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산책] 4월의 봄날, 왕벚나무꽃 웃음으로 피어난 일산호수공원 꽃길을 걷다 (2020.04.03)

푸레택 2020. 4. 3. 22:43

 

 

 

 

 

 

 

 

 

 

 

 

 

 

 

 

 

 

 




♤ 목련꽃 왕벚나무꽃 만개한 호수공원 꽃길을 걷다

 

<코로나19>로 시절이 수상하고 어수선하여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피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 상황 속에 한달 넘게 '집콕'만 하다가 호수공원에 벚꽃이 만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동네 주변에도 여기저기 봄꽃들 피어나지만 어디 호수공원에 피어나는 꽃들에 견줄 수 있으랴. 작년 꼭 이맘때쯤 찾았던 호수공원 벚꽃 나들이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은 벌써 꽃길을 걷는다.

 

두 달 전쯤인가 산수유가 시린 겨울 이기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고 뒤이어 매화나무 꽃이 그윽한 향기를 내뿜었다. 몇 주 전부터는 뒷산 언덕배기에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나 어린 시절 동심을 불러 일으켰다. 곧이어 백목련과 왕벚꽃이 와르르 피어나니 동네가 온통 환해졌다. 올해는 천마산 꽃산행도 하지 못하고 마을 주변에 피어난 봄꽃을 보며 코로나로 움추려든 마음속 시름을 달랬었다.

 

호수공원에 들어서서 따사로운 봄볕에 부서지는 호숫물을 바라보니 행복한 웃음이 절로 피어난다. 월파정 주위 호숫가에는 수양버들이 황록색 꽃과 새싹을 가득 매달고 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 한 폭의 그림처럼 멈춰 있다. 왕벚나무는 가지마다 송이송이 화사한 꽃을 우아한 은빛 날개인양 매달고 절정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한 모퉁이엔 백목련도 질세라 탐스런 하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도 피어나 손짓하고, 각양각색의 튤립과 수선화도 눈에 띤다. 야생화 꽃밭엔 복수초와 양지꽃이 피어나고 작약과 비비추가 무더기로 새잎을 내민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빨간빛이나 연분홍 또는 노란색이나 자줏빛의 화려한 색상의 꽃보다 식물학자들이 원시식물이라고 하는 목련처럼 하얀 빛 순박한 꽃을 보면 왠지 더 마음이 끌리고 설레고 두근거려진다.

 

'열흘 붉은 꽃 없다'(花無十日紅)고 했던가. 우아한 자태로 멋진 은빛 날개 펼치고 있는 벚나무가 꽃잎을 떨군다. 바람에 날린 꽃잎이 이제 막 돋아난 새싹 위에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다. 하늘에는 나뭇가지 끝 꽃의 향연이 절정인데 땅위엔 떨어진 낙화와 돋아난 새싹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무엇이 사랑이고 인생이던가 모두가 흘러 가면 덧없건만은..' 우리는 말을 안 해도 안다. 꽃들도 알고 있으리라, 곧 내 몫을 다하면 잎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열흘 후엔 떨어져 쌓인 꽃잎을 보며 사람들은 조지훈의 '낙화(落花)'를 읊으리라. 삶의 무상을 느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볼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의 '낙화'도 함께 기억하리라.

 

오랜만에 집을 나서 찾아간 호수공원. 봄꽃을 마음에 담으며 걸어본 산책길. 버스든 야외에서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옷을 입듯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이 계속 되려나. <코로나 19>가 끝나면 다시 예전의 삶이 찾아올 수 있을까. 코로나가 또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오지는 않을까. 코로나가 공기 전염이 아니고 비말 전염이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공원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도 많지 않아 저절로 사회적 거리가 확보되었다. '물리적 거리는 멀리, 마음의 거리는 가까이'라는 구호가 왠지 서글프다.

