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19) 생물다양성이 생태계 안정성 높이지만.. 멸종 속도 1000배 빨라져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생물다양성이 생태계 안정성 높이지만.. 멸종 속도 1000배 빨라져 (daum.net)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생물다양성이 생태계 안정성 높이지만.. 멸종 속도 1000배
■ (19) 왜 생명은 그토록 다양한가? 그 신비와 상실에 대하여20세기 들어 다양성과 생태적 기능 논란 둘러싼 실험적 연구 이어져물·공기 등 인간의 삶-사회에 직간접 혜택 제공하는데800만종 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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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생물다양성이 생태계 안정성 높이지만.. 멸종 속도 1000배 빨라져
■ (19) 왜 생명은 그토록 다양한가? 그 신비와 상실에 대하여
20세기 들어 다양성과 생태적 기능 논란 둘러싼 실험적 연구 이어져
물·공기 등 인간의 삶-사회에 직간접 혜택 제공하는데
800만종 중 100만종 상실 임박…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가치 사라지는 셈
생물과 다양성. 이 두 단어의 관계는 참으로 독특하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긴밀하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얼굴과 성격에서부터 지구상 동식물들의 종류를 생각하면 생명과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 다양하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외이고 새삼스럽다. 생물이라고 해서 꼭 이렇게 다양해야 하는 걸까? 대체 다양성이 뭐길래? 어쩌면 너무나 기본적인 세상의 속성에 관한 얘기인지라 생각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단어가 합쳐져 생긴 ‘생물다양성’이라는 합성어 또한 비슷한 처지에 있다. 어떤 이들에겐 말 그대로 생물이 다양하다는 단순한 사실로 쉽게 이해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에겐 생물의 집합적인 특성을 가리키는 추상적인 개념처럼 난해하다. 최근 생물다양성이라는 용어가 사회 일반 어휘에 진입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가치로 회자된 이래로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용처와 의미도 다양해지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이러한 양극성 면모는 생명계의 대표적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에야 각광받게 된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19세기 말에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은 유전되는 형질의 변이(variation)를 자연 선택이 벌어지는 기본 바탕으로 상정하면서 궁극적으로 다양성을 낳는 종의 분화와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유전자 또는 개체 수준의 차이가 강조된 것에 비해, 그 차이들의 궁극적인 발현 형태인 생물학적 또는 생태학적 다양성 자체는 당시에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다양성(diversity)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초기에는 ‘생물학적 다양성’ 또는 ‘자연적 다양성’으로 일컬어지던 것이 1986년 9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가 생물다양성 포럼’에서 처음으로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라는 축약어로 재탄생하게 됐다. 총 1만4000명이 참가하고 전 세계에 생중계된 본행사 덕에 생물다양성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당시 무르익고 있던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과 결합하며 크게 확산됐다. 같은 해에 미국 보전생물학회가 창립됐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대규모 서식지 파괴와 생물의 멸종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묻게 됐다.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생물다양성의 소실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이미 생태학의 성장으로 각각의 동식물들이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시스템적 사고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혹시 생태계가 돌아가는 원리가 생물이 다양하다는 사실과 어떤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생태계를 이루는 여러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구성원들의 다양성 자체에 대한 자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이렇게 생태학적 맥락 속에서 시작됐다. 학자들의 주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생물다양성이 갖는 생태적 기능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틀어 ‘생물다양성과 생태적 기능 논란(biodiversity & ecosystem Function debate)’이라고 부른다.
생물다양성이 진화의 여러 갈래로 비롯된 하나의 부수 현상에 불과한지, 아니면 다양성 자체가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관장하는 하나의 결정 요인인지를 판가름하기 위해 각종 이론 및 실험적 연구가 수행됐다.
초기 학자들은 다양성이 높으면 생태계의 안정성과 저항성이 높다는 경향을 관찰했다. 하지만 정량적인 분석이 아직 발달하기 전이라 이러한 가설은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로버트 메이를 필두로 한 수리 생태학적 접근법은 종의 수가 많을수록 생태계의 안정성이 오히려 낮아진다는 모델을 제기하면서 논란은 가열됐다. 하지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 자연에서는 실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실측 자료가 필요했다.
생물다양성과 생태적 기능에 대한 현장 실험을 개척한 연구는 데이비드 틸먼이 미네소타의 초지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3×3m, 이후에는 9×9m 크기의 방형구 수백 개에 다양성의 정도를 조절하며 식물을 심고 각 방형구가 어떻게 다르게 자라는지를 측정했다.
