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⑮] ‘남한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낭독'의 발견’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낭독이 발견되었다. 남한에서는 사라진 것으로 여겼던 약용식물 낭독을 국립수목원 연구진이 2020년에 강원도 어느 깊은 산에서 비로소 찾아냈다. 1964년 평창군 월정사에서 발견된 이래로 자취를 감춘 탓에 국내에서 완전히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낭독이 생존 소식을 전한 것이다.
강원도 어느 깊은 그 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불과 작년에만 내가 몇 번의 조사를 다녀온 곳이다. 왜 나는 그때 보지 못했던 걸까. 허투루 다녔던 것은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년 채집 기록을 뒤져본다. 타이밍이 낭독을 만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낭독은 일찍이 4월 중순에 꽃을 피워 이내 열매를 맺은 후 여름이 오기 전에 몸을 녹여 숲에서 스러지곤 한다. 작년에 나는 그 시간을 맞추지 못했던 거였다. 식물의 일도 사람의 일도 역시 타이밍이 관건이다.
올해 들어 세운 목표 중 하나가 낭독을 만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4월 25일에 그 산으로 향한다. 낭독의 발견을 위하여 그들의 시간을 내가 정확히 맞출 요량으로.
집을 나서 그 산으로 향하는 길은 내가 정말 아끼는 경로 중의 하나다. 국도 35호선을 따라 태백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는 남한에서 손꼽히는 자작나무숲이 있다. 이 무렵 자작나무 새잎은 6살이 된 우리 조카가 손바닥을 내밀어 흔드는 것처럼 앙증맞다. 한강과 낙동강과 동해의 발원지인 삼수령도 이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다.
얼레지와 연복초와 피나물을 비롯하여 각종 야생화가 제철인 덕항산을 거쳐 광동호를 지나고 나면 마을 저 멀리 어떤 숲이 등장한다. 비술나무 고목으로 채워진 ‘미락숲’이다. 임계면 소재지에 닿기 전에 곧잘 들르는 이 비술나무숲을 나는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긴다.
낭독은 뿌리를 약으로 쓰는 식물이다. 독이 하도 강해서 이리 ‘낭’을 붙여서 낭독(狼毒)이라 부른다. 식물체의 독은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을 구하는 귀한 약이 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뿌리를 약재로 쓴 식물 중에 재배가 까다로운 식물은 멸종의 위기에 처한 경우가 많다. 우리 자생식물 중 산작약과 백작약과 깽깽이풀이 대표적이다.
낭독 역시 재배되거나 보호받지 못한 채 과거부터 오랫동안 뿌리 째 뽑혀나가기만 한 식물이다. 그 반복된 행위가 쌓이고 쌓여 국내에서는 낭독이 다 사라져버렸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강원도 깊은 산의 사람 발길 닿지 않는 자리에 그들이 생명을 부여잡고 살아 있었던 거다.
낭독이 발견된 그 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나서기 전에 나는 위성사진으로 산을 꼼꼼히 살펴서 낭독이 머물 만한 장소를 먼저 확인했다. 그들의 자리라고 예측한 지점을 위성 지도 앱에 목적지로 설정해 놓았기에 앱을 실행한 후 호기롭게 산에 들었다.
4월의 끝자락으로 치닫는 숲은 만화방창으로 소란하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만개한 귀룽나무, 각시처럼 말간 얼굴 내민 각시붓꽃, 홑 꽃대를 이제 막 펼치려는 홀아비꽃대…… 분꽃나무 앞에서는 멈출 수밖에 없다.
나를 비롯하여 숲에 든 생물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그 치명적인 체취. 꽃이 예쁜 분꽃나무는 향기마저 좋다.
