산수유마을이다.

쌍계사 청학루 근처에선 서향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서향은 향기가 천리를 갈 정도로 진하다고 ‘천리향’이라고도 부른다. 꽃이 옅은 홍자색인 서향은 중국이 원산지인 도입식물이다. 서향과 비슷하지만 좀 더 크고 꽃이 하얀 것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 자생식물인 백서향이다. 서향은 국내에서는 주로 화분으로 키우고, 남해안 등 따뜻한 곳에서만 밖에서 키울 수 있다. 화개장터에서는 서향을 한 그루에 3000~5000원에 팔고 있었다.

쌍계사 서향.


쌍계사 가는 길에 구례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이 온통 노란 산수유 천지였다. 노란 물감을 마구 뿌려놓은 듯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쌍계사에서는 팔영루에서 108계단을 올라 금당 영역에 이르자 산수유꽃을 볼 수 있었다. 절의 지붕 위로 노란 산수유가 활짝 피어 완연한 봄이 온 것을 알리고 있었다.

쌍계사 산수유.


‘3월의 전설’에서 주인공이 쌍계사 입구에 여장을 푼 것은 환속한 비구니 얘기를 들어서였다. 비구니는 산수유가 만개한 어느 봄날 산수유 마을을 지나다 서울에서 내려온 신사에게 손목이 잡혀 정이 통했고, “내일은 구례장이니 장터 어디에서 만나 서울로 함께 숨어가자”는 제안을 받는다. 비구니는 확답하지 않고 “꽃들이 참 부산스럽게도 폈네요”라고만 말한다. 다음날 비구니는 노란 승복을 입고 장터에서 종일 돌처럼 서 있었지만 신사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구니는 환속했지만 해마다 3월이면 직행버스를 타고 내려와 산수유 마을과 구례 장터를 서성거리기 때문에 내려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소설에서 비구니 얘기는 윤대녕 특유의 미학적 표현이겠지만, 실제 노란 산수유 천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수유와 비슷한 시기에 생강나무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다. 멀리서 보면 거의 비슷해 구분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전혀 다른 나무다. 생강나무는 줄기에 딱 붙어 짧은 꽃들이 뭉쳐 피지만, 산수유는 긴 꽃자루 끝에 노란꽃이 하나씩 핀 것이 모여 있는 형태다. 색깔도 산수유가 샛노란 색인 반면 생강나무는 연두색이 약간 들어간 노란색으로 좀 다르다. 또 생강나무는 줄기가 비교적 매끈하지만 산수유 줄기는 껍질이 벗겨져 지저분해 보인다. 마침 광양 매화마을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를 볼 수 있었다.

광양 매화마을 생강나무.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3월의 전설’을 읽다보면 매화가 지기 시작하면서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에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 많지만 쌍계사부터 화계장터까지 십리벚꽃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나면서 보니 수령 100년 가까운 벚나무 1200그루가 만들 벚꽃 터널이 상상만 해도 대단할 것 같았다. 화개장터에서 낮은 벚나무 가지를 보니 이른 것은 꽃눈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기상정보업체 웨더아이는 십리벚꽃길 개화시기를 3월 21일로 예측했다. 그 즈음 또 쌍계사를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글=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3.15

/ 2022.03.1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