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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엘리트 과학자는 과학에 도움이 되는가

푸레택 2022. 5. 9. 22:23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엘리트 과학자는 과학에 도움이 되는가 (daum.net)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엘리트 과학자는 과학에 도움이 되는가

“당신이 엘리트라면 두 가지를 생각해보세요. 첫째, 엘리트가 되기까지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것이 곧 당신이 이점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또 실제로 당신이 원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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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엘리트 과학자는 과학에 도움이 되는가

“당신이 엘리트라면 두 가지를 생각해보세요. 첫째, 엘리트가 되기까지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것이 곧 당신이 이점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또 실제로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삶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일을 잘 못해서가 아니에요.”  - 《엘리트 세습(원제 The Meritocracy Trap)》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

세계는 과학기술로 인해 분명히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동시에 불평등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흔히 경제적 양극화라고 불리는 현상은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부의 불평등 수준은 100년전과 비교해서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2년에 발간된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상위 10%가 전체 부의 76%를 차지한다. 한국은 눈 떠보니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욱 심각하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1위이며, 10만 명당 자살자 수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저술가 박재용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발생한 여러 불평등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한국을 ‘불평등한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한 사회의 과학은, 그 사회의 모습을 닮는다. 과학기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제도적 장치들은 해당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체제에 의해 구속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듯이, 과학 또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생태계의 내부에선 심각한 불평등과 불공정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과학계의 불평등은 과학자들 간의 무한경쟁을 유발하며, 희소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과학자들간의 무한경쟁은 과학연구의 재현성 위기 및 연구환경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사회에서 경제적 불안정뿐 아니라 사회적 분열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나타나듯이,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과학기술 생태계 또한 시스템 자체의 붕괴에 이를 수 있다. OECD의 조사에 따르면 불평등의 증가는 장기적 경제성장의 둔화를 가져온 주요 요인이며, 다양한 성장잠재력을 지닌 개인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사회적 유동성을 줄인다.

과학기술로 인해 세상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불평등은 점점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00년간 불평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자료 : OECD 2022세계불평등보고서

과학자의 맹점, 과학기술생태계의 모순에 대한 외면

과학자는 몇가지 측면에서 이상하게 멍청한 사람들이다. 첫째, 과학자는 누구보다 엄밀한 방법론을 사용해 아무나 쉽게 풀 수 없는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속한 사회가 비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정책들로 인해 망가져 가는 모습에 모순을 느끼지 않으며, 이에 대해 저항하거나 그 모순을 수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즉, 대부분의 과학자는 자신이 속한 상아탑 속에 안주하며, 사회의 공익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둘째, 과학자 대부분은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경제적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과학기술 생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뉴스에서 정치인 부모가 자녀 스펙쌓기를 돕는 모습에는 분노하면서도, 거대학술지 편집자를 겸하는 엘리트 과학자들이 남들보다 쉽게 질 낮은 논문을 상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과학자 대부분은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1% 피인용 지수를 지닌 과학자와 그 외의 보통과학자로 이어지는 과학계의 위계질서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엘리트 과학자들이 연구비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것에 대해서도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셋째, 과학자 대부분은 자신이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은 것을 잘 알면서도, 노벨상 수상만이 과학 연구에 있어 최선의 가치라고 홍보하는 정치인과 관료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후학과 제자에게 이런 위계질서로 가득한 문화를 전수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엄밀하고 합리적인척 하지만, 연구 분야에서 단 한걸음만 벗어나면 온실 속 화초이거나 챗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신세로 전락하는 계급이다. 과학자 대부분은 훈련과정에서 이런 고질적인 엘리트주의에 세뇌당한 사람들이다. 세뇌는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전세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며 자본가와 기업의 지나친 이윤추구를 막고, 노동자의 권익을 수호하는 제도를 건설해 왔다. 하지만, 과학자 대부분은 과학자 또한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상식을 거부한채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단체와 제도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국가에서 과학자들은 국가가 관리하는 인력이 됐다. 과학기술생태계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있어 사회의 다른 어느 계급보다 무능한 집단으로 추락했다. 과학자에게 과학기술생태계의 모순은 마치 맹점과 같다. 즉,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순에 대해서는 잘 지각하면서도, 과학자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순은 보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대부분의 보통과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과학자사회의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과학자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은 일종의 맹점이다. 인터넷 캡쳐

미국과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과학사회학자 야든 카츠와 울리히 매터는 2019년 '불평등의 척도: 미국 바이오메디컬 엘리트의 자원 집중'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두 사회학자는 과학자 사회가 학술지 랭킹이나 특허 갯수 등의 정량적 지표를 동원해 과학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 지표들이 마치 과학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공정한 잣대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척도들이 보편화되면서 과학자 사회에서 연구비의 분배에는 심각한 불평등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상위 10%의 과학자들이 연구비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불평등의 지속은, 하위에서 시작하는 과학자들이 상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동성 감소로 이어져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잠재적으로 증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 사회가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것처럼 과학자 사회도 개천용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의생명과학계의 연구비 분배는 미국사회의 모습을 꼭 닮았다. 상위 10%의 연구자들이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하위 40%의 연구자들이 수주하는 연구비의 비율은 날이 갈수록 하락중이다. 자료 :  '불평등의 척도, 미국 바이오메디컬 엘리트의 자원 집중'