화단에 심어 기르는 분꽃을 쏙 빼닮아서 분꽃이라 부르는 것인데, 실제로 옛 여인들은 마당에 키우던 분꽃 씨앗의 배젖을 곱게 빻아서 분으로 썼다. 실제로 분꽃나무를 분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야생 딸기류 중에 내가 장담하는 딸기맛집인 줄딸기도 꽃이 한창이다. 줄줄이 달려서 덤불을 이루며 자라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낭독은 대극과에 속하는 대극속 식물이다. 이 계통에 속하는 여러 식물들은 약성이 뛰어나서 동서양 모두 약재로 높이 평가한다. 자원식물로서 가치가 높아서 널리 재배하기도 하는데, 야생에서의 불법 채취는 엄격히 금한다.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 중 다수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CITES)에 따라 보호받고 있다.
산에 든 내가 먼저 발견한 건 개감수와 붉은대극이다. 둘 다 낭독처럼 대극속 식물이고 약재로 쓴다. 특히 붉은대극은 낭독과 생김새가 너무 닮았고 섞여 자라기 때문에 진짜 낭독을 찾기 위해서는 훨씬 더 유심히 살펴야 한다.
둘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이미 습득한 나는 낭독을 찾아 조금 더 깊은 숲을 더듬는다. 붉은대극을 닮았지만 덩치가 더 크고 몸 전체에 털이 많은 점, 꽃이 달리는 아래 줄기의 잎이 줄기를 중심으로 360도 돌려나는 점 등이 특징인 낭독을 계속해서 찾는다.
능선이 가팔라지는 자리에서 숨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피는데 그 특징적인 형질들을 조합한 식물 하나가 내 앞에 등장한다. 내 생애 첫 낭독의 발견이다. 산을 헤매느라 거칠어진 숨소리를 단번에 덮을 만큼 심장이 요동쳤다.
연약해 보이지만 낭독의 땅속뿌리는 인삼을 두어 개 합친 것처럼 굵다. 그 실한 뿌리에 만병에 용하다는 약성이 농축되어 있다는 게 한약계의 평가다. 한약재 공정서에 따르면 늦은 봄과 초여름 사이에 낭독의 뿌리를 캐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캐낸 뿌리의 껍질을 다듬고 볕에 말린 것을 인간은 약재로 쓴다는 것인데, 더 중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들이 야생에서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 불법채취의 위험은 얼마나 되는지, 적법하게 구하기 위한 경로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같은 것들 말이다.
낭독은 대극과에 속하는 대극속 식물이다. 이 계통에 속하는 여러 식물들은 약성이 뛰어나서 동서양 모두 약재로 높이 평가한다. 자원식물로서 가치가 높아서 널리 재배하기도 하는데, 야생에서의 불법 채취는 엄격히 금한다.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 중 다수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CITES)에 따라 보호받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낭독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우리 식물 깽깽이풀은 남북한과 중국을 비롯하여 한방에서는 ‘황련’이라고 부른다. 황색의 뿌리가 유명한 약재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북한에서는 산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산련이라는 이름을 달아놓았다.
조선시대 약전에는 깽깽이풀을 두고 ‘뿌리 마디가 구슬을 꿰어놓은 듯 단단하고 매의 발톱 같이 생긴 것’만 따로 골라 웃돈을 얹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난을 겪어 온 깽깽이풀은 오늘날 국내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동부에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류머티즘을 다스리는 전통 약재로 쓰는 디필라깽깽이풀이 있다. 약효의 유명세 때문에 불법 채취의 위험을 미리 염려하고 일부 주(州)에서는 법으로 지정하여 디필라깽깽이풀을 오래 전부터 보호해 왔다.
그들의 보전 가치를 서둘러 인식하고 깽깽이풀만을 주제로 한 저널도 꾸준히 발간한다. 자생지 보전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한 칼럼과 연구로 개발된 품종과 증식 방법 등을 제안하는 식물 보전 지침서와도 같다.
내 앞에 서 있는 낭독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식물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일종의 묵독이다.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 방안의 모색이야말로 지구의 모든 생물과 공생하기 위한 인류의 바람직한 자세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처음 만난 낭독을 앞에 두고 나는 가만히 속삭인다. 낭독이 우리 땅에서 다시는 사라지지 않기를.
글=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출처 : 뉴스퀘스트 2021.05.06
/ 2021.10.20(수)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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