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삶의 지혜

[명사칼럼] ‘가스라이팅을 아세요?’ 김재화 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암호병과 서무계’ 군대생활 추억 (2021.01.31)

푸레택 2021. 1. 31. 18:49

 


♤ ‘가스라이팅을 아세요?’

이 글을 쓴 김재화 작가와 나는 40년 전, 강원도 양구 대암산 산골짜기에 위치한 한 포병부대에서 함께 군대생활을 했다. 그는 본부포대 통신과 암호병이었고, 나는 군수과 서무계였다. 내가 초저녁 암호실 보초를 서는 날이면 그와 나는 암호실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내가 전역할 때 그는 나의 군대추억록에 긴 글을 써 주었다.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열다섯 가지 정도를 이야기해 볼 경우)는 지금 읽어 보아도 재밌고 그의 유머러스한 글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김재화 전우는 참 재능이 많은 친구였다. 21사단 주최였던가 1군사령부였던가, 웅변대회에 참가하여 수차례 최우수상을 차지할 만큼 그는 글솜씨는 물론이고 웅변 능력도 뛰어났다.

전역 후 흑석동 중앙대 캠퍼스에서 한 번 만난 후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스포츠신문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재미난 유머 코믹 칼럼 '에로비안 나이트', 수년 간 연재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는 벌써 이전부터 MBC '웃으면 복이 와요'와 '유머 1번지' 등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명 개그작가로 활약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10월 초, 수십 년 만에 김 작가와 통화했다. 한 번 그의 스튜디오로 찾아간다는 것이 코로나19 시절이라 차일피일 미루다 그마저 잊고 지냈는데 오늘 그에게서 짤막한 안부 문자가 날아왔다.

"김 선배, 잘 지내시나요? 제 스튜디오에 함 놀러 오세요." 합정역 근처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자세한 길 안내와 함께 그의 블로그 글 ‘가스라이팅을 아세요?’도 보내 주었다. 봄이 되면 코로나도 조금 잠잠해질 터이고, 병기과 탄약계 박 전우와 함께 그를 찾아 40년 전 젊은 날의 추억을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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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라이팅’을 아세요? / 김재화 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두 가지 연극 이야기부터요.

첫 번째, 아직 활약 대단한 연기자, 일일드라마 주연도 했던 탤런트 P가 대학로서 연극 작품을 연출, 자기 돈 들여 제작까지 맡았습니다. 탐구와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이어서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르친 제자도 출연했기에 총 리허설 때 가봤습니다.

초청된 몇 사람과 함께 봤는데, 눈매 밝은이들 훈수를 청하려는 의도로 그들에게 최종 숙제검사를 받는 자리이었습니다.

야단인지 칭찬인지 모를 두루뭉술한 평이 서넛 나왔는데, 연기자 C는 대번에 이렇게 말해버리더군요.

“요 따위가 연극일까 모르겠네. 첨 한다 해도 그렇지, 이게 뭐냐고?! 에이 낯 뜨거워! P의 다음 작품을 한 번 더 보긴 할 게요.”

진짜 낯이 활활 탄 건 저였습니다. C를 대동한 사람은 저였기 때문입니다.

나중 술자리서 정말 꼴 사나운 충돌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P “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연출입니다. 다음은 없죠.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좋은 덕담이나 듣고자 했는데, 너무 심하게 꼬집는 말씀이어서...”

C “아니 뭐, 아낌없는 조언을 하랬잖아?!”

두 번째 연극은 오래 전 영국 런던에서 공연된 ‘가스등'입니다.

아내 “집안이 어두워요 여보. 가스등 불을 낮췄나요?”
남편 “당신 눈이 나빠졌나 봐. 잘못 본 거야.”

사실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어뒀고, 어두워졌다고 말하는 상대 탓을 합니다.

고개 갸우뚱 하던 아내는 점차 자기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신하게 됩니다. 아내의 유산을 몰래 먹으려는 남편의 계략으로 나온 심리적 술수였죠.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심리학용어가 됐습니다. 정신적 학대의 일종으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어서요,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죠.