 

호숫가에 만발한 꽃들처럼 움추린 우리네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퇴치되어 평범하지만 소중했던 일상이 다시 찾아 왔으면 좋겠다. 보고픈 사람들 만나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웃음꽃 피울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오늘 마음에 담아온 호수공원의 목련과 벚꽃 그리고 수양버들 잎새들이 코로나의 백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 2020.04.03(금) 벚꽃을 마음에 심으며. 김영택 씀

 

● 왕벚나무 Prunus yedoensis (장미과) / 박상진 교수

 

일본의 벚나무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그래서 벚꽃 하면 으레 일본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오랫동안 심고 가꾸어 오면서 많은 품종을 만들었는데, ‘소메이요시노’란 일본 벚나무가 가장 널리 심는 벚나무다. 그런데 이 나무는 서로 교배를 시켜서 좋은 것을 골라 선발한 벚나무지만, 부모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본 안에서 부모를 찾지 못하던 차에 1939년, 식물학자인 고이즈미 겐이치 씨는 제주도의 벚나무를 조사하여 일본 벚나무의 부모는 제주도에서 자라는 왕벚나무라고 발표한다. 광복 이후 우리 학자들도 이를 확인하고, 일본 벚나무는 제주도를 원산지로 하는 왕벚나무가 건너간 것이라고 학계에 보고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에 대하여 일본 학자들은 고이즈미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표본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이를 인정하기 어렵고, 자기네들의 연구 결과로는 자연발생설, 이즈(伊豆)반도 기원설, 한국 제주도 기원설, 인공 교배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제주도 기원설’은 2007년 미국 농무성에 의뢰한 유전자 분석결과 한국의 왕벚나무는 고유의 종으로 일본 벚나무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확인받았으므로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 학자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나는 아직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왕벚나무가 일본 벚나무의 조상인지 아닌지는 관련 학자들의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벚나무 종류 중에 가장 화려하게 많은 꽃이 피는 왕벚나무가 제주도 원산이라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봄날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꽃나무는 역시 가로수로 많이 심는 왕벚나무다. 왕벚나무 꽃이 필 때를 맞추어 축제를 벌이는 지방자치단체만도 20곳이 넘으며, 새로 심은 시골길 가로수 대부분도 왕벚나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왕벚나무 천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화피(樺皮)’라고 하여 벚나무의 껍질을 활을 만드는 데 애용할 뿐 꽃나무로서 벚나무를 심고 가꾼 적은 전혀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 그들의 벚꽃 문화를 처음 받아들여 심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겨우 100여 년 남짓하다.

 

한편 일본은 그들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엽집》에 45수의 벚나무 노래가 들어 있는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벚나무 관련 문헌이 있으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주에는 “왜인의 풍속은 벚꽃을 중하게 여기는데, 온갖 꽃 중의 어른이라 여기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냥 꽃(하나, ハナ)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벚나무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다.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는 물론 대부분의 벚나무 종류는 꽃이 비슷하여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구분이 안 된다. 당연히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도 육안으로 보이는 모습은 똑같다. 결국 우리는 왕벚나무, 일본은 일본 벚나무를 심어도 일반 사람들, 특히 외국인의 눈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같은 벚꽃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벚꽃은 이제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도 봄날이면 벚꽃 구경이 일상화되어 있다. 왕벚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새로 받아들인 우리 문화의 하나로 가꾸어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다만 너무 많이 심는다거나 우리 문화유적지에 왕벚나무를 심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벚꽃 문화는 일제강점기 이전만 해도 전혀 우리에게 없던 일본 문화일 따름이었다. 오늘날에도 벚나무는 어디까지나 일본을 대표하는 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왕벚나무가 제주도 원산지라는 사실은 식물학적으로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벚나무가 갖는 문화적인 의미와 역사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박상진 교수의 《우리 나무의 세계 1》발췌

 

● 목련 (Magnolia kobus, 木蓮) / 박상진 교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시인 박목월이 가사를 쓰고 김순애 씨가 작곡한 〈4월의 노래〉다. 1960년대 이후 한때 학생들에게 널리 불리던 가곡이다. 활짝 핀 목련꽃 아래서 연애소설의 백미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던 그 순수함이 정겹다.

