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과 소설가 / 오탁번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읆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기가 막히다! 절창이네 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와? 시가 안 됐노?
그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1930년대 현대문학사 한쪽이
막 형성되는 순간인 줄은 땅뜀도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는
밤샘을 하며 코가 비뚤어졌다
찰람찰람 술잔이 넘쳤다.
- 시집 『시집보내다』 (문학수첩, 2014)
[감상]
시 쓰는 소설가도 있고 소설 쓰는 시인도 있다. 소설가라고 시를 못 쓸 이유가 없고, 시인이라고 소설에 손대지 말란 법도 없다. 이광수, 황순원,·김동리, 박경리, 한승원, 황석영, 윤후명, 박범신, 한강 등 소설이 본업이면서 시를 쓴 소설가들이 있으며, 한용운, 정지용, 김소월, 이상, 서정주, 고은, 오탁번, 정호승, 김재진 등은 소설도 쓴 시인들이다. 지금은 ‘소설의 시대’인지라 소설 겸업의 시인들이 줄을 이었다. 김승희, 김신용, 하재봉, 구광렬, 김형수, 유용주, 박철, 최영미, 김정환, 장석주, 박덕규, 이대흠, 정철훈, 김선우, 문형렬, 이장욱 등이 장르를 넘나드는 멀티 문인들이고, 성석제, 장정일, 김형경, 공지영, 김연수, 이명랑 등 소설가들은 시로 먼저 등단을 했었다. 소설가 한승원, 윤후명, 정이현 등은 원래 시인 지망생이었고, 이문열 김성동 등의 경우처럼 자신의 작품에 시를 슬쩍슬쩍 끼워 넣는 소설가도 적지 않다.
시인들이 소설을 쓰는 데에는 장르 확장을 통한 문학적 성취욕구 말고도 대중성과 상업성이라는 유인요소도 웬만큼 작용했으리라. 까놓고 말하면 돈이 되겠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소설가가 시를 쓰겠다고 나서는 것은 사뭇 다른 이유이다. 시는 말하자면 문학의 본향, 정서의 본향과도 같은 일종의 근원적인 그리움이 그들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김동리 선생은 미당에게 퇴박을 맞았을까.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와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의 차이에서 보듯이 소설은 소통이 중요하지만 시에서는 꼭 전달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연수 작가는 “내가 소설을 쓰기 위해 시적 발상을 버리기로 했을 때는 내가 선천적으로 언어에 의한 소통을 더 중시했다는 뜻일 테다.”라고 말했다.
상상력을 밑천으로 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시적인 상상력은 소설처럼 논리성을 적극 요구하지는 않는다. 필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엉뚱한 상상력의 활달한 전개를 더 쳐주기까지 한다. 언어 미학을 훼손하면서까지 애써 말의 연결을 매끄럽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당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오청에서 무릎을 탁 쳤던 것이다. 발레리는 산문과 시의 차이를 보행(步行)과 무용(舞踊)에 비유했고, 청나라의 한 문인은 그 차이를 산문은 쌀로 밥을 짓는 것에, 시는 쌀로 술을 빚는 것에 비유했다. 밥은 쌀의 형태가 변하지 않지만 술은 쌀의 형태와 성질이 완전히 변하여 전혀 다른 맛을 낸다는 차이가 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술을 마시면 취한다.
거대담론이 사라진 요즘은 시든 소설이든 사소한 스토리텔링이 개입되지 않은 작품이 드물지만 시는 가슴에 호소하여 취하게 하는 장르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탁번 시인의 옛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지금 이 마당에 퍼뜩 스쳐가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과거 6~70년대 문단의 송년 행사장에는 좌장인 서정주 김동리 황순원 등이 앉은 자리 사이사이에 그해에 등단한 젊은 여성문인을 끼워 앉혔다고 한다. 요즘엔 이런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고 난리 날 일이지만 그땐 아무렇지 않게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서정주는 지금의 잣대로 보면 노골적인 성추행 수준의 손장난을 예사로 구사하였고, 김동리 작가는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한 번씩 손을 잡았다고 하며, 황순원 작가는 곁눈질도 잘 않은 채 꼿꼿한 자세 그대로였다고 한다. 당시 문인들이 서정주를 보는 시선은 그저 예술적 분위기의 연장인 풍류쯤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물론 황순원 선생이 서정주 시인처럼 그랬다면 저 양반 노망났나 했을 테지만. 이제 그분들 다들 돌아가시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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