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산책] 잎이 가장 아름다운 수초, 물 위의 다이아몬드.. 서울식물원 식충식물 전시회 (2021.09.02)

푸레택 2021. 9. 2. 19:41

■ 물 위의 다이아몬드, 부상식물(浮上植物) 루드위기아 세도이데스(세디올데스) 이야기

며칠간 늦여름 장맛비가 쏟아지더니 오늘은 비도 그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온다. 성큼 다가온 가을, 꽃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모처럼 서울식물원을 찾아나섰다. 식물원 호수원엔 화려하게 피어났던 연꽃은 모두 사라지고 앙증맞은 ‘노랑어리연꽃이 피어나 호수를 뒤덮고 있다.

△ 노랑어리연꽃
△ 아마존빅토리아수련

◇ 이틀만 피는 꽃, ‘아마존빅토리아수련’

한달 전 처음 꽃을 피워올렸던 아마존빅토리아수련이 오늘도 피어있다. 이틀 밖에 볼 수 없는 꽃이지만 계속 피고지고 하니 마치 한 꽃이 여러날 피어있는 듯 착각하게 된다. 첫날 피어난 흰 꽃은 수분이 끝난 이튿날 붉은 색으로 변한 뒤 씨앗을 맺기 위해 물 속으로 사라지는 재미난 꽃이다.


△ 자주조희풀
△ 층꽃나무

◇ 식물원에 무더기로 피어난 박하꽃

꽃산행길에서 자주 만났던 자주조희풀이 수목원 바위틈 곳곳에 피어있다. 정원사의 정원에는 노란 마타리와 자줏빛 좀목형 꽃이 여전히 피어있고, 오이풀이 씨앗을 맺어가고 있다. 치유의 정원에는 연보랏빛 박하꽃이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다. 얼핏 보면 층꽃나무로 착각하기 쉽다. 산행길에서는 개박하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박하꽃은 보기 드문데, 이곳 식물원에서 박하꽃을 마음껏 감상하였다.


△ 박하

◇ 우리나라 허브식물 민트 박하

박하(薄荷)는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습기가 있는 돌밭에 서식한다. 낮은 위기의 멸종위기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꽃은 한여름에서 늦여름 사이에 옅은 보라색으로 피며, 꽃말은 ‘순진한 마음’이다. 잎에 멘톨(Menthol) 성분이 들어 있어 향이 나며 치약이나 사탕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박하는 우리나라의 허브식물로 보통 민트(Mint)라고 부르며 남쪽지방에서는 재배하기도 한다.


△ 네펜데스(식충식물)

녹색사냥꾼 오싹한 식충식물 특별전

주제정원을 둘러보고 온실로 향했다. 지난 몇 주 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주제원 온실이 오늘은 활짝 열려 있다. 주제원 온실은 찾아갈 때마다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 그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녹색사냥꾼 오싹한 식충식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네펜데스와 파리지옥, 끈끈이주걱, 벌레잡이제비꽃, 사라세니아 등 여러 품종들이 전시되어 있다.

△ 네펜데스 미라빌리스

◇ 식충식물의 생존전략

식충식물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별한 기관을 만들어 곤충을 포획하고 소화하여 영양분으로 이용하는 식물이다. 달콤한 향기와 화려한 색상으로 먹잇감을 유혹하고, 다가온 먹이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양한 형태의 덫을 만들어 붙잡아 둔다. 식충식물들은 동물의 위처럼 소화효소를 분비하여 먹잇감을 소화시켜 질소와 인과 같은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한다.

만약 당신이 파리라면 조심하셔야

관람객들이 호기심에 식충식물을 장난삼아 건드리는 일이 많기 때문인지 파리지옥 앞에 Don't Touch!’ 팻
말과 경고문이 붙어 있다. “당신이 파리가 아니라면 파리지옥을 만지지 말아 주세요. 소화액 때문에 파리지옥이 금방 시들어요.” “만약 당신이 파리라면 이 경고를 무시하세요. 하지만 조심하셔야 될걸요?” 참 애교있고 재치 만점인 경고문이다. 

