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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여행만리] 발아래서 향기가 나요.. ‘지리산 노고단’ 꽃내음 가득한 하늘정원길 야생화 천국

푸레택 2022. 2. 7. 13:48

[여행만리]발아래서 향기가 나요 (daum.net)

 

[여행만리]발아래서 향기가 나요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섬진강 유장한 물줄기가 기지개를 폅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운해가 파도처럼 물결칩니다. 노고단 정상의 하늘정원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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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하늘정원 가는 나무 덱 아래 꼭꼭 숨었다 살포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야생화가 정겹다. 야생화를 만나려면 느리게 걷고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나무 밑, 풀들 사이에 별님 같고 달님 같은 꽃들이 피어 있다.
  

야생화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강인한 끈질김과 어머니 품속처럼 편안하고 넉넉함을 동시에 지닌 꽃이다. 지리산에서 피는 야생화는 들녘의 꽃들과 사뭇 느낌이 다른다. 영산의 기운을 받은 것처럼 신비스럽다. 노고단에서 만난 야생화들(복주머니난(개불알꽃), 기린초, 산목련, 지리터리풀,범꼬리,큰앵초,붉은병꽃,은꿩의다리,쥐오줌풀,미나리아재비,개다래, 동자꽃, 전호, 돌양지꽃,누른종덩굴.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산행객들이 노고단고개를 오르고 있다.
  

산행객들이 노고단 하늘정원을 오르고 있다
  

노고단고갯길에 보랏빛 붓꽃들이 활짝 피워 산행객을 반긴다.
  

생태보존을 위해 설치된 나무 덱 주변으로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노고단에선 봄꽃들이 아직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가운데 미나리아재비가 한들 한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전망대에서 천왕봉을 보고 마주 선다. 반야봉(1732m), 삼도봉(1499m) 그리고 최고봉인 천왕봉(1915m)으로 이어진 지리산 100리 주릉이 한눈에 든다.

[조용준의 여행만리] 발아래서 향기가 나요

ㅣ지리산 노고단, 꽃내음 가득한 하늘정원길 야생화 천국 6월말~8월까지 여름꽃 활짝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섬진강 유장한 물줄기가 기지개를 폅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운해가 파도처럼 물결칩니다. 노고단 정상의 하늘정원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운해를 무대로 춤을 춥니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렬하게…. 하늘정원에 내려앉은 원추리, 미나리아재비, 쥐오줌풀, 돌양지꽃들이 가녀린 몸을 흔들어봅니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철철이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그 꽃에 마음을 흠뻑 빼앗깁니다. 야생화 꽃밭을 산책하는 원색의 등산객들도 한 송이 꽃처럼 청초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늘정원은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꽃 내음이요, 꽃 빛깔입니다.

성삼재(1102m)를 거치는 지리산 횡단도로(지방도 861번)가 생기고부터 지리산 가는 길이 쉬워졌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산행이 아니라 트레킹이 된 지 오래다. 빨치산이 몸을 숨기던 험난한 오지의 지리산이 아이의 손을 잡고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된 것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길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여름 야생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길섶에 피어 있다가 어느 순간 몸을 내밀고 따라붙는 야생화들의 세상이다. 길을 걷다보면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꽃 내음이다.

야생화는 '하늘정원'이라는 낭만적 이름을 가진 노고단 정상 100만㎡(약 30만평)에서 군락을 이룬다. 노고단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는 150~200여종이다. 그중 여름 야생화는 원추리, 기린초, 동자꽃을 비롯해 40여종이다. 정상이 해발 1507m 높이인 노고단은 바람과 안개가 많고 일조량이 적은 아고산초원지대다. 야생화 군락 사이로 대부분 키 작은 관목과 고산식물이 자란다. 1980년대 야영과 군사ㆍ통신시설 설치로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90년대 들어 자연휴식년제와 복원 조치로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노고단으로 간다. 야생화는 성삼재에서 시작해 노고단 산장과 노고단을 잇는 3.4㎞(기본코스) 등산로에 활짝 피었다. 길섶을 수놓은 보랏빛 붓꽃과 붉은병꽃이 산행객을 향해 수줍은 미소로 반긴다. 꽃이 있는 곳에 벌과 나비가 없으랴. 한 발 한 발 내디딜수록 곤충과 꽃이 펼치는 여름의 향연이 꽃향기만큼이나 그윽하다. 야생화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강인한 끈질김과 어머니 품속처럼 편안하고 넉넉함을 동시에 지닌 꽃이다. 특히 지리산에서 피는 야생화는 들녘의 꽃들과 사뭇 느낌이 다른다. 영산의 기운을 받은 것처럼 신비스럽다.

