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도요새가 1만2000㎞ 날아와 찾는 칠게'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21.09.04)

푸레택 2021. 9. 4. 13:02

△ 우리나라 갯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칠게는 최근 불법 어획으로 개체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 도요새가 1만2000㎞ 날아와 찾는 칠게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차고 넘치게 많다는 뜻… 집게발 들고 춤추듯 갯벌 누벼
매립·남획으로 개체 줄어, 먹이 부족해진 새들 생존 위기

광주전남연구원의 김준 책임연구위원이 한 언론사에 연재 중인 ‘김준의 맛과 섬’ 가운데 ‘칠게 간장게장’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고흥 지역에 유명한 기사 식당에서 칠게장을 만났다. 영광이 고향인 장모님이 즐겨 드셨던 칠게장이다. 배고픈 시절 전라도에서 밥반찬으로 즐겨 먹었다. 꼬챙이에 끼워 구워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중략) [자산어보]에는 ‘화랑해(花郞蟹)’라 했다는데, 기어 다닐 때 집게발을 치켜드는 모습이 춤추는 것 같아 ‘춤추는 남자’라는 뜻으로 ‘화랑’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중략) 칠게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만 아니다. 사람보다 칠게를 더 좋아하는 생물이 낙지다. 그래서 낙지를 잡는 연승어업에 칠게를 미끼로 사용한다. 알락꼬리마도요도 칠게를 아주 좋아한다. 최근 간척과 매립으로 서식지가 사라지고 어민들이 불법 어구를 사용하면서 수난을 겪고 있다. 점점 밥상에서 우리 칠게를 만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갯벌은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도요새나 낙지에게도 꼭 있어야 할 생태 자원이다.’

칠게(Macrophthalmusjaponicus)는 절지동물 십각목(十脚目) 달랑겟과의 갑각류(甲殼類)로 ‘갈게’라고도 한다. 수컷 갑각(甲殼, 등 딱지, carapace) 길이는 약 25.5㎜, 너비는 39.5㎜ 남짓이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으며, 갑각은 모두 앞쪽이 약간 넓은 사다리꼴이다. 눈구멍은 넓고, 긴 홈통 모양이며, 여기에 긴 눈자루(안병, 眼柄, eyestalk)가 있다. 등딱지는 작은 알갱이 모양의 돌기와 짧은 털로 덮여 있고, 양 집게다리는 대칭을 이룬다.

칠게(Japanese ghost crab)의 ‘칠’은 ‘차고 넘침’이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칠칠하다’란 말은 ‘나무·풀·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란 뜻이고, 충청도 방언으로는 ‘그득하다’란 의미라 한다. 다시 말해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마릿수가 많은 게란 뜻이다.

암수는 집게발(협각, 鋏脚, claws/pincers)로 구분되는데, 수놈 집게발이 훨씬 크다. 이들의 집게발은 하늘색을 띠거나 분홍빛이 돌며, 체색은 갈색으로 진흙과 비슷한 색이다. 눈은 크고 발달해 시력이 좋고, 눈자루가 길어 굴에 숨어서도 밖을 내다볼 수 있다.

집게다리는 몸에 밀착될 수 있고, 아래쪽으로 휘어져서 바닥의 물체를 주워 입(구기, 口器)으로 가져가기에 적합하다. 암컷은 집게다리가 작고, 아래로 살짝 휘었을 뿐 다른 게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수컷은 집게가 크고, 몸 가운데 쪽으로 와서 아래로 크게 휘어져 낫 모양(겸상, 鎌狀, sickle shaped)을 이룬다.

낙지 미끼로 칠게 잡기 폭발적으로 늘어

칠게는 우리나라 동해의 갯벌이 없는 포항 이북을 제외한, 전 해역에 분포한다. ‘차고 넘친다’는 이름처럼 우리나라의 드넓은 갯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산다. 주로 남서해안의 내만(內灣)의 조간대(潮間帶)나 하구(河口) 근처의 부드러운 진흙(개흙) 바닥에 지름이 1㎝ 정도의 경사진 타원형 구멍을 파고 서식한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중국·타이완 등지에도 분포한다.

썰물(간조, 干潮) 때 구멍에서 나와 진흙 표면에 자라는 식물성 플랑크톤인 규조류(硅藻類, diatoms)를 긁어먹거나 갯벌에 굴러다니는 동물 사체나 해초를 주워 먹으며, 구멍(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시각이 예민해 사람이 지나가면 약 20m 밖에서도 재빨리 구멍으로 쏙 들어간다. 5~8월에 알을 품으며, 여러 단계의 조에아(zoea) 유생 시기를 거치면서 성체가 된다.

칠게의 겉껍질(외골격, 外骨格)은 연한 축에 들고, 크기는 작은 편이라 게장으로 만들거나 튀기거나 볶아 통째로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요리하기 전에 살아있는 칠게를 약 30분 동안 소금물에 담가두고 물을 갈아주면서 해감을 한다.

사람 입맛에만 칠게가 맞는 것은 아니다. 도요새·낙지·알락꼬리마도요도 칠게를 좋아한다. 하지만 최근 사람들이 칠게를 잡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바로 낙지 미끼로 칠게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낙지는 우리나라 갯벌의 저서생물 중에서 가장 고가로 팔리기에 낙지잡이 어민들의 칠게 잡기가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칠게가 부족해지면서 가장 힘들어질 동물은 알락꼬리마도요다. 도욧과에 드는 알락꼬리마도요의 몸길이는 60㎝ 정도인데, 부리 길이만 20㎝로 40°정도 휘어 있어서 굴속의 칠게를 잡아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지구상에 2만 마리 남짓 살아남은 희귀종으로 알려진 이 새는 최근 개체 수가 줄어 환경부는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하고 있다.

월동지인 호주에서 한국까지 약 1만2000㎞를 9박 10일 동안 쉬지 않고 날아오는 나그네새 알락꼬리마도요는 몸무게가 900g~1㎏ 정도이던 것이 체중의 40%나 줄어든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한국의 갯벌에서 충분한 먹이를 섭취해 체중과 원기를 회복하고 8000여㎞ 떨어진 번식지인 시베리아 서부에 가까스로 도착한다고 해도 영양실조에 걸려 죽거나 번식에 실패하게 된다.

새들의 생명을 담보하는 귀중한 칠게이다. 칠게가 줄어들면 따라서 새들도 감소하기에, 우리는 이들의 먹이사슬이 튼튼하게 유지되게 해줘야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 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출처] 월간중앙 202104호 (2021.03.17)

/ 2021.09.04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