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를 보살펴 주는 당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치매 유발 베타아밀로이드 억제하고 활성산소 제거 효과… 몸에 피를 보충하고 혈액순환 원활하게 해주는 약초
약용식물인 당귀(當歸)는 세계적으로 50여 종이 있고, 주로 북반부에 분포한다. 한국에는 참당귀(Angelica gigas)가 있고, 그것과 아주 유사한 것으로 중국당귀(A. sinensis)와 왜당귀(A. acutiloba)가 있으며, 모두 뿌리를 말려 쓴다. 이 약재 맛은 달착지근하면서도 매운데, 참당귀가 중국당귀나 일본당귀에 비해 단맛은 덜하고 매운맛이 더 세다.
당귀는 특히 여성에게 좋기에 ‘여성용 인삼(female ginseng)’이란 별명에다 ‘한국당귀(Korean angelica)’라 불리는 ‘참당귀’는 여성 생리나 부인병에 좋다고 알려졌다. 당귀뿌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세월 전통적인 한약제로 쓰여왔다.
‘당귀’라는 말에는 “마땅히 돌아온다(當歸)”는 뜻이 들었다고 한다. 이는 오래전 중국에서 부인들이 싸움터에 나가는 남편을 염려하며 품속에 당귀를 넣어줬다는 풍습에 유래하는데, 전쟁터에서 기력이 다했을 때 당귀를 먹으면 다시 기운이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몸 속에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복용하면 기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여 당귀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귀는 미나리과에 드는 여러해살이풀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숲이나 초원, 제방(둑) 등지에 자생(自生, 저절로 나서 자람)한다. 키는 1~2m 남짓이고, 줄기는 전체가 자줏빛(적자색)을 띠며, 전초(全草, 줄기·꽃·뿌리 따위를 가진 옹근 풀포기)에서 향기를 낸다. 잎은 손가락 닮은 것이 넓적하고, 굵은 뿌리가 깊게 박히며(주근의 길이는 3~7㎝, 지름 2~5㎝임), 햇볕이 잘 들고, 습기 있는 땅에 반그늘 지는 곳에 잘 자란다. 적자색 꽃은 8~9월에 원줄기와 가지 끝에 덩어리지어 피고, 열매는 편평한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좁은 날개가 있어 멀리멀리 퍼뜨린다.
당귀는 대표적인 약초식물로 예전에는 습한 고산지대의 골짜기에 주로 자생했으나 최근에는 논밭에서 많이 재배한다. 여린 잎과 연한 줄기는 날것으로 먹거나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보통 당귀라 하여 말린 뿌리를 달여 먹는다. 가을에 뿌리를 캐서 술을 담근다든지 한방 영양제로도 쓰이고, 당귀 잎에서 퍼지는 한약냄새를 즐기면서 쌈으로 이용하니, 쌉쌀하고 향긋한 당귀 잎줄기가 기름진 고기쌈의 맛을 깔끔하게 한다.
우리 몸에 피를 보충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약초로, 한의학에서는 ‘열 처방 중 아홉은 당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약재로 널리 쓰인다. 흔히 은은히 풍기는 ‘한약 냄새’라고 불리는 향이 바로 당귀 냄새이고, 공진단·십전대보탕·쌍화차·죽엽청 등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며, 이외에도 당귀차·장아찌·떡을 해먹기도 한다.
◇ 체중 감량, 금연 치료에도 효과
당귀는 강한 향을 내므로 벌레가 접근하는 일이 없어 키우기에 수월하다. 이렇게 냄새를 분비해 다른 동식물의 활동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작용(알레로파시, allelopathy)이라 한다. 사실 식물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끼리 서로 먹이(food)와 공간(space)을 더 자치하려고 무진 다툼질을 한다. 다시 말해 뿌리나 잎줄기에서 나름대로 다른 식물에는 매우 해로운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웃하는 다른 식물(같은 종이나 다른 종 모두)의 생장이나 발생(발아), 번식을 억제한다.
당귀는 보통 봄에 파종해 가을에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 모두 캐고, 포기가 작을 경우에는 캐지 않고 뒀다가 이듬해 가을에 수확한다. 초기 성장이 아주 더뎌서 자칫 잘못 관리하면 주변에 훌쩍 돋아나는 잡풀에 파묻혀 실패할 수도 있으므로 잡초를 잘 매주는 것이 중요하다.
재배식물은 어느 것이나 야생식물인 바랭이, 비름 등의 잡초에 치이는 날에는 결딴나고 만다. 그래서 ‘사람의 천적은 잡초와 벌레’라고 했고, 그 때문에 제초제와 살충제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제초제나 살충제가 해롭다지만 기실 그것들 없이는 농사를 짓기가 어려우니 어쩌겠는가!
당귀는 무엇보다 사람의 피를 생성해 주는 보혈기능을 지니고 있고, 항암효과 및 혈압 강하작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에 있는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촉진시키고, 염증과 암을 예방하며, 뇌를 보살펴 준다고 한다.
당귀에 든 데커신(decursin)이란 약물은 뇌세포(뉴런)를 보호하여 치매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 데커신 성분은 뇌에 해로운, 치매 유발물질(단백질)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를 줄이고, 숫제 생성을 억제해 뇌세포를 돌본다는 것이다. 특히 혈액 순환과 물질대사를 활성화시켜 항산화작용(활성산소 제거)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뇌기능을 활발하게 유지시킨다.
당귀의 주요한 약효를 정리해 봐도 여남은 가지나 된다. 당귀는 ▷에스트로겐(estrogen) 기능을 활성화해 월경 불순이나 갱년기증후군을 완화시키고 ▷염증을 줄이며 ▷염증이나 산화스트레스(oxidative stress) 때문에 뉴런이 죽어서 생기는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과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등 뇌장애를 막는다. 또한 당귀는 ▷인지수행(cognitive performance) 능력과 기억력을 높이며 ▷당귀 성분인 데커신이 폐암, 대장암에 항암효과가 있고, 쥐 실험에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지방세포를 자라게 하는 것을 억제, 체중이 느는 것을 막으며 ▷갱년기 여성들의 골다공증(osteoporosis)을 예방하고 ▷당귀기름 냄새를 맡으면 도파민(dopamine)분비가 억제돼 금연효과가 있기에 금연 치료에 쓰일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결합조직세포에 콜라겐(collagen) 합성을 증가시켜 피부 노화를 예방한다. 아무튼 당귀가 이래저래 예사로운 식물이 아님을 알았도다!
※ 권오길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출처] 월간중앙 201810호 (2018.09.17)
/ 2021.09.04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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