대체로 친구나 가족, 배우자, 연인 거기에 제자, 신자처럼 아주 가까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데, 피해자의 공감능력이나 동정심, 온순한 성품 등이 악용됩니다.

나중에 연극연출을 했던 P씨는 흐느끼며 아주 자조적인 말을 하더군요.

“맞아! 내 주제에 무슨 연출이야. 송충이에게 솔잎도 과분하지 뭘 다른 걸 먹어보겠다고, 이 짓을 했는지...”

그 연극은 몇 차례 저조한 관객 입장을 기록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P는 가끔 화면에 등장합니다만, 전 그가 무슨 역을 해도 연기에 자신 없어 보이고 얼굴에도 핏기 없음을 느낍니다. 그때의 충격이었을까...?

유재석과 조세호의 아기자기한 토크가 참 재밌는 방송, 이런 게 있었습니다.

한 초등학생 친구의 ‘띵언’에 두 능수능란한 진행자의 입이 닫히고 다음 말을 못 찾더군요. “잔소리는 왠지 기분 나쁜데요,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허점에 대한 증거제시가 정확하고, 지극정성으로 고쳐주고 결과에 대해 책임까지 지려면 해도 되겠지만, 섣부른 핀잔으로 끝나는 조언이나 충고가 많습니다.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데...’, ‘너 잘 되라고 해선데...’, ‘집안을 위해서 이 말은...’, ‘이게 후배 사랑인데...’, ‘예뻐서 그랬어.’, ‘내가 해봐서 알아.’ 등등.

이 말 뒤에 나오는 다음 말이 과연 약이 될까요?

더구나 가스등의 남편처럼 속임수를 무슨 사랑 깃든 고언(苦言)으로 위장하는 조언(助言)이나 충언(忠言)은 듣는 상대를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말이 됩니다.

[출처] 김재화 말글코디네이터 블로그 (2021-01-31)

▲ 김재화 작가 프로필

김재화 교수는 언론학 박사이자 방송 코미디평론가, 유머코디네이터로 잘 알려진 인물로 1974년 TBC TV '살짜기웃어예'을 집필한 '개그작가 1세대'이며 이후 '유머1번지', '웃으면 복이 와요' 등 TV코미디 200여 편과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 라디오 프로그램 100여 편을 집필했다.

또 동아방송대, 백제예대, 예원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스포츠조선에 14년간 칼럼 '에로비안나이트'를 기고했다. (사)웃는나라만들기 운동본부 본부장, 한국 코미디스쿨 원장, 국회 유머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경기 대학원 초빙교수 및 대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골프칼런니스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전경련회장단을 비롯해 각종 기업체에서 유머와 스피치, 골프, 글쓰기, 소통 등을 주제로 3천여 회의 특강을 진행했다. 특히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유머스피치를 강의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고 《유머캡슐》, 대한민국 대표유머》, 마누라보다 더 좋은 골프》, 공골거사》, 180일 만에 득도하다등의 저서를 썼다.


/ 2021.01.31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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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작년 10월 7일 블로그에 쓴 글이다.

■ 암호병과 서무계

며칠 전 추석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가 '추효정답(秋孝情答)'이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이 눈에 띄여 읽어 보았다. '참 재미있게도 글을 썼네' 생각하며 글쓴이를 보니 이름이 눈에 익숙하였다. 그는 놀랍게도 40년 전 강원도 양구 한 포병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전우였다. 글을 다 읽고 '40년 전 양구 포병부대에서 함께 근무한 전우인데 기억 나시느냐'는 댓글을 남겼다. 며칠 후 다시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보니 그가 답글로 '전화해 달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강원도 양구 원당리 산골짝 대암산 밑자락에 위치한 한 포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나는 대대 군수과 행정서기병으로 서무계 보직을 맡아 근무했고 나보다 몇 개월 늦게 자대에 전입 온 그는 통신과 암호병으로 암호실에서 근무했다. 암호병은 보초 근무는 물론이고 어떤 훈련도 받지 않는 이른바 군대 최고 특과병이었다. 내가 초저녁 암호실 보초를 설 때면 암호병인 김 전우와 나는 암호실 앞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곤 했었다.