 

목련(木蓮)은 ‘연꽃처럼 생긴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라는 뜻이다. 목련은 봄기운이 살짝 대지에 퍼져나갈 즈음인 3월 중하순경, 잎이 나오기 전의 메말라 보이는 가지에 눈부시게 새하얗고 커다란 꽃을 피운다. 좁고 기다란 여섯 장의 꽃잎이 뒤로 젖혀질 만큼 활짝 핀다. 꽃의 가운데에는 많은 수술과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암술이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식물학자들은 원시적인 꽃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원시식물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억 4천만 년 전, 넓은잎나무들이 지구상에 첫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 나타났으니 원시란 접두어가 붙을 만하다. 가지 꼭대기에 한 개씩 커다란 꽃을 피우는 고고함으로나 순백의 색깔로나 높은 품격이 돋보이는 꽃이다.

 

꽃을 피우기 위한 목련의 겨울 준비는 남다르다. 마치 붓 모양 같은 꽃눈은 목련만의 특별한 모습이다. 꽃눈은 두 개의 턱잎과 잎자루가 서로 합쳐져 변형된 것이고, 겉에는 갈색의 긴 털이 촘촘히 덮여 있어서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도록 설계를 해두었다. 《사가시집(四家時集)》주에 실린 〈목필화(木筆花)〉라는 시에는 “이른 봄 목련꽃이 활짝 피는데/꽃봉오리 모습은 흡사 붓과 꼭 같구나/먹을 적시려 해도 끝내 할 수가 없고/글씨를 쓰기에도 적합하지 않네”라고 했다. 목련을 두고 목필화라는 다른 이름을 붙인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겨울날 붓 모양의 꽃눈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끝이 거의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옛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비롯한 몇몇 문헌에 나오는 ‘북향화(北向花)’란 목련의 이런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이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북쪽을 향하는 꽃봉오리가 더 많은 것 같다. 꽃봉오리의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더 빨리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끝이 북쪽을 향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동의보감》에는 목련을 신이(辛夷), 우리말로 붇곳(붓꽃)이라 하여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서 약재로 사용했다. 목련은 “풍으로 속골이 아픈 것을 낫게 하며,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코가 메는 것, 콧물이 흐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얼굴이 부은 것을 내리게 하며 치통을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나게 한다. 얼굴에 바르는 기름을 만들면 광택이 난다”라고 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목련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김수로왕 7년(서기48)에 신하들이 장가들 것을 권했지만, 하늘의 뜻이 곧 있을 것이라면서 점잖게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목련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整蘭橈],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였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아리따운 공주는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으로 훗날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다. 이처럼 목련은 꽃뿐만 아니라 나무로서의 쓰임새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련은 한라산이 고향이며 오늘날 자생지는 거의 파괴되었으나, 이창복 교수가 쓴 1970년대 논문에는 성판악에서 백록담 쪽으로 30분쯤 올라가면 자연산 목련이 군데군데 보인다고 했다. 전남 진도에 있는 석교초등학교에는 키 12미터, 줄기 밑 둘레 280센티미터의 약 100년생 목련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만나는 목련은 실제 백목련인 경우가 많다. 토종 제주도 목련은 잘 심지 않고, 중국 원산인 백목련이 오히려 더 널리 보급된 탓이다. 재래종 목련은 꽃잎이 좁고, 완전히 젖혀져서 활짝 피는 반면 백목련은 꽃잎이 넓고 완전히 피어도 반쯤 벌어진 상태로 있다.

