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이갑수의 꽃산 꽃글] 길마가지나무

푸레택 2022. 5. 12. 22:25

[이갑수의 꽃산 꽃글]길마가지나무 (daum.net)

 

[이갑수의 꽃산 꽃글]길마가지나무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족도리풀, 양지꽃을 찍고 후다닥 일행의 뒤를 쫓아가는 길이었다. 누군가 길가에 바짝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가는 줄기가 몇 개 모인 내 키만 한 나무였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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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꽃산 꽃글] 길마가지나무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족도리풀, 양지꽃을 찍고 후다닥 일행의 뒤를 쫓아가는 길이었다. 누군가 길가에 바짝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가는 줄기가 몇 개 모인 내 키만 한 나무였다. 우와, 길마가지잖아! 이름을 안다고 나무를 다 아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나무 공부할 때 이름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건 기본이다. 쭈글쭈글해진 나무껍질처럼 내 머리의 주름도 그리 변했는가. 그게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길마가지. 그 이름을 처음으로 들으매 가슴속을 휙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꽃향기가 너무 강해 지나가는 길손의 발길을 막아선다 하여 길마가지라 했다는 나무. 그 이후 여러 차례 길마가지를 보았다. 만날 땐 언제나 길가였고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 압도적인 나무들 옆에서 그저 있으나마나한 존재. 울긋불긋한 꽃들 곁에 시부저기 서 있다가 시나브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산에 가더라도 그저 서너 개체, 항상 삐쩍 마른 몸매로.

진도 운림산방 뒤 첨찰산의 호젓한 길모퉁이에서 활짝 핀 꽃을 보았다. 그때 길마가지의 꽃들이 내 이마 높이의 공중에 떠 있는, 움터나는 눈동자와 긴 눈썹을 제대로 갖춘,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맺힌, 한 세트의 눈(眼) 같지 않았겠는가. 조금 각도를 다르게 보면 노란 수술은 가느랗게 떨리는 여인의 속눈썹!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서정주) 놓은 것 같아 자꾸자꾸 뒤돌아본 길마가지나무. 인동과의 낙엽관목.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ㅣ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