김 전우는 웅변능력과 글솜씨가 뛰어난 영재 청년이었다. 포사와 군단뿐 아니라 군사령부 웅변대회에 출전하여 상을 휩쓸었다. 내가 전역할 때 내 추억록에 '기차보다도 긴 이야기들' 이라는 제목으로 길고도 재미난 글을 써 주었는데 지금도 그 글을 읽어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추억 속 젊은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전역 후 그가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나 군대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후 40년 동안 한 번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글솜씨와 유머감각이 뛰어난 그는 젊은 시절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특히 mbc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의 방송작가로 이름을 날렸고, 스포츠신문이 인기를 끌던 시절 오랫동안 '에로비안나이트' 라는 칼럼을 신문에 연재하여 유명인으로 자리매김했었다. 40년 동안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실은 방송이나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나는 늘 그를 만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에게 전화를 하려 하니 잠시 망설여졌다. 그가 유명한 연예인들과 교류하며 화려하게 살아온 터라 혹여 고생스럽던 기억으로 남아있을 옛 군대시절의 인연을 다 잊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杞憂)였다. 전화를 하니 그는 40년 전의 일을 엊그제 일인 듯 그때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의 안부도 묻고, 전역 이후 군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얽힌 일화와 사연 등 이런저런 얘기도 들려준다.

세월이 흘러 그 옛날 꽃다운 젊은 시절 군대에서 만났던 청춘의 전우들은 이제 모두 이순(耳順)을 훌쩍 넘겨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노년이 되었다. 군대시절 인간미 넘치고 인자하셨던 본부포대 포대장님은 나를 늘 '생물 선생!' 하며 농담조로 부르셨는데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하시다. 경상도 특유의 우렁찬 억양으로 업무를 지시하셨던 군수과장님의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도 젊은 시절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 유달리 정이 많으셨던 군수과 선임하사님은 지금도 여전히 다정다감하시며 인정이 넘치신다.

지난 달엔 우연하게도 나의 바로 위 군수과 선임 전우와 연락이 닿아 40년 만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어리바리하던 졸병 시절 나를 따뜻이 대해 주었던 잊지못할 고마운 선임이었다. 며칠 전엔 제천에서 농사일을 하는 군대동기 의무대 전우와 통화하며 옛 추억담을 나누었다. 세월은 흘러갔어도 이심전심으로 꽃다운 젊은 시절 군대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전우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잔잔한 행복이다.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 서로 힘이 되어 주었던 전우들과의 아름다운 기억도, 지워버리고 싶은 쓰린 기억도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었다. 지난 세월의 그 추억들이 이제 오늘 다시 마음 한 모퉁이에서 되살아나 삶의 한 작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엔 그곳이 아무리 험난한 곳일지라도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 꼭 한번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서로 살아온 삶이 조금씩 다르고 비록 지금은 서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도 젊은 시절의 그 순수했던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힘든 시절이지만 빠른 시일에 꼭 한 번 만나자는 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김 작가 아니 영원한 암호병 김 병장이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2020.10.07 김영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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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일기] 암호병과 서무계, 40년 전 833포병대대에서의 추억 (2020.10.07)

■ 암호병과 서무계 며칠 전 추석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가 '추효정답(秋孝情答)'이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이 눈에 띄여 읽어 보았다. '참 재미있게도 글을 썼네' 생각하며 글쓴이를 보니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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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단상] 김 하사와 이 하사, 40년 전 양구 833포병대대 이 하사의 편지 (2020.08.26)

■ 김 하사와 이 하사, 군대시절의 단상 1 코스모스 필 무렵이면 이십대 청춘의 시절 군대에서 만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두 전우가 생각난다. 김 하사와 이 하사다. 김 하사는 나보다 먼저 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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