그 결과 다양성이 높으면 생산성도 높아지고, 가뭄에 대한 저항성도 강해진다는 것이 나타났다. 또한 다양한 식물로 구성된 곳에서는 토양 내 질산염 유실량이 적었다. 그만큼 식물에 흡수돼 생태계 내로 편입된 영양분이 많아진 것이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다른 연구들도 속속 발표됐다. 이른바 ‘에코트론(Ecotron)’이라는 실험장치가 등장해 토양 미생물과 지렁이, 식물, 곤충과 달팽이 등의 동물로 구성된 인공 먹이그물이 조성됐다. 실험 결과, 먹이그물이 다양할수록 식물의 1차 생산량이 많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그런가 하면, 다양성 자체보다는 식물들의 기능적 특징이 중요하다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가령 질소 고정 등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 식물이 얼마나 포진해 있는가가 절대 수보다 생산성이나 안정성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유럽 각 지역에서 동시에 수행된 한 연구에서도 식물 기능군의 수가 생산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 나타났다.
다양성 자체가 중요한 것인지, 군집에 속한 종의 조합이 관건인지 등 정확한 인과관계의 해석은 조금씩 달라도 대부분의 연구는 다양성이 생태계의 안정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지지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생태계의 생물학적, 지리학적, 화학적 기전에 기여하는 종은 대체적으로 전체의 20∼5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태적 역할이 불분명한 종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또한 멸종 위기종은 이미 수가 너무 적어서 생태계 내의 역할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종의 원래 역할 또는 기능이 어떠했을지는 지금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한창 망가져 가는 생태계를 놓고 각 부속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처음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다양성 연구의 맥을 관통하는 사상은 바로 기능주의다. 다양성 자체든, 각각의 생물이든, 생태적 기능이 무엇이냐를 따지고 그것에 의거해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이다. 생태계 서비스라는 개념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얼핏 분명한 결론이 예상되는 기능조차도 그 기능의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령 위의 유럽 연구에서는 한 가지 생태적 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 언제나 여러 종이 필요했고, 한 종이 여러 기전에 관여하기도 했다. 또한 생태계를 이루는 여러 관계망 중 느슨한 상호 작용으로 된 연결고리가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무엇이 어떤 기능적 가치를 지니는지는 다양성이라는 복잡계 속에서 그 판단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젠 다양성의 상실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관점의 연구든 생물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 대전제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멸종은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멸종은 원래의 자연적 빈도에 비해 그 속도가 100∼1000배로 빨라지고 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 전체의 종수는 약 800만 종, 그중 무려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그마저도 매일 평균 300개의 신종이 발표되는 것을 감안하면 과소평가된 수치일 수밖에 없다. 2017년에 ‘발견된’ 신종 오랑우탄처럼, 발견되자마자 멸종 위기인 종도 허다하니 말이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은 특별함과 고유함에 기초한다. 어떤 사람이, 사물이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독보적일 때 비로소 가치가 발생한다. 그 모든 가치는 다양성의 산물이다. 다양성 중에서도 생물다양성의 표현이자 작품이다.
김산하 생물다양성재단 사무국장ㅣ문화일보
■ 용어설명
생물다양성 = 지구 각지의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의 다양한 정도를 가리킨다. 생물학적 위계 또는 조직의 모든 수준, 즉 유전자, 개체, 종, 군집, 생태계 등 각각의 수준에서 발견되는 모든 다양성을 포괄한다. 또한 각 수준과 수준 간의 관계 및 상호작용의 다양성,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각종 생태적 과정과 기전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생물다양성을 측정하는 방법 및 지표도 역시 다양하다. 종 풍부도는 단위 지역에 존재하는 전체 종의 수를 말하고, 종 균등도는 군집에서 종 간 개체 수가 얼마나 균등하게 분포하는지를 가리킨다. 또한 한 서식지의 다양성을 알파 다양성, 근접한 여러 서식지 간의 차이를 베타 다양성, 여러 서식지에 걸쳐 나타나는 전체적 다양성을 감마 다양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생태계 서비스 = 생태계의 자연적인 작동 원리가 만들어 내는 각종 결과, 조건 및 과정들이 인간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제공하는 혜택을 의미한다. 가령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물, 공기, 영양물질의 순환 등의 생명 조건들은 지구의 자연 서식지에서 벌어지는 생태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식량 생산은 농작물이 벌이나 나비와 같은 수분 매개자의 생태적 활동에 크게 의존하며, 산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나 중금속 등의 오염 물질은 습지에 의해 정화 및 처리된다. 해안가에 생장하는 맹그로브 숲이 쓰나미나 홍수 등의 침수를 방지 및 완화하는 물리적 기능도 이에 해당된다. 더불어 자연경관이나 야생적 경험이 인간의 정신에 가져다주는 심리·미학·철학적 가치 또한 생태계 서비스다.
/ 2022.04.2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