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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15) 노화 세포만 골라 제거하면.. ‘늙음’도 치료 가능한 病이 된다

푸레택 2022. 4. 28. 09:53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노화 세포만 골라 제거하면.. '늙음'도 치료가능한 病이 된다 (daum.net)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노화 세포만 골라 제거하면.. '늙음'도 치료가능한 病이 된

■ (15) 죽음의 비밀에 도전하는 생명과학기존엔 세포사멸·자가소화는 예정된 죽음… 세포괴사는 사고사로 정의최근엔 손상되고도 원래기능 수행하는 ‘노화 세포’ 개념 도입돼노화 세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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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미영 작가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노화 세포만 골라 제거하면.. ‘늙음’도 치료 가능한 病이 된다

■ (15) 죽음의 비밀에 도전하는 생명과학

기존엔 세포사멸·자가소화는 예정된 죽음… 세포괴사는 사고사로 정의
최근엔 손상되고도 원래기능 수행하는 ‘노화 세포’ 개념 도입돼
노화 세포는 진화상의 오류… 노쇠·장수문제 해결 위해선 이 난제부터 풀어야

시작은 한 남자의 오만에서부터였다. 감히 포세이돈께 돌아가야 할 소를 빼돌린 크레타 왕 미노스는 그 결과로 황소에 오쟁이를 진 남편이 되었으며, 사람을 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아들로 얻게 되었다. 미궁에 갇혀 제물로 바쳐진 소년과 소녀를 잡아먹고 사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제 자식을 괴물의 먹이로 보내야 했던 부모들의 참담함을 해소해 준 이가 바로 테세우스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타고 돌아온 배를 보존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마모시킨다. 사람들은 삭아 버린 조각을 떼어내고 새로운 조각을 덧대며 끊임없이 배를 수리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테세우스의 배는 여전히 건재했지만 원래 그가 탔던 배를 이루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


테세우스 배의 역설은 동질성에 대한 유명한 철학적 난제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이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몸은 오롯이 테세우스의 배이다. 인체는 200여 종으로 분화된 세포가 수십 조(兆)개 이상 모여서 이루어진 다세포 복합체이다. 우리는 별문제가 없는 경우 80여 년을 살지만 세포 각각의 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다. 세포와 개체의 수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몸을 유지하고 심지어 불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주변 세포가 분열되어 죽은 세포의 빈자리를 끊임없이 채우기 때문이다. 테세우스 배의 조각들과 달리 사람 몸의 세포들은 조직이 낡아서 망가지기 훨씬 전에 적극적으로 수리 및 교체 활동을 하는 매우 능동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세포에게 죽음이란, 운 나쁜 사고 같은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내포하고 있던 가능성에 가깝다. 죽음이란 살아 있는 유기체를 유지하는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를 의미하기에 그들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비로소 죽음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일종의 상호 작용이다. 마찬가지로 세포, 특히 다세포 생물의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 각각의 삶과 죽음은 무작위 사건이 아니라, 매우 섬세하게 조절되어 일어나는 일상이다.

세포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녹록지 않다.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얻기 힘들 수도 있고, 외부에서 다양한 화학 물질과 자외선, 전리 방사선 등이 유입되며, 심지어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활성 산소가 끊임없이 DNA에 손상을 주는 탓이다. 이런 모든 유해 성분을 제거하더라도 DNA가 손상될 수 있다.

세포 각각의 유전체는 핵 속에 고이 저장된 소장본이 아니라, 수많은 이가 뒤적이다가 펼쳐 놓은 혼란스러운 공용 도서에 가깝다.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할 경우, 세포 분열기에만 염색체를 관찰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유전 물질은 세포가 분열해 서로 복제된 정보를 정확히 나눠 가져야 할 때만 염색체 형태로 단단히 포장되며, 세포 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기 중에는 가느다란 DNA의 형태로 펼쳐져 있다. 그런데 세포가 생명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물질이 필요하고, 이를 만들기 위해 DNA의 이중 나선은 수시로 감겨 있던 히스톤 단백질에서 풀어져 나와 단일 가닥으로 열려야 한다. 물론 복제 뒤에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보니 이 과정에서 분자의 가닥들이 엉키고 꼬이고 끊어지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DNA의 손상이란 길게 이어진 DNA 일부가 끊어지거나 제대로 된 상보 구조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손상 부위, 즉 DSB(double-strand break)가 감지되면, 일단 세포는 세포 주기의 진행을 중지하고 손상의 정도를 파악한다. 손상 수준이 낮을 경우, 이를 복구하고 전체 시스템을 유지하지만, 손상 정도가 심각하거나 부위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세포는 활동을 중지하고 시스템 전체를 꺼버린다. 즉 세포 사멸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DNA 손상이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포 주기가 지속되어 복제가 이루어진다면, DNA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돌연변이체가 축적되며, 결국 이들은 종양 세포가 되어 개체의 전체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포의 죽음은 꼭 필요하다.

