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의 날'에 대한 단상 /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산 빛이 좋은 계절이다. 연두에서 연록으로, 연록에서 다시 초록으로 짙어지는 산 빛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눈이 시원해진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며 짙어오는 산을 바라볼 때마다 "우주는 매우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르렀다"고 한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301㎞ 높이에서 1시간 48분 동안 비행하며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에 대한 감회의 한 마디였다. 지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캄캄한 우주에서 푸르게 빛나는 지구를 바라보는 감동의 크기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문밖을 나와 초록의 산들을 바라볼 때의 이 기분 좋은 들뜸이 아스라히 맥이 닿아 있을 거라 믿는다.
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 5일)과는 달리 '지구의 날'은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순수 민간운동으로 시작되어 제정된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상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1970년 4월 22일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범시민적 각성과 참여를 위해 시작됐다. 미국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주창하고, 당시 하버드대학교 학생이던 데니스 헤이즈가 발 벗고 나서 '1970 지구의 날'이 개최됐다. 그 이후 지구의 날은 세계적 규모의 시민운동으로 확산되어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지구의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환경 유지라는 목표는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수목들은 다시 초록으로 숲을 채우고 수많은 꽃들이 수를 놓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자연의 혜택은 결코 항구적인 게 아니다. 꽃을 찾아다니다 보면 의외로 멸종 위기 식물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멸종은 항상 인간의 욕심과 닿아 있다. 남획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그보다 더 큰 요인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무분별한 개발을 통한 도로 건설, 각종 부지 조성 등이 멸종을 재촉하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자신의 저서 '월든'에서 이렇게 말했다. "완성된 건물의 가치는 들인 비용에 비해 형편없다. 근본 동기는 허영심이고 마늘과 빵과 버터에 대한 애착이 동기를 조장한다." 가령 도로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일단 공사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가림막 역할을 하던 수목들을 베어낸다. 이때부터 숲은 훼손되기 시작한다. 부엽층이 품었던 수분량을 줄여 광합성 고정 세균 등을 비롯한 각종 토양미생물들이 사멸해 부엽층이 얕아지고 숲이 메마르고 뿌리와 공생관계를 맺고 있던 각종 미생물들의 종 다양성이 줄어들어 여린 나무들은 약해져 숲 환경에 변화를 초래한다. 도로가 완성되고 나면 자동차 통행량이 늘어나면서 숲의 기온을 올린다. 온도에 민감한 풀들은 자취를 감추고 야생화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날'이 생긴 이유는 고사하고 존재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의 자녀들이나 이웃의 아이들이 살아갈 수 십 년 후의 기후를 상상해 보라. 먼 훗날 일이고 그때가 되면 뭔가 방법이 있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작년 이맘때의 미세먼지와 올해 미세먼지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아서 비교해 보라. 자녀나 조카들이 미세먼지 때문에 요즘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지난 일들을 찬찬히 떠올려 볼 일이다.
풀 이름, 나무 이름 하나를 알아가는 일이 비록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나 뿐인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수 있었다. 일상 속에서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 실천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구를 지키는 것은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몫이다.
글=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2021-04-28
/ 2021.07.2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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