◇ 다이아몬드 잎새의 기하학적 배열 패턴

온실 수족관에 부상엽(浮上葉) 수초(水草)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 위에 기하학적 패턴으로 배열된 다이아몬드 모양의 잎새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예쁜 꽃이 아니라 잎을 보고 감탄하는 일은 흔치 않은데 아무리 감수성이 무딘 사람이라도 로제트형으로 퍼져있는 이 수초의 매력적인 잎을 본다면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 매력적인 잎새 ‘루드위기아 세도이데스’

이 수초의 이름은 루드위기아 세도이데스(Ludwigia sedoides)다. 중남미가 원사지이며 바늘꽃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붉고 푸른 작은 잎들이 물 위에 퍼져 있는 모습이 보고 또 보아도 예쁘다. 낮 동안에는 각각의 잎새들이 서로 작은 간격을 가지고 고르게 분리되어 있는데, 밤이 되면 오므라들어 잎새들이 포개진다고 한다. 이 수초는 우리나라 연못이나 호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름을 닮았다. 장미를 닮은 노란 꽃이 핀다고 하니 꽃을 보러 또 찾아와야겠다.


아름다운 한글 이름을 갖고 싶어요

아쉽게도 이 멋진 수초가 아직 우리나라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아 학명(Scientific Name)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수초를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서울식물원에서는 '루드위기아 세도이데스'(Ludwigia sedoides)라고 이름표를 붙여놓았는데 인터넷에는 '루드위지아 세도이데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학명을 Ludwigia sedioides 라고 아이(i)를 추가해 적어놓기도 한다. 수초를 판매하는 수족관에서는 루드위지아 세디올데스(Ludwigia sedioldes)라고( i가 L로 바뀜)한다니 하루빨리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는 우리 이름을 지어 불러주어야겠다.


△ 흰여뀌
△ 좀작살나무

◇ 자연은 치유의 에너지원이다

계절이 바뀌는 식물원에 여름꽃과 가을꽃이 함께 피어 어우러진 풍경이 참 아름답고 평화롭다. 나무와 풀꽃 피어난 호젓한 길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니 몸도 가벼워지고 코로나로 지친 마음도 치유되는 듯 하다. 자연(自然)은 치유의 에너지원이다.무와 풀꽃은 나의 가장 친밀한 벗이다.

어느 철학자는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와 증오심이 불타오르면 곧바로 《식물도감》을 겨드랑이에 끼고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증오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속이다.

/ 2021.09.02(목) 글=김영택

△ 개미취

◇ 자연으로 돌아가라 / 정윤철

훌훌 버릴 것은
욕심이요 집착이니 다 버리고
숲속 향기 속으로 빠져버린
우린 행복하다.
소유할수록 무겁고 힘겨운 것을...
버릴수록 가벼워지는 것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나
자연으로 돌아가라
아픔과 고통이 줄고 자연의 어머니가
너희를 살릴 것이니
잘못을 하루에 고치려 말라
급히 쓰는 약은 다른 것을 망가트리며
세월에 약은 느리지만 확실하여
숲속의 향기와 같고
인간의 삶은 유한하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
행복의 안식을 느끼리라

△ 사진 촬영=서울식물원 2021.09.02(목)


△ 마타리

◇ 소나기 / 황순원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이 눈에 따가웠다.
"야아!"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그러나 소녀는 "하나도 버리지 마라."
산마루께로 올라갔다.
맞은편 골짜기에 오순도순 초가집이 몇 모여 있었다.
누가 말할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유달리 주위가 조용해진 것 같았다. 따가운 가을햇살만이 말라가는 풀 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꽃이지?"
적잖이 비탈진 곳에 칡덩굴이 엉키어 꽃을 달고 있었다.
"꼭 등꽃 같네. 서울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저 꽃을 보니까 등나무 밑에서 놀 던 동무들 생각이 난다."
소녀가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간다.
꽃송이가 많이 달린 줄기를 잡고 끊기 시작한다.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만다. 칡덩굴을 그러쥐었다.

ㅡ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