이처럼 세포의 죽음이란 스스로 제거될 수밖에 없도록 미리 ‘짜인 죽음’인 것이다. 기존에는 세포의 죽음을 세포 자멸(apoptosis), 자가 소화(autophage), 세포 괴사(necrosis) 등 서로 다른 사멸의 형태로 구분하는 과정에 익숙했다. 세포 자멸과 자가 소화를 예정된 죽음으로, 세포 괴사를 급작스러운 사고사로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포의 죽음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기존 분류에는 속하지 않거나 겹치거나 세부 과정에 차이가 있는 형태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2018년 세포 사멸 명칭 위원회는 기존의 세포 사멸 분류법이 다양한 세포 사멸 과정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지해 새로운 세포 사멸 분류법에 대한 체계를 제시한 바 있다. 새로운 세포 사멸 분류법의 주요한 특징은, 세포 사멸을 ‘조절된 세포 사멸(regulated cell death·RCD)’과 ‘우발적 세포 사멸(accidental cell death)’로 나누고, RCD에 속하는 세포의 죽음을 그 원인과 특성에 따라 좀 더 세분화하는 세포 사멸 분류법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분류 기준에 따르면 같은 세포 사멸이라고 하더라도, 그 원인이 내재적인지 외재적인지에 따라 다르게 구분하며, 세포 사멸을 일으키는 반응의 특성에 따라 총 14가지로 상세하게 분류한다.

그런데 새롭게 제안된 세포 사멸의 분류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세포의 죽음에 대한 분류의 상위에 치명적 손상에 대한 세포 사멸 과정과 이보다는 덜한 손상에 대한 비사멸 과정(non-lethal processes)을 나누어 놓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포의 죽음 그 자체뿐 아니라, 손상을 받았으나 아직은 죽음에 이르지는 않은 세포들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개념은 세포 손상에 대한 비사멸적 반응, 그중에서도 세포 노화(cellular senescence)를 일으킨 ‘노화 세포’의 개념이다. 세포 노화란 DNA의 손상을 감지한 이후에도 바로 RCD의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세포의 분열만을 정지시킨 상태로 세포의 원래 기능은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일정 수준 이하라든가 다른 이유로 DNA의 손상이 감지된 세포 중에서 일부는 세포 사멸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면서 활동을 수행한다는 것을 관측했다. 이런 세포 노화 현상은 성인의 지방 세포나 신경 세포처럼 이미 분열을 멈춘 상태에서 살아가는 세포들에서도 나타난다. 노화 과정에 들어간 세포들이 그저 분열만을 멈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살아 있고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되 스스로가 정상이 아님을 인지하기에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늘려 염증 반응을 유도하고, 손상이 있음에도 죽지 않고 대사 과정을 수행하기에 후성 유전학적 잡음이 더 많이 쌓여 주변 세포와의 신호에 교란을 일으켜 종국에는 주변의 세포들의 암세포화를 촉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노화는 자연스러운 운명이 아니라,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고 주장하는 인간 수명 증진 프로젝트의 연구진은 이 노화 세포들이야말로, 진화상의 오류이며 이들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인류 최고의 난제인 노화와 장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 참조)

우리가 세포의 죽음에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세포의 죽음과 탄생이 결국 인간의 죽음과 탄생 혹은 질병에 시달리는 괴로운 삶과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세포의 죽음이 운명이기에 우리의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본다면, 세포의 노화가 오류이고 질병이라면 인간의 노화와 노쇠도 치료 가능한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 추이가 주목된다.

이은희 과학저술가·하리하라ㅣ문화일보

■ 용어설명

조절된 세포 사멸(regulated cell death) = 세포에 내재된 하나 이상의 신호 전달 체계의 활성화에 기인하는 세포 사멸의 형태. 생체 발생 과정에서 불필요한 조직의 제거를 위해 외부 환경의 간섭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programmed cell death)과 세포 내외의 스트레스가 세포의 항상성 유지에 심각하게 영향을 줄 정도로 강하거나 지속적인 경우에 이에 대한 스트레스 적응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내부 신호 전달 체계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신호 전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 혹은 이에 유전적 변이의 발생을 유도해 세포 사멸의 진행을 조절할 수 있다.


세포 손상에 대한 비사멸적 반응(non-lethal processe) = 손상된 세포가 모두 죽음으로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반응에는 세포 노화 말고도 유사 분열 파국과 세포 말단 분화가 있다. 유사 분열 파국이란 DNA 손상으로 인한 세포핵 자체의 변화로 인해 세포 분열이 정지된 상태의 세포를 말한다.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멸의 수순을 밟게 되지만, 이를 탈피해 간기로 들어가는 세포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세포 말단 분화란, 세포 자체는 죽지만 세포를 이루는 물질들이 해체돼 재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멸된 세포 자체 혹은 파생된 물질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피부의 각질 세포가 대표적이다.

/ 2022.04.28 옮겨 적음