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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한겨레]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2022.03.01)

푸레택 2022. 3. 1. 12:30

[1919 한겨레]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daum.net)

 

[1919 한겨레]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편집자 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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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한겨레]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군소리ㅣ18일, 경북 선산서 일본인 아이의 오발사
가해자를 매타작한 조선인들만 체포해 분노 가중
사소한 계기에도 폭발하는 민족갈등의 '시한폭탄'

3·1운동에 참여한 어린 소년을 붙잡는 일본 헌병경찰. 독립기념관 제공


<편집자 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거족적인 독립운동이 모의되고 있는 이 와중에, 일본인 아이가 조선인 아이를 사냥총으로 쏘아 죽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실수라고 주장하는 일본인 아이를 격분한 조선인들이 훈육하는 과정에서 매타작이 이뤄졌는데 경찰이 정작 일본인 아이는 놔두고 조선인만 체포해 조사하는 바람에 성난 민족감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2시께 경상도 선산군 당천면 하장동에 사는 우즈노 시로의 장남 다케이치가 아버지 몰래 사냥총을 가지고 나와 인근 산동면 임천동까지 동무 2명과 놀러 갔다. 오리 사냥을 한다고 폼을 잡더니만 그게 여의치 않자 학교에서 배운 조총 교련을 복습한다며 장난을 쳤는데 조선인 아이들이 이를 보고 구경을 하러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때 총을 쏘는 시늉을 하던 다케이치가 구경을 하던 칠곡군 인동면 금년동에 사는 김학출의 맏아들 김조이(12)의 머리에 총을 발사해 김군이 현장에서 즉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케이치는 뜻밖의 큰일을 저질러 자신도 자살을 하려 하였는데 같이 간 동무들이 만류하자 이내 포기하고 당천주재소로 신고를 하려고 걸어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때 피해자 김조이의 동리 사람들이 달려들어 이 중 세 소년을 결박해 매타작을 하였다고 한다. 급보를 접한 당천주재소원과 선산경찰서원, 헌병파출소원 등이 현장에 달려가 겨우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킨 뒤 세 소년을 풀어주었다. 이후 경찰은 주모자로 지목된 조선인 5명만을 선산경찰서로 인치하여 취조 중이라고 한다. 조선인들은 “조선인 아이를 죽인 일본인 아이는 풀어주고 이를 징치한 조선인만 잡아 가두냐”며 “일본놈은 조선인을 죽여도 석방이고 조선인은 그 일본놈 때리기만 해도 잡혀가니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갈등이 폭력사태로 비화하는 사건은 최근 몇년 동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작년 9월 경상도 고성군 남면 내소리에서는 조선인 어부들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다가 일본인 어부들과 싸움이 나 조선인과 일본인 도합 400여명이 집단 난투극을 벌인 난리도 있었다. 그 일로 일본인 어부 10명이 중상을 입고 다수의 조선인과 일본인 어부가 경상을 입었다.

최근에는 이웃과의 시비 끝에 사망한 조선인 시신을 경찰이 부검하려 이송하려는 도중에 격분한 조선인들이 순사에게 달려드는 일도 있었다. 을묘년(1915) 이래 전국 각지에서 폭동과 파출소 습격 등이 빈번하게 일어난 것을 보면, 평상시에 억압돼 있던 민족적 분노가 사소한 계기에 폭발할 만큼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도’가 밀려오는데 총독부만 모르고 있다. 

한겨레 2019.02.25 / 2022.03.0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