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주꾸미·동백에 취하고..백마강 낙화암에 가슴 저리고 (daum.net)
봄의 여정은 어딜 가도 싱그럽고 화사하지만 봄바람 살랑대는 바닷가 마을과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여기에 솔내음 가득한 숲속에서 즐기는 캠핑을 더한다면 최고의 봄나들이다. 부여-서천 4번국도를 따라가는 길이 꼭 그러하다.
서천 마량리 동백숲
주꾸미 샤브샤브
제철 맞은 주꾸미 잡이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마강과 황포톳배
장항숲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무량사 삼층석탑
ㅣ4번국도 부여~서천으로 떠나는 여정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어김없이 찾아온 봄이 알록달록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꽃소식에 제철 먹거리까지 춘심을 들뜨게 만듭니다. 그럼 봄내음에 들썩이는 몸을 마냥 둘순 없겠지요. 길을 나서 봐야지요. 4번 국도를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이 길은 충남 서천 장항읍에서 시작해 부여와 경북 영천을 지나 경주시 감포읍에 닿습니다. 길이는 약 370km. 이 가운데 부여와 서천을 잇는 50여km 구간이 이번 여정의 목적지입니다. 유서 깊은 백제의 역사 유적을 보거나, 먹거리는 물론 자연경관도 아름다워 봄나들이로 손색이 없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부여의 부소산성과 백마강, 궁남지, 정림사지 등을 보고 서천으로 가면 장항숲, 한산세모시. 마량포구 동백숲이 반깁니다. 여기에 제철 맞은 주꾸미가 유혹하고 있습니다. 부여에서 출발해 서천 장항읍으로 가는 4번국도 주변여행지를 따라 떠나봅니다.
출발에 앞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부여 부소산성이다. 백제 왕실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는 백마강을 끼고 선 부소산. 이 부소산의 산등성이에 부소산성이 자리한다. '삼국사기'에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성왕 16년인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산성은 걷기에 좋다. 해발 106m의 낮은 산인데다 소나무, 왕벚나무,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숲사이로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사비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른다. 널찍한 돌을 깐 길을 따라 걸으면 의자왕 때 충신인 성충과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삼충사가 나온다. 사비문에서 삼충사까지 이르는 길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삼충사를 지나면 영일루, 백제시대 곡물을 저장했던 창고인 군창지가 차례로 나온다. 군창지를 지나면 전망 좋은 누각 반월루다. 부여읍내와 구드래 들판, 백마강이 아련하게 내려다보인다.
반월루에서 낙화암이 가깝다. 낙화암은 부소산성 여행의 백미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의 삼천궁녀들이 꽃처럼 목숨을 던진 낙화암 바로 앞에는 1929년 세운 정자 백화정이 있다. 백화정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소나무 가지 너머로 구드래 나루터에서 고란사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강을 거슬러 오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부소산성 가까이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이 있다. 백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망할 때 절집은 불타고 석탑만은 남았다.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이다. 정림사지를 나와 길을 하나만 건너면 국립부여박물관이다. 백제문화의 진수로 손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볼 수 있다. 능산리사지에서 발굴된 세기의 보물로 백제 공예품의 절정을 보여준다.
궁남지(사적 제135호)를 빼놓을 수 없다. 궁남지는 '궁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삼국사기'에 궁궐의 남쪽에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파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34년 무왕시절 만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라고 한다. 궁남지 한 가운데의 '뜬 섬'에는 포룡정(泡龍亭)이 있다.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에 살던 용이 나타나자 의식을 잃은 뒤 무왕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탄생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부여를 벗어나 4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 서천땅이다. 울창한 해송숲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과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장항숲, 마량포구 동백숲과 주꾸미를 만나다. 먼저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사철 푸른 해송으로 가득하다. 산책길은 해송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테라핀 등 방향성 물질로 봄내음이 가득하다.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야영데크와 몽골텐트는 물론이고 캠핑카야영장도 갖추고 있어 하루쯤 묵어가는 것도 좋다.
장항숲은 장항읍 송림리의 백사장과 해송숲 일대를 가리킨다. 1km가 넘는 모래사장 뒤편으로 수만 그루의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 장관이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바닷바람도 한결 싱그럽다. 매섭던 기운 대신 바닷바람엔 상큼 짭잘한 봄맛이 잔뜩 실렸다. 숲에는 높이 15m의 스카이워크가 있다. 솔향기 맡으며 하늘을 걷는 듯 아찔한 재미가 있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굴곡 없이 평지로 이어진다. 나무데크를 깐 곳은 지나가기 쉽지만 구멍 뚫린 철망 구간은 고소공포증이 없는 이들도 짜릿하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살짝 움직이기에 더 긴장된다. 이곳 소나무는 유독 키가 크다. 스카이워크 옆으로 솔잎이 가득해 싱그러운 솔향기를 맡으며 하늘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에 서서 바다를 향해 심호흡을 하다보면 탁 트인 풍경에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뚫린다.
장항읍에서 4번 국도길이 끝나면 주저 없이 마량포구와 홍원항으로 가자. 싱싱하고, 졸깃졸깃, 오동통통한 제철 맛 잔치 펼쳐진다. 주인공은 바로 주꾸미다. 예부터 '봄 주꾸미,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다. 주꾸미는 봄에 가장 맛이 있다는 뜻. 주꾸미는 일년내내 잡히지만 산란기(5~6월)를 앞둔 3~4월에 가장 맛있다. 이시기엔 주꾸미의 몸통 속에 밥알 같은 알이 꽉 차 있어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날것으로 먹거나 전골ㆍ볶음ㆍ샤브샤브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어떤 요리를 해먹던 겨우내 무뎌진 입맛을 되살려주는 봄의 대표 주자답게 맛나다.
맛이 있는 고장엔 덤으로 볼거리도 많다. 마량리 서천 화력발전소 뒷편 언덕의 동백정은 낙조와 동백꽃이 한 폭의 그림이다. 동백숲의 역사는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마량의 수군첨사가 꽃 뭉치를 증식시키면 마을에 웃음꽃이 핀다는 꿈을 꾸고 바닷가에 나가 보니 꽃이 두둥실 떠다니기에 가져다가 심었더니 그게 바로 동백이었다는 전설이다.
남해 바닷가와는 달리 이곳의 동백나무는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키가 크지 않은 대신 가지가 옆으로 넓게 뻗는다. 잘생긴 정원수 같은 동백나무에서 꽃들이 '툭'하고 송이째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동백꽃은 현기증이 일 정도로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낙조도 환상적이다. 동백정 앞 서해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들면 동백숲도 덩달아 붉게 물든다. 오는 16일부터는 마량포구, 홍원항 일대에서 동백꽃, 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부여ㆍ서천=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 여행메모
△ 가는길=수도권에서 간다면 종착지를 정하는게 중요. 서천에서 주꾸미를 먼저 먹고 부여로 간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마량포구로 가야하고, 반대로 서천이 종착지라면 경부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해 부여읍에서 시작해 서천 동백꽃과 주꾸미로 마무리 하는것이 좋다.
△ 볼거리=부여는 백제문화단지와 무량사, 서동요테마파크, 고란사, 구드래나루터선착장 황포돗배, 성흥산성 사랑나무 등이 서천은 신성리갈대밭, 한산세모시체험관, 국립생태원에코리움,춘장대해변, 금강하구둣 관광지 등이 있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아시아경제 2019.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