 

이외에도 보라색 꽃의 자목련이 있다. 또 백목련과 자목련을 교배하여 만든 자주목련은 꽃잎의 안쪽이 하얗고 바깥쪽은 보라색이다. 또 꽃잎이 10개가 넘는 중국 원산의 별목련도 있으며, 5월 말쯤 숲속에서 잎이 난 다음에 꽃이 피는 함박꽃나무(산목련) 역시 목련과 가까운 형제나무다.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木蘭)이라 하며 북한 국화로 알려져 있다.

 

/ 박상진 교수의 《우리 나무의 세계 1》발췌

 

● 수양버들 (Weeping Willow , 垂楊) / 박상진 교수

 

분류 버드나무과

학명 Salix babylonica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임이야 어이 잡으랴

 

소월의 시 〈실버들〉을 먼저 감상해 본다. 수많은 가지를 실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실버들은 수양버들의 다른 이름이다. 가지가 늘어지는 버들은 우리나라에 버드나무와 수양버들, 그리고 능수버들 이 세 종류가 있다. 이들의 대표적 이미지는 좁고 긴 잎과 가느다랗고 연약한 가지다.

 

버드나무는 대체로 어린 가지만 늘어지고, 또 길게 늘어지지 않아 다른 버들과 구별된다. 그러나 중국 땅이 고향인 수양버들과 우리나라 특산인 능수버들은 고향은 달라도 외모는 거의 똑같다. 소녀의 풀어헤친 생머리처럼 가는 가지가 길게 늘어져서 거의 땅에 닿을 정도다. 수양버들은 잔가지가 적갈색이며 씨방에 털이 없고, 능수버들은 잔가지가 황록색이며 씨방에 털이 있는 것이 이 둘의 차이점이다. 수목도감에 실린 설명은 이러하나 실제로 둘의 구분은 간단치 않다. 적갈색이나 황록색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매하고, 둘 다 암수가 다른 나무인데, 이 중에서 암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씨방의 털은 돋보기로 한참을 보아야 찾을 수 있다.

 

옛 문헌에서는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을 수류, 혹은 수양이라 했다. 중국에서는 ‘수류(垂柳)’로 불리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수류와 함께 ‘수양(垂楊)’이란 이름도 얻었다. 흔히 중국의 수양제가 대운하를 건설하고 심은 나무라고 하여 ‘수양(隋煬)버들’, 또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이름을 따 ‘수양(首陽)버들’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우연히 이름이 일치한 것일 뿐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옛사람들이 그냥 ‘버들(柳)’이라고 하는 경우는 대부분 수양버들을 일컫는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인들은 버들과 관련된 수많은 시를 읊었다. 버들에 얽힌 가장 많은 주제는 사랑과 이별이다. 옛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질 때 마지막 이별 장소는 흔히 나루터였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눈물을 감추고, 나루터에 흔히 자라는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가슴과 가슴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버들이 이별의 증표가 된 것은 중국의 고사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동쪽에는 ‘파수’란 강이 흐르고, 거기 놓인 다리를 ‘파교(灞橋)’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교에서 이별을 했으며,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를 꺾어 떠나는 사람에게 주었다. 버들의 억센 생명력을 빌려 여행하는 사람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는 일종의 주술적인 뜻도 있었다. 명나라 때 널리 읽힌 희곡 《자채기(紫釵記)》주에 나오는 여주인공 정소옥이 애인 이익에게 버들가지로 장도를 빌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파교의 버들은 이별의 징표로 자리매김했다.

 

가로수나 풍치수로 많이 심는 수양버들은 봄이면 하얀 솜뭉치 같은 것이 바람에 날아다닌다. 이것은 꽃가루가 아니다. 씨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솜털이다. 꽃가루와는 달리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심할 때는 눈발이 휘날리듯 하므로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수나무를 골라 심는 등 조금만 정성을 기울이면 이 아름다운 나무를 우리 곁에 두고 감상할 수 있다.

 

/ 박상진 교수의 《우리 나무의 세계 2》 발췌

 

☆ 2020.04.03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