40여분 오르면 노고단 산장이다. 이곳에서 노고단 고개(1370m)는 지척이다. 산장에서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돌계단은 가파르다. 마음을 다잡아 10분쯤 오르면 시야가 툭 터진다. 하지만 야생화를 보기 위해서는 산장에서 임도를 따라 우회하는 것이 좋다. 넓은 길 양옆으로 지리산에서 많이 자라는 지리터리풀을 비롯해 개불알꽃으로 불리는 복주머니난, 산목련, 큰앵초, 덩굴꽃마리 등 형형색색 야생화들 세상이다.

산행객들로 북적이는 노고단 고개는 하늘정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구상나무와 야생화 군락 사이로 완만한 경사의 나무 덱이 노고단 정상을 향한다. 생태계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나무 덱의 길이는 약 750m. 나무 덱을 따라 노고단으로 향하면 덱 주변에 뿌리를 내린 붓꽃과 쥐오줌풀 등이 한들한들 바람에 몸을 맡긴다. 김병채 지리산국립공원 남부사무소 자원보전 과장은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이달 말부터는 원추리를 비롯한 여름 꽃들이 피어나 8월 말까지 꽃 잔치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덱을 오르면서 허리를 숙여 풀숲을 들여다보면 야생화들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꽃인 노란색 미나리아재비는 아직도 화려한 빛깔을 내고 있고, 기린초는 막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거친 고산의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야생화들은 덱 곳곳에 숨어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야생화를 보는 것보다 더한 기쁨은 노고단 정상에서 누리는 풍경이다. 전망대에서 천왕봉을 보고 마주 선다. 반야봉(1732m), 삼도봉(1499m) 그리고 최고봉인 천왕봉(1915m)으로 이어진 지리산 100리 주릉이 한눈에 든다. 구례에서 하동을 지나 남해에 이르는 섬진강 유장한 물줄기도 감동적이다. 아침저녁으로는 강물 위로 운해가 자욱하게 피어나 신비감을 준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운해는 혹은 부풀고 혹은 물결치는 모습이 파도를 닮았다. 노고단 운해는 지리산을 지리산답게 만드는 제1경(景)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하늘정원에서는 사람도 꽃이 된다. 멀리 구름 속에서 야생화 꽃밭을 산책하는 울긋불긋한 차림의 탐방객들이 한 송이 야생화처럼 아름답다. 꽃과 나비처럼 밀어를 속삭이며 동화 속 천상의 꽃길을 산책하는 연인과 가족의 모습들. 이곳에선 누가 꽃이고 누가 사람인지 애써 구분할 필요가 없다.

구름과 이슬을 먹고 자라는 노고단 야생화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노란색의 원추리다. 노고단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정상은 전국 최대의 원추리 군락지라는 명예를 되찾았다. 원추리는 꽃향기가 성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합환화, 금침화로도 불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꽃대를 올린 원추리를 만났다.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피고 지고를 거듭한다. 내려서는 길, 거센 바람에 야생화들이 춤추듯 흔들리고 나비도 흥에 겨워 이 꽃 저 꽃을 날며 황홀한 날갯짓으로 배웅한다.

노고단(구례)=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 여행메모

▲ 가는길=수도권에서 간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가다 천안논산고속도로와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완주분기점 이후 용방교차로에서 구례, 지리산 방면으로 나와 노고단, 천은사 방면으로 가면 된다.

▲ 야생화를 즐기는 방법=준비물은 가벼운 산행 차림에 사진기ㆍ필기도구 정도. 꽃이든 나물이든 허가받지 않은 식물채취는 처벌 대상. 국립공원지역이나 생태경관보전림 등의 관리사무소에는 숲생태 해설가들이 대기한다. 이들의 안내를 받으면 꽃과 나무 생태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숲길을 빨리 걸어 지나치면 숲과 나무 외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야생화를 만나려면 느리게 걷고 자주 두리번거리며 수시로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키 큰 나무들 밑, 키 작은 풀들 사이에 별님 같고 달님 같은 꽃들이 피어 있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아시아경제 201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