중국은 최근 과학논문의 양과 질에서 모두 미국을 앞질렀다. 생명과학과 임상의학 등의 일부 분야를 제외한다면, 중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과학강국이다. 중국의 사회학자인 퀴앙 지와 티안광 멩은 중국의 생명과학 연구비의 분배에서 미국과 같은 불평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0년까지 중국 국립자연과학재단의 생명과학 분야 연구비 분배에서 연구기관과 도시 간의 연구비 배분 집중도는 급격히 증가했다. 불평등지수를 표현하는 지니 계수는 기관별로는 0.61에서 0.74로, 도시별로는 0.67에서 0.79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비의 집중이 연구성과의 성과로 나타났다면, 분배의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연구비의 규모와 연구성과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각 연구기관별로 받은 연구비의 규모가, 해당 연구기관이 출판하는 논문의 갯수에 아무런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비슷한 연구결과는 이미 미국립보건원(NIH)과 캐나다 보건연구소(CIHR) 그랜트 모두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즉, 상위 몇몇 기관과 엘리트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독식한다고 해서 연구의 성과가 더 효율적이지 않다는 건 생명과학에선 일종의 법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캐나다, 중국의 사례는 모두 엘리트 과학자의 존재가 결코 과학계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과학정책 입안자들이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연구비 분배 체계를 구축하는 과학정책을 만들지 않도록 누구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다.

중국의 생명과학계에서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검증된 현상이 똑같이 나타났다. 즉, 연구비가 더욱 집중된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연구성과가 더 높지 않았던 것이다. 출처 중국국립자연과학재단

최근 미국 암생물학계의 스타과학자이던 데이비드 사바티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부적절한 성추행으로 연구소에서 해임됐다. 그는 상위 0.01%에 속하는 엘리트 과학자였다. 하지만 미국 뉴욕주립대가 해임된 그를 고용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제동을 걸었고, 결국 대학측은 사바티니에 대한 고용을 취소한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몇몇 연구소에서도 엘리트에 해당하는 과학자들이 대학원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연구비를 부당하게 사용해 징계를 받은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과학자들은 조용히 다시 다른 대학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연구비 분배의 불평등이 낳은 괴물, 엘리트 과학자의 존재가 과연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한국의 과학기술계 리더들은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 엘리트 의생명과학자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는 사회학자 야든 카츠와 울리히 매터는 논문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과학 체제의 부상이 1980년대 이후로 훨씬 더 적은 소수의 엘리트 연구소와 연구자가 지나치게 큰 몫의 연구비를 받게 만들었고, 결국 의생명과학 연구비 불평등 증가로 이어졌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을 비롯한 다양한 효과를 통해 그러한 엘리트들은 또한 불균형적으로 큰 비율의 논문인용 및 특허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신자유의적 자유시장논리에 의해 추앙되었고 정책은 이를 강화해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연구비 지원의 상위 계층에 도달한 과학자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음을 관찰했습니다. 이는 불평등의 또 다른 시작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경제적 이동성은 감소하는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나친 척도의 사용이 과학자와 그들이 속한 연구조직 간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다양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미국립보건원(NIH)이 채택한 특정 정책으로 인해 최근 불평등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보통과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과학자 사회의 모순에 눈을 감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뉴욕주립대는 성추행으로 해임당한 암생물학계의 엘리트 과학자 데이비드 사바티니 교수의 채용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뉴욕주립대 제공

※ 참고자료 

-https://www.oecd.org/social/in-it-together-why-less-inequality-benefits-all-9789264235120-en.htm, 불평등은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풍요로움을 제한하며, 장기적으로 사회유동성을 저하시켜, 세계의 발전을 방해한다.

- https://www.fmkorea.com/3511404395
-Katz, Y., & Matter, U. (2020). Metrics of inequality: The concentration of resources in the US biomedical elite. Science as Culture, 29(4), 475-502.
-Funding allocation, inequality, and scientific research output: an empirical study based on the life science sector of Natural Science Foundation of China. Scientometrics, 106(2), 603-628.
-Zhi, Q., & Meng, T. (2016). Funding allocation, inequality, and scientific research output: an empirical study based on the life science sector of Natural Science Foundation of China. Scientometrics, 106(2), 603-628.
-https://twitter.com/nyugrossman/status/1521492775778369539?s=09


※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김우재 보통과학자ㅣ동아사이언스 2022.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